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밥상에선 회·구이·찜 별미…외국에선 전투 식량이었다는 '생선'

2025-05-04 16:11

add remove print link

2차 세계대전 당시 식량난 해결에 도움
피카소도 사랑했다는 생선

우리나라에서는 회는 물론 무침, 구이, 찜 요리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제철 별미가 과거 2차 세계 대전 중 식량난을 해결도 도왔다고 한다.

오일을 바른 서대 생선 / nito-shutterstock.com
오일을 바른 서대 생선 / nito-shutterstock.com

바로 '서대' 이야기다.

서대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생선이다. 전남 여수, 남해안 일대에서는 흔히 ‘참서대’, ‘줄서대’, 혹은 ‘박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생김새가 납작해 광어나 가자미로 오해받기 쉽지만, 그 맛과 쓰임은 매우 다르다. 회로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살이 단단하고, 구이로 조리하면 속은 부드럽고 겉은 바삭해지는 매력이 있다. 된장을 푼 양념에 졸이면 감칠맛이 우러나와 밥도둑으로 손꼽힌다. 큰 가시가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서대가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유다.

서대회무침 / TV 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서대회무침 / TV 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우리나라에서는 서대를 회로 썰어 다양한 채소와 양념을 버무려먹는 서대 회 무침, 살짝 건조시켜 구워 먹는 반건조 서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 2차 세계 대전 식량난의 숨은 공신, 서대

하지만 서대는 단순히 식재료 그 이상이다. 이 생선에는 시대적 의미와 역사적 무게도 담겨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는 ‘도버 솔(Dover sole)’이라는 서대 종류가 전시 식량난을 해소한 구세주로 떠올랐다. 주로 도버 해협 연안에 서식하던 이 생선은 흔하고 조리가 쉬워 국민 식탁에 자주 올랐다. 이 때문에 피시 앤 칩스에도 자연스럽게 사용됐고, 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전쟁 시기 국민 단결의 상징이 되었다.

윈스턴 처칠은 회담장에서 이 생선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생선을 먹은 국민의 인내와 헌신이 오늘의 승리를 만들었다”는 메시지를 담아 미국과 프랑스를 설득했고, 결과적으로 영국은 막대한 전쟁 보상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음식이 외교적 무기가 된 셈이다. 사용된 생선은 도버 솔로,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진 연안에서 잡히는 종이다. 현재는 뫼니에르(버터 생선구이)나 튀김 요리에서 고급 재료로 쓰이지만, 과거엔 서민의 음식이었다.

양념을 넣고 굽는 서대 / Agorca-shutterstock.com
양념을 넣고 굽는 서대 / Agorca-shutterstock.com

서대는 고대 로마 시절부터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17세기 프랑스 왕 루이 14세는 다양한 서대 요리를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화가 피카소 역시 서대를 좋아해 ‘보그’ 인터뷰 중 직접 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오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이어져온 서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가장 자주 접해온 생선 중 하나다.

◈ 수온 상승으로 점점 보기 힘들어져

그러나 현재 서대는 점점 귀해지고 있다. 해양 수온 상승과 남획으로 인해 어획량이 급격히 줄고 있다. 해양수산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산 서대의 연간 어획량은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이에 따라 국산 자연산 서대는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수입산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중국산 양식 서대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맛과 식감 면에서 차이가 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서대 특유의 탄력 있는 육질과 담백한 맛은 자연산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수 앞바다를 비롯한 남해안 전역에서 서대가 잡힌다. 회무침이나 구이로 먹는 것은 물론, 말려서 꾸덕꾸덕하게 숙성한 뒤 약불에 천천히 구워 먹는 방식도 인기다. 젤라틴이 풍부한 서대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살아나며, 간장에 재워 굽거나 전처럼 부쳐도 훌륭한 식사가 된다.

지금이 서대의 제철이다. 봄부터 여름 사이 잡히는 서대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맛도 깊어진다. 손질된 서대는 냉동 상태로도 유통돼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지만, 가장 맛있을 때 즐기기 위해서는 지금 식탁에 올리는 것이 좋다.

home 김지현 기자 jiihyun1217@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