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만들 때 쓰는 재료인데...먹을 수도 있다는 신기한 한국 나물
2025-05-0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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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살리는 나물로 널리 알려진 식재료

길가를 걷다 보면 모르는 사이 발밑을 가득 채운 풀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중에서도 줄기가 튼튼하고 키가 큰 식물 하나가 시선을 끈다. 평범해 보이면서도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식물, 바로 명아주다. 어린순은 나물로, 줄기는 지팡이로, 뿌리와 잎은 약용으로 쓰이며 긴 세월을 함께해온 명아주를 다시 들여다본다.
들에서 솟은 생명력, 명아주의 생태
명아주는 석죽목 명아주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원산지로 하며, 현재는 한국 전역을 비롯해 세계 온대와 열대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밭과 길가, 빈터, 햇볕이 잘 드는 초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교란이 심한 곳에서도 꿋꿋이 뿌리를 내리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줄기는 곧게 자라며 60cm에서 150cm, 때로는 2m에 이르기도 한다. 녹색 또는 붉은색을 띠는 줄기에는 세로로 줄이 나 있고, 갈라지는 가지가 많아 줄기 하나만으로도 꽤 풍성한 형태를 만든다. 어린 명아주 잎은 특유의 흰 가루를 머금은 듯한 질감이 있어 햇빛을 받으면 은은한 광택이 퍼진다. 잎은 어긋나며, 모양은 마름모형 또는 삼각형에 가깝고, 가장자리는 불규칙한 톱니를 이룬다.
꽃은 5월에서 10월 사이 줄기 끝과 잎겨드랑이에 이삭 형태로 핀다. 수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 원추꽃차례를 형성한다. 황록색 꽃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한창 피어 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 단정한 정적이 느껴진다. 열매는 포과로 납작한 원형이다. 익으면 광택 있는 검은색을 띤다.
명아주는 한국 전통 민속지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풀이다. 예부터 구황식물로 여겨졌다. 어린 순이 봄철 부족한 영양을 보충해주는 중요한 식재료였다. 주변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 특별한 관리 없이도 무성하게 자라는 특징 덕분에 지금도 밭이나 들판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나물에서 지팡이까지, 명아주의 다채로운 쓰임
명아주는 사람들의 식탁과 손끝 모두를 지켜온 식물이다. 봄이 되면 명아주의 어린순을 따서 나물로 먹는다. 부드럽고 향이 진한 순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찬물에 여러 번 헹궈 쓴맛을 제거하고 무쳐 먹는다. 양념은 간장, 마늘, 참기름, 깨소금 정도면 충분하다. 명아주 특유의 쌉쌀한 맛과 고소함이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고추장을 더해 맵게 무쳐도 좋지만, 명아주의 향을 그대로 느끼려면 간장으로 간을 하는 쪽이 낫다.
된장국에 넣거나 밥을 지을 때 함께 넣으면 봄철 영양식이 완성된다. 명아주순을 말려두면 묵나물로 활용 가능해 겨울에도 풍미를 이어갈 수 있다. 특히 나물을 무칠 때는 너무 연한 순보다 약간 여문 순을 사용하는 것이 식감과 맛 모두에 균형을 준다.
명아주의 쓰임은 식탁에만 머물지 않는다. 가장 유명한 용도는 단연 지팡이다. 명아주는 뿌리부터 줄기까지 단단하면서도 가볍다. 줄기를 통째로 뽑아 껍질을 벗기고, 부목에 묶어 곧게 말린 뒤 사포질, 기름칠, 옻칠 과정을 거치면 마치 오래된 고목처럼 질긴 지팡이로 변신한다. 이 지팡이를 ‘청려장(靑藜杖)’이라 부른다. 신라시대부터 장수의 상징이자 실제 생활용 도구로 널리 사용됐다.

본초강목에는 “청려장을 짚으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고 기록돼 있다. 지팡이를 받은 나이에 따라 이름도 달랐다. 쉰 살에 자식이 주면 가장, 예순 살에 마을에서 주면 향장, 일흔 살에 나라에서 주면 국장, 여든 살에 임금이 주면 조장이라고 했다. 명아주 지팡이는 튼튼하고 놀랄 만큼 가볍기 때문에 노인들의 보행을 돕는 데 최적화돼 있다.
이 지팡이는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을 방문했을 때 선물로 쓰였다. 안동 도산서원에는 퇴계 이황이 사용한 청려장이 유물로 남아 있다. 그만큼 명아주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오랜 전통과 정신을 품은 상징이기도 하다.
몸을 살리는 들풀, 명아주의 약성
명아주는 오래전부터 약초로도 널리 활용돼 왔다. 생잎에는 해독 성분이 있어 벌레에 물렸을 때 즙을 짜서 발라왔고, 일사병에도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예부터 여름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명아주즙을 마시거나 찜질에 활용한 이유다.
민간에서는 소화를 돕는 데에도 명아주가 사용됐다. 두부를 먹고 체했을 때 명아주의 잎과 줄기를 찧어 즙을 낸 뒤 하루 세 번 한 숟가락씩 먹으면 체기가 내려간다는 기록도 있다. 명아주를 말려 차처럼 우려 마시면 위장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부 질환에도 활용된다. 명아주와 들국화를 함께 달여 피부 트러블이나 두드러기가 생긴 부위를 씻으면 가려움증이 줄어든다. 항염 성분이 풍부해 민감한 피부를 진정하는 데도 적절하다. 직접 바르기보다는 외용제로 사용하거나 목욕물에 우려 쓰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명아주에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성분도 포함돼 있다. 지방대사와 순환계 개선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에 현대인 식습관에도 잘 어울리는 식물이다. 특히 다이어트를 위한 건강식품으로 재조명되면서 최근에는 일부 농가에서 식용 명아주를 전문 재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명아주는 뿌리까지 억세지만, 실제로 땅 속 깊이 뿌리내리는 능력은 높지 않다. 대신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줄기와 잎을 뻗으며 주변을 차지하는 특성이 강하다. 이처럼 강인한 특성 덕분에 농약과 비료 없이도 잘 자라고 병충해에 강해 유기농 재배에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