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반도에만 서식하는데... 금강·섬진강선 이미 멸종한 한국 물고기
2025-04-2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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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따라 유전적 차이가 큰 신기한 한국 물고기

맑은 물이 굽이치는 강원도 산골짜기. 거센 물살 사이로 큰 돌 밑에 숨어 있는 작은 물고기가 있다. 바로 둑중개다. 한국의 청정 하천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다. 한반도 자연이 빚어낸 이 소중한 물고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될 만큼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중이다. 이미 몇몇 강에선 절멸한 둑중개에 대해 알아봤다.
둑중개 몸길이는 약 15cm 정도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아담한 물고기다. 몸은 옆으로 살짝 납작하고 유선형이라 빠른 물살 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인다. 재미지게 생겼다. 머리가 위아래로 약간 눌린 듯한 모습이다. 위턱과 아래턱의 길이가 비슷해 균형 잡힌 얼굴을 하고 있다. 구개골에는 이가 없지만 양쪽 턱과 서골에는 작은 이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배지느러미의 가장 안쪽 연조는 다른 연조의 절반 길이도 안 돼 짧고 아담하다.
몸 색깔은 자연과 완벽히 조화를 이룬다. 등 쪽은 짙은 녹갈색으로 하천 바닥의 돌과 섞여 위장 효과를 내고, 배 쪽은 점점 밝아지며 흰색에 가까워진다. 몸 옆면에는 둥근 무늬처럼 보이는 옅은 반점들이 흩뿌려져 있어 멀리서 보면 은은한 점박이 무늬가 돋보인다. 이 색깔과 무늬 덕분에 둑중개는 천적의 눈을 피해 돌 밑에 숨어 지내기 최적화된 모습이다.
둑중개는 하천 상류, 특히 물살이 빠르고 맑은 여울에서 산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한강 유역 같은 청정 지역이 이 물고기의 주 무대다. 큰 돌이나 바위 밑에 몸을 숨기고, 주로 수서곤충을 먹으며 살아간다. 민첩한 움직임으로 물속을 헤집으며 곤충을 낚아채는 모습은 작은 사냥꾼 그 자체다. 산란기는 3월에서 4월이다. 이 시기에 돌 밑에 알을 낳아 새 생명을 잇는다. 하지만 이런 생태적 특성 때문에 둑중개는 환경 변화에 무척 취약하다.
한국 고유종인 둑중개는 한반도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종이다. 이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한반도의 환경이 오랜 세월 독자적인 생태계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고유성이 오히려 둑중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한반도 외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둑중개는 한 번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영영 자취를 감추게 된다.
둑중개의 가장 큰 위협은 서식지 파괴다. 고랭지 밭 개발, 생활하수 유입, 무분별한 하천 공사 등 인간의 활동이 둑중개의 터전을 망가뜨리고 있다. 둑중개는 수온이 20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 차갑고 맑은 물에서만 살 수 있다. 하지만 농업용수나 생활하수로 인해 물이 오염되거나 유기물이 쌓이면 둑중개는 더 이상 그곳에서 버틸 수 없다. 부착조류가 자라는 오염된 환경은 이 물고기에게 치명적이다. 실제로 금강, 섬진강, 만경강 같은 지역에서는 이미 둑중개가 절멸한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에는 한강 유역을 비롯해 여러 하천에서 드물게나마 둑중개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2005년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될 만큼 그 심각성이 인정됐지만, 2012년에는 분포 지역이 넓다는 이유로 법적 보호종에서 제외됐다. 이는 다소 아이러니한 결정이었다. 분포 지역이 넓다고 해도 실제 개체 수는 매우 적은 데다 각 하천마다 고립된 개체군이 서로 다른 유전적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연구 논문에 따르면, 둑중개는 하천마다 유전적으로 다른 개체군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강원도 양양의 남대천과 원주의 치악산에 사는 둑중개는 거의 다른 종에 가까울 정도로 유전적 차이가 크다. 이는 둑중개가 각 하천에서 고립된 채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외모가 비슷한 한둑중개는 유전 다양성이 더 높고, 하천 하류에서 바다를 오가는 생활사를 통해 개체군이 섞여 있다. 이런 유전적 고립은 둑중개가 하천별로 독립적으로 보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 지역에서 둑중개가 사라지면, 그 유전적 다양성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
멸종위기종으로서 둑중개의 상황은 심각하다. 2020년에는 충주호 상류 하천에서 둑중개를 포함한 물고기들이 전기 도구로 인해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둑중개가 얼마나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청정수에만 사는 둑중개는 작은 환경 변화에도 큰 타격을 받는다. 게다가 법적 보호가 미비한 상황에서 무분별한 포획과 서식지 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둑중개를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서식지 보전이 가장 시급하다. 하천 상류의 청정 환경을 유지하고, 오염원을 차단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하천 공사를 할 때는 둑중개의 생태를 고려한 설계가 필수다. 또한 각 하천별로 둑중개의 개체군을 모니터링하고,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연구와 보호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협력도 중요하다. 둑중개가 사는 하천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을 지탱하는 생명의 터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