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까지 등장하는 유명 물고기인데... 다들 틀린 이름으로 부르는 한국 생선
2025-03-0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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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밴댕이는 진짜 밴댕이가 아니다?

인천과 강화도를 비롯한 서해안 지역에서 밴댕이는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생선이다. 밴댕이회무침 거리와 밴댕이 마을로 유명한 이 지역에서는 봄철이면 밴댕이가 식탁을 장식한다. 놀랍게도 우리가 흔히 밴댕이라고 부르며 즐기는 이 생선은 사실 표준어로 ‘반지(Setipinna tenuifilis)’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 물고기다. 반면 진짜 밴댕이는 ‘디포리’로 불리며 주로 말려서 국물 내는 데 쓰인다. 이러한 혼란 때문에 밴댕이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밴댕이는 어떤 생선이고, 어떻게 먹는지, 그리고 왜 이름 개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알아보자.
밴댕이로 불리는 생선, 즉 반지는 청어목 멸치과에 속한다. 몸길이 15~20cm 정도로 날씬한 유선형 몸매를 자랑한다. 등은 청록색이나 연한 암갈색을 띠고, 배는 은백색으로 빛난다. 배 가장자리에는 날카로운 모비늘이 줄지어 있어 손질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반지는 주로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으며 서해안 일대에서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제철을 맞는다. 물 밖으로 나오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금세 죽고 산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이에 따라 신선할 때 먹는 것이 중요하다. 이 특징 덕분에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관용구가 생길 만큼 성질 급하고 예민한 생선으로도 알려져 있다.
반면 디포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진짜 밴댕이는 청어목 청어과에 속한다. 반지와는 아주 멀지도 않지만 같은 물고기로 볼 수는 없다. 디포리는 주로 말려서 건어물로 사용된다. 멸치보다 묵직하고 고소한 육수를 낸다. 이처럼 반지와 디포리는 생김새는 물론이고 용도 또한 다르다.
이처럼 남 이름을 제 이름으로 삼는 반지는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다. 특히 강화도나 인천에서는 신선한 반지를 얇게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밴댕이회가 인기가 많다. 회는 잡힌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상태에서 먹어야 배탈을 피할 수 있다. 또 다른 인기 메뉴는 밴댕이회 무침이다. 썰어낸 반지를 오이, 양파 같은 채소와 함께 매콤하고 새콤하게 버무린다. 구이도 맛있다. 기름기가 많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튀김으로 바삭하게 조리하거나 완자탕처럼 다져서 매운 국물에 넣어 먹기도 한다. 반지는 뼈가 억세지 않아 통째로 먹기에도 부담이 적다. 조선시대에는 밴댕이(반지)가 쌈이나 보리밥 반찬으로도 인기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
반면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디포리는 주로 말려서 국물용으로 쓰인다. 전남 지역에서는 이를 ‘뒤포리’나 ‘띠포리’라 부르며 멸치와 달리 깊은 풍미를 내는 국물 재료로 애용한다.
밴댕이와 반지의 이름 혼란은 단순한 오해를 넘어 실생활에서 큰 불편을 초래한다. 예를 들어 포털 사이트에서 밴댕이를 검색하면 백과사전에는 디포리(진짜 밴댕이)가 나오지만, 요리법이나 사진은 대부분 반지를 다룬다. 이는 오랜 관습 속에서 지역민들이 반지를 밴댕이라고 부르고 학계는 표준명을 따로 정립하면서 생긴 간극 때문이다.
유명 유튜브 채널 ‘입질의추억TV’를 운영하는 어류 전문가 김지민씨는 강화도 외포항을 방문해 이 문제를 조명했다. 현지 상인들은 수십 년간 반지를 밴댕이라 불러왔다며 도감의 표준명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 상인은 “밴댕이는 기름이 많아 말리기 어렵고 디포리와 종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하며 이름이 뒤바뀐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옛 문헌인 ‘난호어목지’에도 반지로 보이는 생선을 ‘반당’이라 기록하며 강화·인천에서 많이 잡혔다고 전하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가 밴댕이라 먹는 생선과 일치한다. 즉 반지는 역사적으로도 오래 전부터 남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다.
이러한 혼란 때문에 일부 전문가와 소비자 사이에서 밴댕이의 표준명을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의 표준명은 실제 사용과 동떨어져 있어 교육적 혼란을 일으키고, 지역 특산물로서의 밴댕이(반지)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명확한 명칭 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포리와 반지의 용도와 생김새가 달라 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구매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회를 먹으려다 디포리를 사는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전쟁 이후 편찬된 어류도감에서 표준명이 정립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당시 학자들이 지역 관습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