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후 준 용돈을 타투로 남긴 손녀 (인터뷰 전문)

2018-02-0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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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트윗은 리트윗 1만 9000여 회를 넘기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졌다.

작가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 작업자 : 타투이스트 김세윤
작가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 작업자 : 타투이스트 김세윤

한 타투이스트가 올린 작업 사진이 눈길을 끈다.

지난달 28일 타투이스트 김세윤 씨는 트위터에 작업 사진 1장을 게재했다. 오만 원 지폐를 접은 그림이었다. 그림 아래에 '프롬 그랜마(FROM GRANDMA)'라는 문구가 있었다.

김세윤 씨는 "(손님을) 어릴 적부터 키워준 할머니가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렸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김세윤 씨는 "할머니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대상이 손녀다"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할머니가) 기억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손녀에게 꼬깃꼬깃 건네준 용돈. 손님은 할머니께 받는 마지막 용돈이 될 것 같아 본인 몸에 평생 간직하고 싶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해당 트윗은 리트윗 1만 9000여 회를 넘기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졌다. 할머니와 손녀를 응원하는 멘션이 이어졌다.

지난달 29일 김세윤 씨는 위키트리에 "각자 이야기를 담은, 누가 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을 그리고 몸에 새기는 작업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타투가 무섭고 나쁜 게 아니라 소중하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몸에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그런 인식을 심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타투가 비주류 문화라는 편견을 바꾸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작업자가 되고 싶다"라고 밝혔다. 김 씨는 "손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많이 울었다. 그저 할머니 쾌유를 바라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위키트리는 타투 의뢰인 최윤경(27) 씨를 인터뷰했다. 최윤경 씨 인터뷰 전문이다.

타투를 한 계기가 궁금해요.

할머니는 원래 시골에 사셨어요. 몸이 좋지 않아 서울로 모셔왔습니다. 이날 할머니가 작은 손으로 제게 돈을 주셨어요. 그게 타투로 남긴 오만 원짜리예요.

오만 원은 할머니가 시골에서 가져온 돈 전부예요. 아픈 와중에도 저부터 챙기는 할머니를 보며 사랑을 느꼈습니다. 이게 할머니에게 받는 마지막 용돈이 될 것 같아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이 돈을 어떻게 평생 간직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타투를 하게 됐습니다. 이 돈은 타투이스트님께 시술 비용으로 드렸고요.

최윤경 씨에게 할머니는 어떤 분인가요.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할머니는 제 전부입니다. 어린 시절 봄, 여름마다 할머니와 밭에 나가 호미질도 하고 새참을 먹었어요. 겨울에는 할머니가 비료 포대로 끌어주는 썰매를 탔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큰 고무통에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했습니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머리를 묶어줬어요. 어떤 날은 양 갈래, 어떤 날은 여섯 갈래. 예쁘게 땋아주셨습니다. 소풍이나 운동회 때는 도시락을 싸주셨고요. 유치원에서 친구에게 짖궂게 놀림당하고 울면서 집에 온 날 할머니가 그 아이를 혼내준 기억도 나요.

우리 집이 마냥 행복하진 않았어요. 할머니가 많이 희생하셨어요. 가정폭력 현장에서 저를 업고 도망을 가기도 했어요. 할머니가 제 방 문고리를 부여잡고 저를 지킨 적도 있어요.

매일 밤 제가 앞으로 살 시간에서 10년, 20년이라도 할머니께 달라고 무릎 꿇고 창문을 보며 기도했습니다. 취업을 준비할 때도 자기소개서에 할머니를 존경한다고 적었어요.

제가 남보다 잘난 건 아니지만 참을성이 많고 남을 배려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이건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살며 많은 경험을 한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젊을 때부터 몸, 마음 고생으로 하루도 편하게 지내지 못한 할머니.

할머니는 지금 나를 포함한 많은 기억을 잃고 있어. 처음에는 함께 추억하고 싶은 순간이 너무 많은데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슬프기만 했어. 한편으론 힘든 기억과 상처가 많은 할머니가 삶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지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할머니가 그랬지? 내 이름 잊으면 어떡하냐고. 내가 그랬잖아. 괜찮아! 잊어버려도 돼. 내가 그것까지 다 기억할게. 우리 할머니인 걸. 평생 나 기억하고 많이 사랑해준 걸 아니까.

어제 먹은 밥, 오늘 날짜, 내가 누군지 다 잊어도 돼. 우리 앞으로 남은 시간 자주 보고 행복하게 지내자. 사랑해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타투이스트님께서 제 사연을 듣고 뜻깊은 작업이 될 것 같다며 좋아하셨어요. 소중한 첫 타투, 기분 좋게 했습니다.

다음 달에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작업하고 싶어요. 할머니가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 순간이 분명히 올 테니까요. 제가 할머니 몫까지 기억을 간직하려고요.

◈ 타투이스트 김세윤 인스타그램/트위터 계정 : @sey8n

home 권지혜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