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인 줄 알고 손댔다가 기겁…한국 논에 바글바글한 ‘이 동물’ 정체

2025-05-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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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생물의 놀라운 정체

여름이면 한국 전역의 논에 대거 출몰하는 정체불명의 동물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동물은 언뜻 개구리 올챙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전혀 다른 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정체는 바로 '긴꼬리투구새우(트리옵스)'다.

한국의 청정 지역 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긴꼬리투구새우 / 유튜브 'TV생물도감'
한국의 청정 지역 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긴꼬리투구새우 / 유튜브 'TV생물도감'

올챙이인 줄 알고 손댔다가 '화들짝'

많은 사람들이 논에서 물놀이를 하다 올챙이로 착각해 이 생물을 잡았다가 예상과 다른 외형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빈번하다. 황갈색에서 갈색 계열의 몸 색깔에 투구(헬멧) 모양의 단단한 등껍질을 가진 이 생물은 올챙이와 달리 몸 아래에 수십 개의 다리가 있고, 꼬리가 두 갈래로 길게 나 있어 눈여겨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이 생물의 학명은 '트리옵스 롱기카우다투스(Triops longicaudatus)'로, '세 개의 눈'이라는 뜻의 트리옵스라는 이름처럼 머리에는 2개의 겹눈과 1개의 단순 눈(안점)이 특징적이다.

약 2억년 동안 모습이 그대로...'살아있는 화석'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생물이 약 2억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화석과 현재 모습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린다. 긴꼬리투구새우는 생존과 번식 방식이 매우 독특해 생물학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닌다.

생태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5월부터 7월 사이에 논이나 일시적으로 형성된 웅덩이에서 대량으로 나타난다. 부화 후 일주일 만에 갑각이 또렷해질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약 15일이 지나면 갑각 아래에 알주머니가 생기며 땅을 파서 알을 낳는다.

친환경 벼를 재배하는 경남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 논에서 청정지역에만 사는 긴꼬리 투구새우를 이명기 씨가 손으로 들어 보이고 있다. / 뉴스1
친환경 벼를 재배하는 경남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 논에서 청정지역에만 사는 긴꼬리 투구새우를 이명기 씨가 손으로 들어 보이고 있다. / 뉴스1

생애 50일, 그러나 알은 최대 70년까지 생존

성체로서의 수명은 고작 몇 주에 불과하고, 전체 생애도 30~50일 내외로 매우 짧다. 그러나 이들이 낳는 '휴면알'은 건조와 추위, 열에도 강해 최대 70년까지도 생존이 가능하다. 논이 마르고 추운 겨울이 지나도, 다음 해 다시 물이 차면 부화하는 놀라운 생존 전략을 가졌다.

한 생물 전문가는 "투구새우는 물이 찼을 때 빠르게 부화해 짧은 기간 동안 성장과 번식을 마치는 특성이 있다"며 "휴면알 상태로 있다가 환경이 좋아지면 다시 부활하는 능력이 있어 수십 년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태계 복원의 대표적인 지표생물로 꼽히며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리는 긴꼬리투구새우 / 뉴스1
생태계 복원의 대표적인 지표생물로 꼽히며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리는 긴꼬리투구새우 / 뉴스1

한때는 멸종위기종...논 생태계에 도움되는 '고마운 존재'

흥미로운 점은 한때 농약 사용으로 긴꼬리투구새우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환경부로부터 멸종위기 야생동물(2급)로 지정됐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친환경 농법 확산과 농약 사용 감소로 개체 수가 크게 늘면서 지난 2012년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됐다.

투구새우는 잡식성으로 물고기 사료부터 채소까지 다양한 먹이를 섭취한다. 특히 모기 유충(장구벌레) 등 해충을 잡아먹어 친환경 농법에서 해충 방제에 도움을 주는 이로운 존재다.

농민들에 따르면, 투구새우가 논 바닥을 헤치고 다녀 물이 흐릿해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오히려 잡초 생성을 억제하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논에서 땅을 파고 다니며 알을 남기고, 해충까지 잡아먹어 농민들에게는 고마운 존재로 여겨진다.

유튜브, TV생물도감

교육용으로도 인기, 가정에서도 키울 수 있어

트리옵스의 휴면알은 건조 상태로 판매되어, 집에서도 쉽게 부화시켜 키울 수 있다. 키우기도 비교적 쉽고, 성장과 탈피, 번식 등 다양한 생태를 관찰할 수 있어 교육용으로도 인기가 많다. 다만 먼저 부화한 개체가 나중에 부화한 개체를 잡아먹는 동족포식 성향이 있어 키울 때 주의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 논에서 올챙이로 착각해 잡았다가 기겁했다는 경험담이 많은 이 독특한 생물은, 앞으로 더운 여름이 되면 전국의 논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한국 논의 작은 생태계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 이 '살아있는 화석'은 우리 주변의 자연이 얼마나 신비롭고 다양한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home 윤희정 기자 hjyun@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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