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가장 희귀한 민물고기 중 하나... 한국서 사라지면 지구상 멸종
2025-05-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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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마저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볼 수 없는 물고기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한 민물고기가 한국에 살고 있다. 좀수수치. 이 특이한 이름의 민물고기는 전남 고흥의 작은 하천에서 고군분투한다. 한반도 고유종인 좀수수치는 한국의 남해안, 특히 고흥반도와 거금도, 금오도의 얕은 자갈 하천에만 제한적으로 서식한다. 몸길이 5cm 남짓한 이 물고기는 잉어목 미꾸리과에 속하며, 담황색 몸에 갈색 V자 무늬가 선명하게 박힌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귀여운 외모의 좀수수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돼 있다. 하천 개발과 수질 오염, 그리고 서식지 파괴로 인해 점점 더 생존이 위태로워지고 있는 물고기, 한국에서마저 사라진다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볼 수 없는 존재가 도는 물고기. 좀수수치에 대해 알아봤다.
좀수수치는 한국 고유종이다. 전 세계에서 오직 전남 고흥반도와 그 주변 섬들의 소하천에서만 발견된다. 이 물고기는 유속이 빠르고 수심이 20~80cm로 얕으며 자갈과 모래가 깔린 하천 바닥을 선호한다. 주로 수서곤충과 부착조류를 먹으며 살아가며, 6~7월경 산란기를 맞는다. 성체 한 마리가 낳는 알은 약 54개다. 알의 지름은 1.3~1.45mm에 불과하다. 몸은 길고 납작하며, 머리는 작고 눈은 작다. 입 주위에는 3쌍의 수염이 나 있고, 눈 밑에는 두 갈래로 갈라진 작은 가시가 있다. 측선은 불완전해 가슴지느러미 기부를 넘지 않으며, 다른 미꾸리과 물고기 수컷에게 있는 골질반은 없다. 이런 특징들은 좀수수치를 독특한 종으로 만든다.
1994년 금오도에서 어류 조사를 하던 중 처음으로 좀수수치가 발견됐다. 미기록종으로 확인된 이 물고기는 1995년 일본어류학회에 신종으로 등록됐다. 수수미꾸리와 비슷하지만 몸길이가 절반 정도에 불과해 ‘좀수수치’라는 이름을 얻었다. 당시 고흥과 여수 일대 소하천에는 꽤 많은 개체가 서식했지만, 2010년대 하천정비사업으로 자갈 바닥이 파괴되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현재는 고흥반도 일부와 거금도, 금오도에서만 소수가 확인된다.
좀수수치의 서식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고흥군 풍양면과 포두면, 여수시 남면, 금오도 등 과거 분포지였던 곳들에서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200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생태조사에 따르면, 이들 지역에서 좀수수치가 자취를 감췄다. 반면 023년 고흥 팔영산 인근에서 새로운 서식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인간의 개입과 자연적 환경 변화로 서식지가 이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새로 생기는 서식지보다 사라지는 서식지가 더 많다는 우려가 나온다.
좀수수치가 고흥 일대에서만 사는 이유는 지질학적 역사와 관련이 깊다. 학계는 빙하기 때 한반도와 중국 대륙이 연결돼 있을 때 미꾸리과 민물고기의 조상이 물길을 따라 남해안까지 이동했다고 본다. 이후 해수면 상승으로 물길이 차단되며 고흥반도와 주변 섬들에서 고립된 채 지역 고유종으로 진화했다고 본다. 고흥 수계는 섬진강이나 영산강과 연결되지 않아 좀수수치가 독특한 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2013년 학술지 ‘보전유전학’에 발표된 연구는 고흥 내 좀수수치의 유전적 차이를 분석해, 서쪽과 동쪽 개체군이 약 279만 년 전 갈라졌음을 밝혔다. 이는 고흥 내에서도 지역별로 다른 족보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좀수수치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어류 11종 중 하나다. 2012년 2급으로 지정됐다가 2018년 1급으로 격상되며 보호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하천정비사업과 골재 채취는 좀수수치에게 치명적이다. 자갈 틈에 숨어 사는 이 물고기에게 자갈 바닥을 파괴하는 공사는 생존을 위협하는 직격탄이다. 과거 고흥에서 서식지 보존을 위해 하천 개발에 항의하며 공사를 막은 사례도 있었다. 서식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좀수수치의 생존을 위협한다.
국립생태원은 2019년부터 좀수수치 복원 연구를 시작해 2020년 국내 최초로 인공증식에 성공했다. 2023년 5월 23일 고흥군 고읍천에 인공증식한 2000마리를 방류했다. 이들 개체는 2022년 거금도 신평천에서 채집한 40마리에서 증식된 것으로 몸길이 3~4cm의 준성체였다. 방류에는 봉래초등학교 학생들과 주민, 고흥군청 관계자 등 약 30명이 참여해 지역 사회의 관심을 보여줬다. 장기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서식지 개선과 보전 방안 마련에 힘쓰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좀수수치는 식용 가치가 없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왔다. 미꾸라지와 비슷한 외모와 작은 몸집 때문에 흔한 물고기로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물고기는 수백만 년 동안 한국의 독특한 환경에 적응해온 자연유산이다. 국내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도 영원히 사라질 국보급 가치를 지닌 민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