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목줄로 될까” 경기도 조례에 맞춰 반려견 산책을 해봤다

2017-11-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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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호수공원 산책로 분위기는 영하 3도의 날씨만큼 싸늘했다.

"네? 2m요? 2m는 너무 짧은데요?"

지난 20일 오후 8시 경기 고양시 장항동 일산 호수공원에서 만난 조모(28·여) 씨와 이모(26·남) 씨는 휘둥그레 눈을 뜨고 말했다. 두 사람은 각각 흰색 몰티즈와 갈색 치와와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경기도가 목줄 길이 2m를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으로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그들은 그저 "황당하다"고 했다.

호수공원에서 종종 반려견과 산책을 한다는 조 씨는 현재 쓰고 있다는 목줄을 보여줬다. 버튼을 누르면 자동 줄자처럼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목줄이었다. '자동 리드줄'로 불리는 도구다. 그는 주변이 사람들이 다가오자 목줄 길이를 1m 이내로 짧게 줄여 잡았다.

자동리드줄 / 셔터스톡
자동리드줄 / 셔터스톡

조 씨는 "지금 쓰고 있는 게 최장 5m까지 늘어나는 건데, 가끔 이것도 짧다고 느낀다. 2m로 한정 지으면 산책을 제대로 못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늘 2m 이상으로 다니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맞게 목줄 길이를 길게 했다가 줄이기도 하는 건데, 최대 2m라면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날 103만 4000㎡에 이르는 공원 중 중앙 부분인 주제광장에서 한울광장까지 500여m 구간을 반려견 '치코'와 함께 걸어봤다.

동행한 반려견 치코는 요크셔테리어다. 무게 4.9kg으로 소형견에 속한다. 지난 2일 경기도는 "15㎏ 이상인 반려견의 경우 외출시 입마개 착용 의무화, 목줄 길이 2m 이내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맞게 정확히 2m짜리 목줄을 준비했다. 생후 별다른 공격성을 보이지 않은 데다 15kg 미만인 개라서 입마개는 착용하지 않았다.

2m짜리 목줄을 한 요크셔테리어 치코 / 이하 이정은 기자
2m짜리 목줄을 한 요크셔테리어 치코 / 이하 이정은 기자

반려견은 산책할 때 무조건 앞을 향해 달리지 않는다. 보통 반려견은 걷거나 달리다가도 들풀 따위에 호기심이 생기면 멈추고 냄새를 맡다가 다시 냉큼 달려나가는 특성이 있다.

2m짜리 목줄은 반려견 산책 특성에 적합하지 않았다. 치코 역시 매우 불편해했다. 평소 활발한 성격인 반려견 치코는 호수공원을 마음껏 누비고 싶어 했지만, 목줄이 너무 짧았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탄 썰매를 끄는 루돌프를 보는 듯했다.

2m짜리 목줄에 매인 치코는 성인 여성인 보호자 걸음이 너무 느렸는지,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사람을 끌듯이 걸었다. 답답해하는 강아지가 안쓰러워 일부 구간은 뛰어야 했다.

목줄이 답답한 치코
목줄이 답답한 치코

반려견 보호자 입장에서도 2m짜리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만약 2m짜리 목줄이 아닌 '자동 리드줄'이었다면, 목줄 길이 조절이 훨씬 편했을 테다.

500여m를 걷는 도중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목줄 길이를 늘여 치코가 자유롭게 뛰놀게 하고 싶었지만, 목줄 길이가 최대 2m라는 게 매우 아쉬웠다.

이날 호수공원을 왔다 갔다 하며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들은 100명 남짓했다. 그나마 스무 명 가량은 공원 한쪽에서 음악에 맞춰 체조 운동을 하는 이들이었다. 그중 반려견을 동반한 사람들은 10명쯤 됐다.

일산동구 장항동 주민인 함모(46) 씨는 중형견인 시바견을 데리고 산책하고 있었다. 산책 중이던 다른 반려견과 달리 목줄이 유독 짧아 눈에 띄었다. 눈짐작으로 1m도 채 안 돼 보였다. 입마개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보호자 말로는 시바견 무게가 15kg은 넘지 않는다고 했다.

시바견에 매인 목줄을 짧게 조정한 함모 씨
시바견에 매인 목줄을 짧게 조정한 함모 씨

함 씨는 "지금 호수공원에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짧게 잡았다.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면 더 길게 잡는다"고 말했다.

함 씨 역시 2m로 한정한다는 경기도 측 계획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일단 목줄을 매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데, 2m로 정해버리면 3m, 5m까지 늘어나는 '자동 리드줄'은 아예 쓰지 말라는 거냐. 해도 너무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날 호수공원 산책로 분위기는 영하 3도의 날씨만큼 싸늘했다. 홀로 운동 중이던 신모(50·여) 씨는 "눈치가 보여서 강아지 산책을 못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신 씨에게 경기도에서 추진 중인 조례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신 씨는 "지금 토이푸들(소형견)을 키우고 있는데, 요즘 뉴스에서 말이 많다 보니 밖에 데리고 나오기가 부담스럽다"며 "그런 정책까지 나오면 아예 산책을 못 시킬 것 같다. 개랑 어디 같이 살 수나 있겠냐"고 말했다.

경기도가 추진 중인 조례개정안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강아지 훈련사 강형욱 씨는 조례 개정안에 대해 "'아이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려견을 1(하나)도 모르고 만든 법"이라며 "반려동물들하고 살아본 적이 없는, 전혀 이들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생각해낸 것 같다"고 지적했었다.

반발이 거세지자 경기도 측은 목줄 길이를 2m 이내로 제한하려던 조례 개정안을 보류했다. 경기도 동물방역 위생과 여운창 팀장은 "내년 상반기 상위법인 동물보호법이 어떻게 개정되는지도 지켜볼 예정"이라며 "여러 의견이 나온 만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지난 20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한 '반려동물 안전관리대책 간담회' 후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위해 더욱더 신중히 검토하고 더 많은 의견 나누겠다"며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반려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고민 또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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