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지역 사람이 보면 화들짝... 경상도는 통째로 김치로 담가 먹는 생선
2025-03-0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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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우럭·숭어·농어·참돔 등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물고기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푹 쉬면 다행이야’에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물고기가 있다. 볼락. 지난달 25일 방송에서 출연진들은 주꾸미를 잡으려다 생각보다 마릿수가 나오지 않자 통발 볼락잡이에 나섰다. 이연복 셰프는 잡은 볼락으로 압도적인 맛과 비주얼의 탕수어를 만들어 출연진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볼락은 한국은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사랑받는 존재다. 바위틈을 집 삼아 사는 볼락은 잡는 재미와 먹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까닭에 겨울이면 낚시꾼들의 발걸음을 바다로 이끈다. 볼락은 어떤 생선인지 알아봤다.
볼락은 페르카목 양볼락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몸에 5, 6개의 불명확한 줄무늬가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크지 않은 생선이다. 다 자라도 30cm가량이다. 난태생이라 새끼를 알로 낳지 않고 뱃속에서 부화시켜 배출한다. 제철은 3, 4월이다. 이때 지방이 풍부해 맛이 절정에 달한다. 생태 적응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물고기다. 잡식성이라 물고기, 오징어, 새우, 게 등 못 먹는 게 없다. 가을에 짝짓기를 하고 1~2월에 새끼를 낳는다. 한국에서는 광어, 우럭, 숭어, 농어, 참돔과 함께 대표적인 횟감으로 꼽힌다. 경상도에서는 ‘뽈락’이나 ‘뽈라구’로도 불린다.
서식지는 바위와 절벽이 많은 곳이다. 락피시(rockfish)로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연 상태의 바위틈이나 절벽, 인공 구조물인 항구 선착장, 교각, 방파제의 테트라포드 틈까지 어디든 산다. 깎아지른 바위벽이나 돌틈에 숨어 있어 포인트 찾기가 어렵지 않다. 한반도 전역의 연안에서 쉽게 발견된다. 내만권과 원도권 모두 분포한다. 연안 해조류나 수중 암초가 혼합된 곳을 좋아하며, 제주도처럼 산호군락이 있는 곳에선 붉은색을 띠기도 한다. 낚시꾼들은 체색에 따라 황(금)볼락, 청볼락, 갈볼락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이는 환경과 먹이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2008년 일본 유전자 분석 결과 볼락은 3종으로 나뉜다고 밝혀졌지만, 국내 학계에서는 아직 단일 종으로 분류한다. 황볼락은 따뜻한 해역, 청볼락은 차가운 해역에서 주로 잡힌다.
볼락은 요리의 만능 재료다. 회, 구이, 젓갈, 탕 등 어떻게 요리해도 맛있다. 살이 단단해 식감이 좋고 참돔만큼 이노신산이 풍부해 강한 감칠맛을 낸다. 회는 너무 잘게 썰지 않고 포를 떠 3등분 정도로 자르는 게 맛을 즐기기에 최적이다. 흰살 생선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숯불에 노릇하게 구워낸 볼락은 껍질의 바삭함과 속살의 촉촉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자랑한다.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에 쫄깃한 볼락 살점을 넣어 끓인 매운탕은 잃어버린 입맛도 되찾아준다. 달콤하고 짭짤한 양념에 졸여낸 볼락은 밥도둑이 따로 없을 정도로 훌륭한 반찬이다. 뼈가 억세지 않아 회를 뜨고 남은 뼈를 튀겨 먹어도 별미다. 볼락은 부산에서 특히 높은 대우를 받는 물고기다. 철이 되면 횟집 수족관을 가득 채운다. 양식이 시작되면서 가격이 저렴해졌음에도 여전히 횟감 중에서는 고급으로 꼽힌다.
낚시 전문가인 마초TV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마초는 볼락의 맛에 대해 "살이 쫄깃하고 부드럽다. 회는 감칠맛이 강하다. 김밥이나 양파쌈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고 밝혔다. 이연복 셰프가 만든 탕수어처럼 튀김옷을 입혀 튀기면 바삭한 식감과 고소함이 더해져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볼락의 맛은 환경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금볼락과 갈볼락이 청볼락보다 맛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 시대 수라상엔 남해산 볼락구이가 올라갔는데, 제주도나 동해산은 맛이 덜하다고 기록됐다. 고려 시대엔 ‘바다의 보석’으로 불리며 귀한 손님 접대용으로 쓰였고, 어부들이 진상하면 쌀을 상으로 받았다고 전해진다.
경상남도에는 볼락으로 무김치를 담그는 독특한 요리법도 있다. 통영 어부들이 남는 볼락을 보존하려고 만든 이 요리다. 볼락김치를 담그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먼저 볼락의 비늘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씻어 소금에 절여준다. 무는 나박썰기 하고 배추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 소금에 절인다. 쪽파는 3cm 길이로 썰고, 양파, 마늘, 생강은 곱게 다져준다. 볼에 고춧가루, 멸치액젓, 찹쌀풀, 다진 마늘, 다진 생강을 넣고 양념을 만든다. 절인 무와 배추의 물기를 제거하고 양념에 버무린 뒤 손질한 볼락, 쪽파, 양파를 넣고 버무려 김치통에 담아 실온에서 2~3일 숙성시킨 후 냉장 보관하면 완성할 수 있다. 숙성 후 밥과 함께 먹으면 짭짤한 맛과 부드러운 살이 조화를 이룬다. 이 요리는 통영 지역에서 어부들이 잉여 볼락을 활용하려고 고안한 음식이다. 경상남도에선 밥도둑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인기 있다.
