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독사를 주식으로 잡아먹고 사는 '뱀 중의 왕'
2025-05-0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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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담에도 등장... 독사들도 두려워하는 한국의 희귀 뱀
한반도의 야산과 논밭, 돌무더기 사이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뱀 능구렁이. 붉고 검은 무늬가 선명한 이 능구렁이가 왜 '뱀 중의 왕'으로 불린다. 까치살무사 같은 맹독성 뱀마저 주식으로 삼기 때문이다. 능구렁이에 대해 알아봤다.
능구렁는 뱀목 뱀과에 속하는 파충류다. 한국에서는 능사 또는 능구리로도 불린다. 이름에 '구렁이'가 들어가지만 분류상 구렁이와는 다른 속에 속해 구렁이와는 뚜렷이 구분된다. 몸길이는 보통 70~140cm. 한국에 서식하는 뱀 중 큰 편에 속한다. 드물게 2m를 넘는 개체도 존재한다. 등은 적갈색 바탕에 흑갈색 또는 검은색의 굵은 띠 무늬가 50~70개, 꼬리에는 18~20개가 배열돼 있다. 배는 은백색으로 무당벌레 날개 무늬와 비슷한 색 배열을 띤다. 머리는 넓고 주둥이 끝은 둥글며 가늘고 뾰족한 형태를 보인다. 이 독특한 외형은 능구렁이를 한반도 뱀들 사이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만든다.
능구렁이는 야행성이다. 눈이 작아 낮에는 돌틈, 나무 그루터기, 또는 그늘진 곳에 숨어 지낸다. 주로 농경지, 민가 주변, 야산, 논밭 주변의 돌무더기, 강변의 돌무더기, 묘지의 돌담 등에서 발견된다. 한국에서는 울릉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분포한다. 중국, 대만, 베트남, 일본의 쓰시마 섬과 류큐 열도에도 서식한다. 한반도에서는 논두렁이나 습한 지역에서 자주 목격된다. 가을철 야간에 도로 위에서 로드킬로 희생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는 야행성 습성과 느린 움직임 때문이다. 국내 뱀 중 로드킬 비율이 높은 종으로 알려져 있다.
먹이 습성은 능구렁이를 '뱀 중의 왕'으로 불리게 한 핵심 요인이다. 능구렁이는 두꺼비, 개구리, 들쥐, 물고기, 두더지, 새알, 도마뱀, 소형 조류, 소형 포유류 등을 먹는다. 특히 다른 뱀을 적극적으로 사냥한다. 그중에서도 까치살무사를 적극적으로 먹는다. 까치살무사는 한반도에서 독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독사다. 까치살무사 외에도 살무사, 무자치, 심지어 덩치가 큰 유혈목이까지 사냥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이런 식성 덕에 능구렁이는 한국에서 ‘뱀 중의 왕’이란 별칭을 얻었다. 흥미롭게도 소형 조류는 선호하지 않는다. 먹이가 부족할 때에만 어쩔 수 없이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능구렁이는 독이 없는 뱀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중국 연구진에 의해 듀베르누아선(독샘의 일종)이 발견되며 독사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로 인해 유혈목이와 비슷한 약한 독성을 가질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빨이 작아서 물려도 심각한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다만 세균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 물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과거엔 두꺼비를 먹은 능구렁이로 담근 능사주가 신경통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위험한 민간요법인 까닭에 현재는 권장되지 않는다.
난생이다. 한 번에 약 10개의 알을 낳는다. 능구렁이는 온도에 민감해 다른 뱀보다 일찍 10월 중순쯤 동면에 들어가고, 이듬해 4월경 활동을 시작한다. 동면 중에는 자연동굴이나 돌무더기, 나무 구멍 등에 숨어 추위를 피한다. 천적으로는 멧돼지, 맹금류, 담비, 수달, 삵 등이 있다.

성질은 사나운 편이다. 작은 공간에서 다른 뱀과 함께 사육하면 접근하는 뱀을 물거나 심지어 잡아먹는다. 이런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사육 시 다른 뱀과 절대 함께 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모든 뱀은 포획금지종인 까닭에 야생 능구렁이를 잡는 것은 불법이다. 다만 농장에서 번식한 개체는 개인 사육이 가능하다. 밀렵과 로드킬로 인해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다. 현재 멸종위기 등급은 관심대상(LC).
능구렁이는 한국 문화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속담에서 '능구렁이가 다 됐다'란 말은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실속을 챙기는 사람을, '능글능글한 능구렁이다'란 말은 교활하고 음흉한 사람을 비유한다. 이는 능구렁이의 느린 움직임과 은밀한 습성에서 비롯된 이미지로 보인다.
능구렁이의 생태적 역할도 주목할 만하다. 까치살무사 같은 독사를 잡아먹으며 생태계 내 독사 개체 수를 조절하는 데 기여한다. 동시에 쥐나 두꺼비 같은 농작물 해충을 먹으며 농경지 주변에서 간접적으로 인간에게 이익을 제공한다. 도시화와 농경지 개발로 서식지가 줄어들고, 밀렵과 로드킬로 개체 수가 감소하는 추세는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