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제주에만 서식... 한국의 모든 파충류 가운데 가장 희귀한 '소형 뱀'

2025-05-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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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충류 중 유일하게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초휘귀 파충류

제주도의 깊은 숲과 중산간 초지대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작은 뱀. 연약한 겉모습 때문에 ‘처녀’를 뜻하는 제주 방언 ‘비바리’라는 이름을 얻은 비바리뱀은 한국에서 가장 희귀한 뱀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제주도에만 서식하는 이 뱀은 파충류 중 유일하게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돼 있다. 개발과 서식지 파괴로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는 비바리뱀에 대해 알아봤다.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은 1981년 제주도 한라산 성판악 사라오름 부근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미기록종으로 보고된 이 뱀은 독일 동물학자 귄터가 1889년 중국에서 최초로 채집해 신종으로 등록한 종이다. 발견 당시 작고 연약한 모습과 검은 댕기줄 무늬가 마치 처녀를 연상케 해 제주어 비바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은 뱀의 외형뿐 아니라 제주도만의 독특한 문화적 감성을 담고 있다. 비바리뱀은 몸길이 30~60cm의 소형 뱀이다. 황갈색 또는 적갈색 몸통에 검은색 정수리와 목덜미까지 이어지는 댕기 무늬가 특징이다. 배면은 담황색이나 황백색이며, 배비늘 양쪽 가장자리는 적갈색을 띤다. 비늘은 용골이 없어 매끄럽고,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 보이는 광택이 돈다. 머리는 약간 둥글거나 삼각형에 가까우며, 돌출된 눈과 어두운 홍채, 오렌지빛 붉은 띠가 있는 동그란 눈동자가 독특하다. 혓바닥은 검고 끝이 희며 둘로 갈라져 있다.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은 제주도 중산간 일대, 해발 600~700m 이하의 초지대와 관목림이 혼재하는 지역에서 주로 서식한다. 억새, 띠, 솔새, 잔디 같은 초본식물과 청미래덩굴, 찔레꽃, 보리수나무 같은 관목이 우거진 곳을 선호한다. 비바리뱀은 주로 줄장지뱀, 도마뱀 같은 소형 파충류를 먹고 산다.

작지만 연약하진 않다. 비바리뱀은 뱀을 잡아먹는 뱀로 유명하다. 자신보다 큰 뱀을 먹는 모습이 목격될 정도로 식성이 공격적이다. 활동 시기는 4월부터 10월까지. 특히 5~7월에 자주 관찰된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동면에 들어간다.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주도에만 서식하지만 해외에서는 중국 남부(하이난, 유난, 시추안), 타이완, 홍콩, 베트남 북부, 말레이시아, 인도, 태국 등 아열대 및 온대 지역에 분포한다. 제주도 내 개체군 밀도는 매우 낮아 관찰 빈도가 드물다. 국립생태원 자료에 따르면, 비바리뱀은 한라산 중산간뿐 아니라 해안가 주택지, 오름, 곶자왈 습지 등 다양한 환경에서 발견된다. 2016년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에서는 우포늪에서도 비바리뱀이 발견됐다는 기록이 있다. 비바리뱀의 서식지는 농경지와 산림이 이어지는 지역이 많은 까닭에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가 큰 위협으로 작용한다.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은 2012년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파충류 중 유일한 Ⅰ급 지정 사례다. 그만큼 보전 가치가 높고 멸종 위협이 심각하다. 또한 국외반출승인 대상종이기도 하다. 해외로 반출하려면 환경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은 관심(LC) 종으로 분류하지만, 한국에서는 제한된 서식지와 낮은 개체 수로 인해 위협이 크다.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부족한 까닭에 많은 생태적 특징이 밝혀지지 않았다. 먹이를 선택적으로 먹고 몸집이 작아서 사육이 어렵다. 먹이원 조달과 온도 조절이 까다로워 사육 환경을 유지하기 힘들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2019년부터 비바리뱀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야생 비바리뱀의 분변을 분석해 먹이원을 연구하고 소형 발신기를 부착해 공간 이용 패턴을 조사한다. 대만과 홍콩의 비바리뱀 서식 데이터를 활용해 제주도 외 남해안, 서해안, 경북 내륙 일부 지역이 잠재 서식지로 예측됐다. 이 지역은 평균 고도 384m, 기온 6~33도(평균 20도)로 비바리뱀이 선호하는 환경과 유사하다.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 국립생물자원관

비바리뱀은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형 파충류와 곤충을 먹는 중간 포식자인 이 뱀은 상위 포식자와 하위 생물 간 균형을 유지한다. 뱀 개체 수가 줄면 먹이 생물의 과도한 번식으로 전염병 위험이 커지고 생물다양성이 위협받는다.

제주도는 고온다습한 환경이라 뱀이 서식하기에 적합하다. 이 때문에 뱀과 관련된 설화와 신앙이 풍부하다. 조선시대 ‘제주풍토록’에는 뱀을 신으로 여겨 술을 바치며 빌었다는 기록이 있다. ‘남사록’에는 뱀을 잡아 죽이는 풍습도 언급된다. 김녕사굴 전설은 제주 뱀 신앙의 대표적 사례다. 이 동굴에는 사람을 삼킬 정도의 거대한 구렁이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설에서 관리가 뱀을 물리쳤지만, 무당의 당부를 어겨 죽었다는 결말은 뱀에 대한 경외심을 보여준다. 이 같은 문화적 배경은 비바리뱀 보전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한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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