외국인들도 볼락을 각양각색으로 즐긴다. 일본에서는 참돔 대용으로 회나 구이를 만들어 먹지만 큰 인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독일에서는 인기가 높아 아이슬란드까지 가서 잡을 정도다. ‘대구 전쟁(Cod Wars)’ 당시 독일은 아이슬란드에 대구 대신 볼락을 잡겠다고 제안해 전쟁에서 빠졌다는 얘기가 있다. 독일에서는 단단한 살을 이용해 주로 구이나 튀김으로 조리한다. 독일 어부들 사이에서는 "볼락은 튀기면 바삭함이 살아나 대구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맥주 안주로도 사랑받는다. 대서양큰붉은볼락 같은 근연종은 포르투갈, 아이슬란드, 노르웨이에서 반건조나 냉동으로 수입돼 조림이나 구이로 소비된다. 미국 서부 해안에선 락피시로 불리며 그릴 요리나 피시앤칩스의 재료로 쓰인다.
볼락 낚시는 겨울철 바다 루어낚시의 대표 주자다. 낮은 수온에도 공격적으로 미끼에 반응해 초보자도 쉽게 잡을 수 있다. 지그헤드 리그나 소프트 웜 직결 채비가 주로 사용되며, 낚싯대는 2m 내외의 탄력 좋은 짧은 대에 1000~2000번 스피닝 릴을 쓴다. 배스나 쏘가리용 루어대, 주꾸미 에깅대를 활용해 잡을 수도 있다. 테트라포드나 선착장 근처에서는 빙어 낚싯대 같은 짧은 대로 구멍치기를 하거나, 봉돌에 바늘 4~6개를 단 카드채비로 밤낚시를 즐기도 한다. 볼락용 집어등을 이용하면 치어와 플랑크톤을 유인해 볼락 떼를 불러모은다.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빠를 땐 싱커를 무겁게, 조류가 약하면 가볍게 조정하며, 폴링과 지그재그 동작으로 어필한다. 유튜버 마초는 "수심 16m에서 고기가 부상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테트라포드 근처에서 싱커를 빼고 표층을 노리면 효과적이다"라고 말한다.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달이 밝은 밤엔 볼락이 덜 문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는 집어등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야행성이라 밤에 더 활동적이며, 낮에는 바위틈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잡을 때 주의점도 있다. 등지느러미와 아가미 뚜껑이 뾰족해 손을 베일 수 있다. 장갑이나 수건을 사용하는 게 안전하다. 기준치 15cm 미만은 방생해야 한다. 방파제나 원도권에서는 큰 씨알을 기대하기 어렵다.
■ 대구 전쟁이란
대구 전쟁이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북대서양의 풍부한 어족 자원, 특히 대구를 둘러싸고 영국과 아이슬란드 간에 벌어진 일련의 어업 분쟁을 말한다. 이 분쟁은 단순한 어업권 갈등을 넘어, 양국 간의 외교적, 군사적 긴장까지 불러일으켰다.
아이슬란드는 어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국가였다. 특히, 대구는 아이슬란드 경제의 핵심 자원이었으며, 아이슬란드 국민들에게는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였다. 반면 영국은 전통적으로 먼 바다에서 어업을 해왔고, 아이슬란드 근해의 풍부한 대구 어장은 영국의 중요한 어획 지역이었다.
아이슬란드는 자국의 어업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점차적으로 영해를 확대해 나갔다. 1958년에는 영해를 12해리까지 확대했고, 1972년에는 50해리, 1975년에는 200해리까지 확대했다. 이에 영국은 아이슬란드의 영해 확대를 인정하지 않고, 군함을 파견해 자국 어선들을 보호했다. 이 과정에서 양국 군함 간의 충돌과 어선들의 나포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긴장이 극도로 고조됐다.
대구 전쟁은 세 차례에 걸쳐 격렬하게 전개됐다. 1차 대구 전쟁(1958년)은 아이슬란드가 영해를 12해리로 확장하면서 시작됐고, 2차 대구 전쟁(1972~1973년)은 50해리, 3차 대구 전쟁(1975~1976년)은 200해리 확장을 선언하면서 발생했다. 각 전쟁마다 양국은 군함을 동원하여 대치했고, 어선 나포, 그물 절단 등 물리적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아이슬란드는 세 차례의 대구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 국제 사회의 지지와 압박 속에서 영국은 결국 아이슬란드의 영해 확대를 인정해야만 했다. 대구 전쟁은 어업 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의 갈등이 어떻게 전개되고 해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있다. 아이슬란드의 승리는 연안국의 권리를 강화하고 새로운 해양 질서를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대구 전쟁은 어업 자원이 한 나라의 생존과 직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오늘날까지도 해양 자원 분쟁 해결의 중요한 참고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