“나는 흙수저라서 살아남았다” '짬바' 원썬 인터뷰

2017-08-0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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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클럽 인투딥에서 원썬 씨를 만났다.

원썬이 자신이 운영하는 클럽 인투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하 박송이 기자
원썬이 자신이 운영하는 클럽 인투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하 박송이 기자

잔 근육 붙은 체구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눌러 쓴 야구 모자에 찡긋거리는 눈웃음. 지난달 31일 저녁 클럽 인투딥(In2deep)에서 만난 래퍼 원썬(본명 김선일)은 39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이었다. 궂은 날씨에 택배 일을 마치고 막 클럽으로 출근했다고 한다.

'인투딥'은 서울 서교동 홍대 '클럽 거리' 한복판에 있다. 원썬은 5년 전 66㎡(20평) 남짓한 이 클럽을 인수한 뒤 여자 화장실 변기 하나까지 직접 공사했다. 지금도 평일엔 혼자 이곳을 운영한다. 손님 맞을 시간이 되자 그는 불을 켜고, 에어컨을 틀고, 레게음악을 선곡했다.

원썬은 지난해 Mnet '쇼미더머니5'에서 '짬에서 나온 바이브'라는 유행어로 인기를 얻었다. 새로 시작된 '쇼미더머니6'에 출연하며 다시 주목받았다. 그는 '렛미두잇어게인'이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TV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나갈 마음은 없었는데 많은 분이 연락을 주셔서 '이번에도 나가주면 안 되겠냐'고 요청했어요. 나가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멋있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음악을..."

원썬은 한국 1세대 래퍼다. 1세대 래퍼들은 힙합이 생소했던 90년대 한국 사람들에게 힙합을 알리고 전파한 '문익점'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요즘 세대들이 이들에게 내리는 평은 가혹하다. 쇼미6에 출연한 MC 한새, 디기리 등 1세대 래퍼들은 "올드하다", "유치하다" 평을 들으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원썬은 요즘 10대들은 최근 음악만 듣고 자라왔기 때문에 이런 평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는 "1세대 래퍼들은 제대로 된 힙합을 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라며 "멋있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쇼미더머니'에 꾸준히 도전하는 것도 아직도 현역임을 입증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자 손님 두 명이 클럽으로 들어왔다. 첫 손님이었다. 일산에 산다는 대학 2학년생들이었다. 원썬 팬이라며 인증샷을 부탁했다. 원썬은 모자를 고쳐 쓰고는 서슴없이 바에서 나왔다. 사진 요청이 익숙한 듯 휴대폰 플래시로 셀프 조명을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흙수저라 살아남았어요. 금수저는 여기(가슴)에 담을 수가 없어요"

여자 손님이 찾아오자 원썬이 주문을 받고 있다.
여자 손님이 찾아오자 원썬이 주문을 받고 있다.

원썬은 래퍼 말고도 직업이 많다. 낮에는 퀵 배달이나 용달 업무를 하고 밤에는 클럽을 운영한다. 지난 학기엔 대학에서 실용음악 강의를 했다. 행사장 무대 음향장비 설치도 한다. 밤낮없이 일하는 게 힘들 것 같다고 하니 그는 "다들 이렇게 사는데 이게 무슨 고생이냐"고 되묻는다.

클럽 '인투딥'을 인수하면서 그에겐 빚이 생겼다. 주말마다 클럽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월급을 줘야 하기 때문에 가욋일을 한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할만한 고생이라고 말했다.

원썬은 자신을 '흙수저'라고 표현했다. "1세대 래퍼 중 저 같은 흙수저들만 살아남았어요. 금수저들은 여기(가슴)에 담을 수가 없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소유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노동이라는 것을 하며 치열하게 살아야 했다. 우리 같은 흙수저들은 음악할 때 항상 절실했다"고 덧붙였다.

클럽 '인투딥' 인테리어도 자신이 배운 기술로 다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힙합만으론 먹고 살 수 없었기에 그는 여러 기술을 배워뒀다. 그런 기술들의 집합체가 바로 인터뷰 장소인 이 클럽이라고 했다.

"자기 자리 지키는 사람들 응원하는 사회가 됐으면..."

원썬은 오는 18일 새 음반을 낸다. 프랑스 출신 래퍼와 콜라보를 마쳤고 현재 마무리 단계라고 했다.

'다이빙 벨' 제작자 이상호 기자와 함께 작업 중이라고도 귀띔했다. 현재 제작 중인 '박근혜의 7시간' 다큐멘터리에 삽입될 영화 음악이라고 했다.

이상호 기자와 인연은 "할아버지 때문에" 생겼다고 했다. 원썬은 철학자이자 한신대 석좌교수인 도올 김용옥 선생의 종손주다. 김용옥 선생을 뵈러 갔다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이상호 기자를 만났다고 했다.

갑자기 얻은 인기에 대해 묻자 그는 한사코 고개를 내저었다. 원썬은 스스로를 "결과가 없는 뮤지션"이라고 칭했다. 재밋거리로 이슈가 됐다가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이미지로 바뀐 특이한 케이스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음악 후배나 인생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원썬은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라고 조언했다. "나같이 일등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바람도 전했다.

원썬은 "하고 싶은 것을 이어가기 위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되는 것'을 하고 있다"라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우직하게 한 길을 걷는 사람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위로였다.

home 박송이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