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우즈벡 사람들이 값에 놀라고 맛에 충격받는다는 한국 과일
2025-03-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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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넓고 깊은 수박의 세계

뜨거운 태양 아래 탐스럽게 익은 수박은 여름의 전령과도 같다. 달콤한 과즙을 한 입 베어 물면 더위는 어느새 저만치 물러나고 입안 가득 퍼지는 시원함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 한국인의 여름을 책임지는 수박은 전 세계적으로도 사랑받는 과일이지만, 각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모습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한국에선 삼각김밥 모양으로 썰어 손으로 집어 먹거나 숟가락으로 퍼먹는 친근한 과일이지만, 외국에선 그 모습과 활용법이 제각각이다. 생각보다 넓고 깊은 수박의 세계에 대해 알아봤다.

박과 식물인 수박은 호박, 멜론, 오이와 사촌뻘이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서 야생종이 처음 발견됐다. 고대 이집트 무덤 벽화에도 등장할 만큼 역사가 길다. 초기 수박은 오늘날과 달리 쓴맛이 강했고, 주로 수분을 얻기 위해 사용됐다.
수박은 과육의 90% 이상이 수분이라 갈증 해소에 제격인 데다 리코펜과 비타민 C가 풍부해 건강식으로도 주목받는다. 전남 고흥, 경남 함안, 충북 제천이 수박 산지로 유명하다. 연간 생산량은 50만 톤 안팎에 이른다. 제철은 6~8월이다.
한국에선 주로 붉은 과육에 검은 씨가 박힌 전통 수박이 익숙하지만 요즘은 씨 없는 수박과 노란 수박, 미니 수박도 인기를 끌고 있다. 크기와 모양도 다양하다. 사과나 배처럼 작은 것부터 무등산 수박처럼 엄청나게 큰 것도 있다. 그중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 무등산에서 자라는 무등산 수박은 워낙 특별해 '과일계의 에르메스'로 불린다.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무등산 수박은 조선 시대 때 왕에게 진상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일반 수박보다 두세 배 큰 크기를 자랑하며, 짙은 녹색 껍질에 흰색 줄무늬, 붉은색 속살이 특징이다. 무게는 평균 8~12kg이고, 큰 것은 20kg이 넘는다. 당도가 12브릭스 이상으로 매우 달콤하고 과즙이 풍부하다. 암록색 겉빛깔에서 유래된 '푸랭이'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반도에 수박은 고려말 몽골, 즉 원나라에서 들어왔다. 당시 왕족이나 귀족들만 먹었다. 조선시대 말까지 평민들에게 수박은 그림의 떡이었다. 일반인들은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았던 수박은 20세기 중반 이후 대중화됐다. 한국 수박은 과육이 단단하고 아삭하며 당도가 높다. 평균 당도가 11, 12브릭스에 이르고 잘 익으면 13, 14브릭스까지 올라간다. 껍질은 두껍고 초록색에 검은 줄무늬가 선명하다.
수박의 당도는 재배 환경, 품종, 재배 기술에 따라 달라기에 어느 한 나라가 가장 맛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대체로 중국, 튀르키예, 이란, 브라질, 미국, 스페인, 이집트, 모로코, 멕시코, 일본, 우즈베키스탄에서 나는 수박이 맛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수박 생산국으로 유명하다. 건조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이 고당도 수박을 키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며, 과육이 입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부드럽다. 특히 가격이 한국 수박 값의 20분의 1 수준으로 매우 저렴해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학생이나 근로자, 결혼 이민자들이 한국에 와서 수박을 보고 놀란다고 한다. 값이 너무 비싸고 상대적으로 맛은 덜한 데 대해 충격을 받아 한국산 수박은 잘 구매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수박 생산국으로, 다양한 품종을 자랑하며 남부 지역 수박이 당도가 높고 맛이 좋다. 일본은 덴스케 수박처럼 고당도 품종으로 유명하지만 크기가 작고 가격이 비싸다. 튀르키예는 아다나 지역 수박이 당도가 높아 수출로도 인기가 많다. 미국은 캘리포니아나 텍사스에서 재배되는 수박이 신선하고 당도가 높다. 브라질은 넓은 재배 면적과 일조량 덕에 고품질 수박을 생산한다.
