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아서 농부도 지긋지긋 여기는 잡초... 정말 맛있는 나물이었다
2025-05-0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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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에게는 골칫거리인데 훌륭한 식재료라는 한국 나물

봄바람이 논두렁을 스치고, 햇살이 땅을 따뜻하게 덥히면 한국의 들판 곳곳에서 연분홍의 가느다란 줄기들이 고개를 내민다. 쇠뜨기 혹은 뱀밥나물로 불리는 이 식물은 시골 사람들도 대부분 잡초로 알고 있는 식물이다. 쇠뜨기에 대해 알아봤다.
뱀밥, 그 이름의 기원과 생태
쇠뜨기는 속새과에 속하는 상록성 양치식물이다. 한국을 비롯한 북반구 온대 지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초지, 길가, 논두렁, 밭두렁 등 햇볕이 잘 들고 습기가 적당한 곳에서 자란다. 뿌리줄기가 땅속 깊이 뻗어 있어 제거가 쉽지 않은 잡초로 악명이 높다. 뿌리를 완전히 뽑지 않고 줄기만 뜯으면 마디에서 끊어지며 다시 자라나는 특성 덕분에 농부들에게는 골칫거리다.
쇠뜨기는 두 가지 줄기로 나뉜다. 먼저 이른 봄, 3~4월에 올라오는 생식줄기는 연분홍 또는 연한 갈색을 띠며 가지를 치지 않고 곧게 선다. 이 생식줄기 끝에는 뱀 머리처럼 생긴 포자낭이삭이 달려 포자를 퍼뜨린다. 이 포자낭의 독특한 모양이 바로 ‘뱀밥’이라는 이름의 기원이다. 길쭉하고 가느다란 생식줄기가 뱀을 닮았고, 포자낭이 뱀의 머리를 연상하게 한다. 포자를 퍼뜨린 생식줄기는 곧 말라죽고, 그 뒤에 밝은 녹색의 영양줄기가 자라난다. 영양줄기는 높이 20~40cm, 지름 3~4mm로, 마디마다 비늘 모양의 퇴화한 잎과 가지가 돌려난다. 줄기 속은 비어 있고, 겉에는 6~10개의 능선이 있어 단단한 느낌을 준다.
한국 전역에서 자라는 쇠뜨기는 특히 제주도와 강원도 등 습한 환경에서 더 흔하다. 사막을 제외한 북반구 온대 및 한대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그 생태적 적응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의 폐허 속에서도 가장 먼저 싹을 틔운 식물로 기록될 만큼 방사능과 열에도 강한 뿌리줄기를 자랑한다. 이런 강인함 덕분에 쇠뜨기는 야생에서 토양 침식을 막고, 유해 물질을 흡수해 물과 흙을 정화하는 데 기여한다.
뱀밥나물의 식탁 위 변신
쇠뜨기 제철은 봄, 특히 4월에서 5월 사이에 절정을 이룬다. 이 시기에 생식줄기인 뱀밥이 땅속에서 올라오며, 이때 채취한 뱀밥은 나물로 요리해 먹기 좋다. 영양줄기도 식용 가능하지만, 주로 부드러운 생식줄기를 선호한다. 뱀밥은 포자낭을 터뜨리며 포자를 퍼뜨리므로, 제초 시기를 놓치면 주변으로 빠르게 번진다. 따라서 요리를 위해 채취할 때는 포자낭이 터지기 전 싱싱한 상태로 뜯는 것이 중요하다.
쇠뜨기를 요리하려면 먼저 손질이 필수다. 줄기에 붙은 검은색 껍질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은 뒤,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1분 정도 데친다. 데친 쇠뜨기는 찬물에 1시간 정도 담가 아린 맛을 빼고, 물기를 제거해 요리에 사용한다. 이 과정은 쇠뜨기 특유의 떫고 쓴 맛을 줄여 부드러운 식감을 만든다.
대표적인 요리법으로는 조림, 볶음, 무침이 있다. 첫 번째, 쇠뜨기 조림은 일본 만화 리틀 포레스트에 등장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손질한 쇠뜨기 200g에 간장 50ml, 설탕 2큰술, 미림 25ml, 물 100ml를 넣고 센 불에서 졸이면 짭조름하고 달큰한 반찬이 완성된다. 포자낭을 제거하거나 고사리처럼 껍질을 벗기면 더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두 번째, 쇠뜨기 볶음은 간단하면서도 담백하다. 손질한 쇠뜨기 80g에 들기름 3큰술과 소금을 약간 넣어 중불에서 2~3분 볶으면 고소한 풍미가 살아난다. 마지막으로 쇠뜨기 들깨가루 무침은 식초 1큰술, 설탕 1큰술, 소금 약간, 들깨가루 1큰술로 양념을 만들어 버무려 상큼하고 구수한 나물을 완성한다. 이 요리들은 쇠뜨기의 쌉싸름한 맛과 단단한 식감을 잘 살려 한국의 봄 식탁에 어울린다.
맛은 어떨까. 고사리와 비슷한 식감에 약간의 쌉싸름함과 떫은맛이 특징이다. 손질과 조리 과정에서 쓴맛이 줄어들지만 특유의 야생초 느낌은 남는다. 이 맛이 고소한 들기름이나 간장의 풍미와 만나면서 조화롭게 변신한다.
효능과 문화 속 쇠뜨기
쇠뜨기는 단순한 나물이 아니라 약용 식물로도 오랜 역사를 갖는다. 본초습유에 따르면, 쇠뜨기는 항염, 항균, 진정 효과가 있다.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고 간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뇨 작용을 도와 체내 노폐물 배출을 돕고, 고혈압과 결막염 치료에도 사용됐다. 현대 연구에서는 쇠뜨기에 규산염이 풍부해 뼈 성장과 상처 치유, 면역 기능 활성화, 동맥경화 예방에 기여한다고 밝혀졌다. 지방, 단백질, 비타민 C, 칼륨, 칼슘, 마그네슘 등 무기질 함량이 높아 영양 면에서도 뛰어나다. 과거에 ‘쇠뜨기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항암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적이 있으나 과학적으로 명확히 입증되진 않았다.
문화적으로도 쇠뜨기는 다양한 매체에서 주목받았다. 만화 ‘아빠는 요리사’와 ‘짱구는 못 말려’에서 뱀밥 요리가 등장하며 대중에게 친숙해졌다. ‘시끌별 녀석들’에서는 뱀밥에 주문을 걸어 여우로 변신한다는 전설이 소개되며 신비로운 이미지를 더했다. 중학교 교과 과정에서도 양치식물의 대표로 고사리와 함께 소개된 까닭에 학생들에게 익숙한 식물이다.
쇠뜨기엔 생태적 가치도 있다. 깊은 뿌리는 토양을 고정해 침식을 방지하고 유해 물질을 흡수해 환경 정화에 기여한다. 검은잎벌 애벌레가 먹이로 삼는 식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