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생으로 먹는데... 서양에선 너무 맛없어 구워 먹거나 술로 만드는 과일
2025-03-0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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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과일

아삭하고 시원한 과즙이 일품인 배는 오랜 역사와 함께 다양한 문화권에서 사랑받아온 과일이다.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다가 최근 해외에서 새로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배에 대해 알아봤다.
장미과에 속하는 배는 사과와 장미의 먼 친척뻘인 과일이다. 중국 서부와 남서부에서 기원해 약 3000년 넘게 인간과 함께해왔다. 동양과 서양을 가로지르며 각기 다른 모습과 맛으로 사랑받는 배는 특히 한국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나주와 천안, 안성, 상주 등지에서 생산되는 한국 배는 그 당도와 품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마이클 잭슨 같은 글로벌 스타조차 그 맛에 감탄하게 만든 과일이 됐다.
배는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과즙이 풍부해 생식으로 즐기기에 적합하지만, 지역에 따라 활용 방식이 다르다. 한국 배는 다른 나롸 배와 비교해 크고 육즙이 많으며 식감이 아삭한 게 특징이다. 반면 서양 배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고, 껍질이 얇으며, 부드러운 식감을 지닌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품종과 기후, 재배 방식에 따라 발생한다.
배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한국과 일본에서 주로 나는 남방형 동양배, 중국에서 나는 북방형 중국배, 그리고 미국과 유럽, 칠레, 호주 등지에서 재배되는 서양배다. 한국 배는 둥글고 단단하며 과즙이 풍부한 게 특징이다. 껍질은 연갈색으로 까끌까끌하고, 과육은 아삭하면서도 달콤하다. 전남 나주시에서 재배되는 배는 특히 당도가 높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반면 서양배는 조롱박 모양에 가까운 생김새를 갖고 있다. 껍질은 대체로 매끄럽고, 과육은 푸석하거나 물렁한 편이다. 서양배 중 생식용 품종은 단맛이 강하고 실패가 적지만, 요리용 품종은 단맛이 거의 없어 생으로 먹으면 마분지를 씹는 느낌이 든다. 중국배는 한국 배와 비슷한 둥근 모양을 띠지만 품종에 따라 식감과 당도가 제각각이다. 일본 배도 한국 배와 비슷한 동양배 계열이다. 아삭하고 달콤하긴 하지만 한국 배만큼 과즙이 풍부하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배와 외국 배의 차이는 맛과 식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 배는 생으로 먹기에 최적화돼 있다. 깎아서 한 입 베어 물면 단맛과 수분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나무에서 갓 딴 배는 시중에서 파는 것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달고 물이 많다.
반면 서양배는 생식보다 가공에 더 적합하다. 유럽이나 미국에선 배를 통째로 설탕에 절이거나 파이, 잼으로 만들어 먹는 경우가 흔하다.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푸석한 식감 때문에 한국 배처럼 즐기긴 어렵다. 중국 배는 품종에 따라 생식과 가공을 오가며 먹히고, 일본 배는 한국처럼 생으로 주로 소비된다. 하지만 다른 아시아권에서 배가 한국만큼 맛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중국 배는 당도 편차가 심하고, 일본 배는 한국 배에 비해 과즙이 덜 풍부해 한국인 입맛엔 미묘하게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외국에서 배를 가공 제품으로 많이 먹는 이유는 품종과 문화적 차이 때문이다. 서양배 품종은 대다수가 생식보다 조리나 가공에 적합하다. 바틀렛이나 윌리엄스 같은 품종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는데, 약 40%가 통조림이나 주스로 가공된다. 서양에선 배를 오븐에 구워 크리미한 디저트로 만들거나, 페리라는 배 사이다로 양조해 마신다.
영국과 프랑스에선 야생종 배를 써서 탄닌과 산 함량이 높은 페리를 만드는데, 사과로 만든 시드르와 달리 단맛이 강하다. 이런 가공 문화는 배의 푸석한 식감과 낮은 수분감을 보완하려는 데서 비롯됐다.
반면 한국 배는 과즙과 단맛이 풍부해 굳이 가공하지 않아도 생으로 먹기에 충분하다. 동양배가 사과처럼 둥글고 까끌한 껍질을 가진 데 반해 서양배는 돌세포가 덜 발달해 부드럽고 물렁한 과육을 갖춘 것도 가공 선호의 이유 중 하나다.
외국에서 배를 식용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유럽에선 배를 설탕에 절여 통조림으로 팔거나, 파이에 넣어 구워 먹는다. 프랑스와 영국에선 페리로 양조하고, 미국에선 생식용 품종을 간혹 깎아 먹지만 주로 디저트 재료로 쓴다. 통조림 배는 균일한 크기로 조각내기 쉬워 가공업체에서 선호한다. 반대로 한국에선 배를 깎아 생으로 먹는 게 일반적이고, 고기를 재울 때 배즙을 쓰거나 배숙처럼 끓여 먹기도 한다. 일본도 생식으로 주로 소비하지만, 배를 얇게 썰어 샐러드에 넣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선 생으로 먹거나 말려서 간식으로 활용한다. 이런 차이는 배의 품질과 지역별 식문화에서 기인한다.
배와 사과는 오랫동안 가격 경쟁을 벌여왔다. 과거엔 배가 사과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비쌌다. 배나무 꼭지가 짧아 바람에 취약한 데다 열매 크기가 커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사과값이 폭등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젠 사과와 배의 가격이 엎치락뒤치락한다. 소비 트렌드도 영향을 미쳤다. 배는 껍질을 깎아야 해 간편함을 추구하는 요즘 소비자들에겐 외면받기 쉽다. 반면 사과는 씻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어 수요가 꾸준하다.
한국 배 음료가 외국에서 숙취해소음료로 인기를 끄는 건 독특한 현상이다. 배즙은 소화를 돕고 열을 내려주는 효과로 민간요법에서 사랑받아왔다. 호주 영연방 과학산업연구기관은 2016년 배의 숙취 해소 효과를 웹사이트에 발표했다. 편의점 냉장고에서 배 음료가 숙취해소음료 옆에 진열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가격도 캔음료 하나 값이라 경쟁력이 있다. 해외에선 한국 배 음료가 아시아산 고급 과일 주스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배의 달콤함과 수분감이 숙취 해소에 효과적이라는 입소문이 퍼진 결과다.
마이클 잭슨과 배의 인연도 흥미롭다. 전설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은 서울 투어 중 나주 배를 맛보고 감탄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수십 박스를 사 비행기로 미국까지 실어갔다고 전해진다. "아담과 이브가 먹었다는 선악과가 이처럼 맛있을 수 있을까?"라는 찬사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일화는 한국 배의 맛과 품질이 세계적인 인물조차 사로잡았음을 보여준다. 나주 배는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더 주목받게 됐다.
덴마크에서 한국 배가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연도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주덴마크 한국대사관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덴마크 왕실에 나주 배 2개를 보냈다. 이 배는 왕실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입소문을 탔다. 달콤하고 아삭한 한국 배는 서양배와 차별화된 맛으로 덴마크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나주 배는 덴마크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며 한국 배의 위상을 높였다. 한국 배가 유럽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