외국에서 수박을 먹는 방식은 한국과 확연히 다르다. 한국에선 수박을 썰어 생으로 먹는 게 기본이다. 삼각형으로 자르거나 네모반듯하게 썰어 손으로 집어먹고 씨는 뱉는다. 수박화채처럼 설탕과 얼음을 넣어 먹기도 한다. 반면 미국에선 수박을 큼직하게 썰어 피크닉이나 바비큐 파티에서 간식으로 내놓는다. 씨를 뱉는 게 귀찮아 씨 없는 품종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유럽에선 수박을 샐러드에 넣거나 주스로 갈아 마신다. 이탈리아에선 수박을 페타 치즈와 함께 먹고, 스페인에선 수박을 얇게 썰어 하몽과 곁들인다. 일본은 수박을 얇게 썰어 디저트로 내거나 소금 간을 해서 먹기도 한다. 중국에선 생으로 먹는 건 비슷하지만 씨를 볶아 간식으로 활용한다.
미국 등 서양에서 수박은 대체로 마이너 과일이다. 큰 인기가 없다. 미국 수박은 한국 수박과 견줘 상대적으로 당도가 낮고 과육이 무른 까닭에 한국인들 입맛엔 밋밋할 수 있다. 사과나 바나나 같은 과일이 연중 소비되는 반면 수박은 계절 한정 과일로 인식된다. 게다가 크기가 커서 보관이 어렵고 한 번 사면 다 먹기 전엔 냉장고를 차지한다. 문화적 요인도 있다. 수박은 노예제도 시절 흑인들에게 값싼 먹거리로 강요됐던 역사 때문에 일부에선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다. 이런 배경 탓에 수박은 미국에서 딸기나 블루베리 같은 과일에 비해 인기가 덜하다.
외국에선 수박을 꽤 창의적으로 식용하기도 한다. 미국 남부에선 수박 껍질을 피클로 만들어 먹는다. 껍질 안쪽 흰 부분을 설탕과 식초에 절여 새콤달콤한 간식으로 만든다. 멕시코에선 수박에 라임즙과 고춧가루를 뿌려 매콤하게 즐긴다. 튀르키예와 중동 지역에선 수박을 페타 치즈나 올리브와 곁들여 짭짤한 맛을 더한다. 러시아에선 수박을 발효시켜 약한 알코올음료로 만들기도 한다. 한 아프리카 부족은 빨갛게 익은 수박은 맛이 없다면서 한참 설익은 흰 과육만 먹는다고 한다. 한국에선 이런 식의 이용법이 드물다.
수박의 품종도 흥미롭다. 한국에선 씨 없는 수박이 2000년대 초반부터 보급돼 이제 전체 생산의 60%를 차지한다. 씨 없는 수박은 3배체 품종으로, 일반 수박(2배체)에 4배체를 교배해 만든다. 일본의 덴스케 수박은 검은 껍질과 높은 당도로 고급 과일 시장에서 명성을 얻었다. 미국에선 슈거 베이비처럼 작고 둥근 수박이 인기를 끌고, 호주에선 노란 과육의 옐로 크림슨이 주목받는다. 중국 신장 지역의 하미 수박은 길쭉하고 무게가 15kg까지 나간다.
수박의 경제적 가치도 무시 못 한다. 한국에선 수박 한 통이 보통 1만 5000원에서 2만 원 선이다. 하지만 날씨나 수확량에 따라 가격이 급등한다. 2021년 폭염과 태풍으로 수박 생산이 줄며 가격이 3만 원까지 치솟았다. 일본에선 고급 수박이 수십만 원에 팔린다. 미국에선 5~10달러로 비교적 저렴하다. 2023년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 수박 수출액은 1500만 달러다. 주로 씨 없는 품종이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