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고 함부로 캐면 안 돼요... 알고 보면 귀하디 귀한 한국꽃
2025-05-1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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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가 깽깽이 뜀하듯 퍼져나간다는 꽃... 소중한 한국의 약용 식물
깽깽이풀은 매자나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도 특이하다. 제퍼슨 두비아(Jeffersonia dubia).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토마스 제퍼슨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속명과 ‘의심스러운’이란 뜻의 종소명이 조합된 이름이다. 높이 15~25cm 정도로 자란다. 원줄기 없이 뿌리에서 잎과 꽃대가 직접 나온다. 잎은 연잎처럼 둥글고 단단하다. 질감이 독특해 물에 젖지 않는다. 3~4월에 잎보다 먼저 연보라색 꽃이 꽃대 끝에 하나씩 핀다. 꽃잎은 6~8장. 섬세하고 우아하다. 꽃이 지면 콩팥 모양의 잎이 무더기로 돋아난다. 타원형 열매는 흑색으로 익는다. 이 열매에 당분이 들어 있어 개미들이 좋아하는데, 깽깽이풀의 이름 유래와도 연결된다.
깽깽이풀이란 이름의 유래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이야기는 개미와의 관계다. 깽깽이풀의 씨앗에는 엘라이오솜이라는 당분 덩어리가 붙어 있어 개미들이 이를 물고 다닌다. 개미가 엘라이오솜을 먹고 씨앗을 버리면, 그곳에서 깽깽이풀이 줄지어 싹을 틔우며 마치 ‘깽깽이 뜀’을 하듯 퍼져나간다. 그래서 이 독특한 생태가 이름의 기원이 됐다는 설이 널리 알려졌다. 또 다른 설도 있다. 바쁜 모내기철에 한가로이 꽃을 피우는 모습이 농민들에게 ‘깽깽이’(놀기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심지어 깽깽이풀의 열매가 해금의 줄 조절 장치인 ‘주아’를 닮았거나, 잎이 꽹과리처럼 단단해 타악기 소리를 연상시킨다는 재미난 추측도 있다. 어떤 설이든 간에 깽깽이풀이란 이름은 이 식물의 생태와 모습을 생생히 담아내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깽깽이풀은 주로 한국, 만주 같은 추운 지역의 풀밭에서 자생한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와 전라남도를 제외한 전국 산지에 분포하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환경부가 한때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약간 습하고 반그늘진 환경을 좋아하며, 보습성이 좋고 유기질이 풍부한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란다. 하지만 자생지에서의 남획과 숲 파괴로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기에 주기적인 모니터링과 보호가 절실하다.
이 식물의 뿌리줄기는 ‘선황련’이라는 생약명으로 불리며, 예로부터 약재로 쓰였다. 뿌리줄기에는 알칼로이드, 특히 베르베린(berberine)이 함유돼 있어 건위, 지사, 해열, 해독 효과가 뛰어나다. 하리(설사), 발열, 구내염, 결막염, 편도선염, 토혈, 장염, 이질 같은 증상에 처방됐으며, 민간에서는 뿌리줄기 10g을 물 700ml에 달여 아침저녁으로 마시거나, 달인 물로 눈병을 씻었다. 심지어 주독(술독) 해소나 태독(피부 독소)에 즙을 바르는 식으로도 활용됐다. 다만 국화, 현삼, 우슬과 함께 쓰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이 전해진다. 약재로 쓰이는 만큼 채취 시기는 9~10월이 적당하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썰어 햇볕에 말려 사용한다.
깽깽이풀은 관상용으로도 많이 알려졌다. 예쁜 꽃과 낮은 키 덕분에 정원이나 나무 밑에서 관상용으로 심기 좋다. 다만 한때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했을 만큼 개체수가 많지는 않기에 화분에 심어 키우기보다는 자연 상태에서 보호하며 감상하는 게 바람직하다.
재배는 까다로운 편이다. 종자 번식과 분주 번식이 가능하지만, 종자는 꽃이 진 뒤 약 한 달 만에 익으며, 5월 중하순에 즉시 파종해야 발아율이 높다. 종자가 마르면 발아가 어려워지니 주의가 필요하다. 분주 번식은 봄과 가을에 포기를 나눠 심으면 된다. 이식은 1년 뒤 봄에 하고, 토양 수분을 잘 유지해야 뿌리가 건강히 자란다. 수확은 11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 가능하며, 잎과 뿌리를 함께 말려 약재로 쓴다. 다만 뿌리를 상하지 않게 캐는 게 중요하다.
깽깽이풀은 일본에서도 독특한 이름으로 불린다. 일본에서는 ‘타츠타소우(竜田草)’라고 하는데, 이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 군함 타쓰타의 승조원이 조선에서 채취해 간 데서 유래했다. 또 다른 일본 이름 ‘이토마키소우(糸巻草)’는 잎이 실감개(실패)처럼 생겼다는 데서 왔다.
개미와의 공생, 약용 가치, 그리고 생태적 희소성은 깽깽이풀이 한반도 자연의 소중한 일부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효능 때문에 무분별한 채취로 위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