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때문에 '고추' 열리는 나무인 줄 알았는데... 신기한 한국 나물
2025-05-0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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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제철이라는 한국의 산나물

산골짜기에서 은은한 꽃향기를 뿜으며 자라는 고추나무는 이름 때문에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얼핏 들으면 매콤한 고추가 주렁주렁 열릴 것 같은 이름을 지녔지만, 고추나무는 고추와 전혀 다른 식물이다. 고추가 가지과에 속하는 초본 식물이라면, 고추나무는 무환자나무목 고추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이다. 이름은 잎과 꽃이 고추와 닮았다는 데서 비롯됐을 뿐 열매는 고추가 아닌 ‘고추알’로 불리는 삭과(2개 이상의 심피로 이루어진 씨방이 성숙하여 된 열매)다. 고추나무는 한국의 산과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봄이면 어린 순을 나물로 즐길 수 있는 고추나무의 매력에 대해 알아봤다.
산과 계곡의 은은한 이웃, 고추나무의 생태
고추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역에 분포한다. 한반도에서는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산지에서 자생한다. 주로 산기슭, 골짜기, 냇가 같은 습기가 적당한 환경을 선호한다. 고추나무가 자라는 곳엔 반드시 계곡이 있다는 말도 있다.
고추나무는 숲 가장자리나 그늘진 숲 중심부에서도 잘 자란다. 높이 3~5m 정도의 낙엽 활엽 관목 또는 소교목이다. 가지가 둥글고 약간 칙칙한 녹색을 띤다. 잎은 마주나며, 세 장의 작은 잎으로 이뤄진 깃꼴잎 구조를 가진다. 잎 모양은 달걀형으로 양끝이 좁고, 가장자리에는 바늘 같은 잔톱니가 있다. 이 잎이 고춧잎과 닮아 고추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꽃은 5~6월에 새 가지 끝에서 원추꽃차례로 핀다. 흰색 꽃잎과 꽃받침, 다섯 개의 수술, 하나의 암술로 이뤄진다. 꽃에는 꿀이 많아 곤충들을 끌어들인다. 특히 초여름 숲에서 흰 꽃은 짙은 초록과 대비돼 눈에 띈다. 열매는 9~10월에 익는 삭과다. 반원 모양이며 윗부분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안에 든 연한 노란색 씨앗은 광택이 나며, 이 열매를 ‘고추알’이라 부른다. 뿌리는 얕게 퍼지며, 추위에 강해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한다. 지역에 따라 개절초나무, 미영꽃나무, 매대나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같은 고추나무를 가리킨다. 꽃말은 ‘미신’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고추나무 순의 제철은 초봄, 특히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로, 이때 어린 잎과 순이 가장 부드럽고 맛이 좋다. 이 시기에 채취한 순은 나물이나 장아찌로 활용되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소박하지만 귀한 식재료로 사랑받는다.
고추나무 순, 소박한 산나물의 맛
고추나무 순은 훌륭한 재료다. 초봄에 채취한 어린잎과 순은 부드러운 식감, 은은한 향, 고소한 맛을 지니고 있다. 주로 나물로 무쳐 먹거나 장아찌로 담가 즐긴다. 나물로 요리할 때는 채취한 순을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소금, 참기름, 다진 마늘, 간장 등으로 간단히 무친다. 이 과정에서 순 특유의 고소함이 살아난다. 약간의 쌉쌀한 뒷맛이 입맛을 돋운다. 장아찌로는 간장이나 고추장 베이스에 절여 두었다가 밑반찬으로 내놓는다. 장아찌는 고추나무 순의 아삭한 식감을 오래 보존하며, 짭짤한 감칠맛이 더해져 밥과 잘 어울린다.
요리법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강원도나 경상도 산간 지역에서는 고추나무 순을 된장과 함께 무쳐 깊은 풍미를 더하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데친 순을 말려 보관했다가 겨울철에 나물로 먹는다. 맛은 전체적으로 고소하고 부드럽지만, 생으로 먹을 때는 약간의 떫은맛이 느껴질 수 있어 데치는 과정이 필수다. 고추나무 나물은 산나물 특유의 담백함과 자연의 향을 그대로 담고 있어,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한 식탁을 완성한다.
건강을 챙기는 산의 선물
고추나무는 식용뿐 아니라 약용으로도 오랫동안 사용됐다. 한방에서는 고추나무의 잎, 뿌리, 열매를 건해, 어혈, 산후풍 치료에 활용했다. 특히 어린 잎은 면역력 증진과 관절염 예방 및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 연구는 많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고추나무 순은 소염 작용과 혈액 순환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항산화 성분을 포함해 노화 방지와 피로회복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고추나무 꽃은 꿀이 풍부해 차로 우려 마시기도 한다. 꽃차는 은은한 향과 함께 진정 효과를 주며, 봄철 피로를 풀어주는 데 좋다. 뿌리는 약재로 쓰인다. 주로 탕이나 달임 형태로 사용된다.
고추나무는 관상용으로도 가치가 높다. 봄의 흰 꽃과 가을의 노란 열매는 정원이나 공원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목재는 가볍고 단단해 소규모 공예품 제작에 쓰이기도 한다. 이처럼 고추나무는 식용, 약용, 관상용, 목재까지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만능 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