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강이었는데…대낮 도심 하천서 포착된 멸종위기 동물 '2마리'

2025-05-0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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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이미 멸종된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

지난달 23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구수교 인근을 지나가던 시민 송인귀 씨는 물가 주변 바위 위를 오르내리며 장난치는 두 마리의 작은 동물과 마주했다. 순간을 포착한 송 씨는 휴대폰으로 이 장면을 촬영했고, 이 영상은 곧 울산시와 전문가들에 의해 놀라운 사실로 확인됐다. 바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수달이었다.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재구성한 수달 자료사진.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재구성한 수달 자료사진.

같은 구간에서 불과 며칠 뒤, 또 다른 멸종위기종이 목격됐다. 지난달 28일까지 울산역 앞 하천까지 이어지는 지역에서 큰고니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큰고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자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겨울 철새다. 도심 중심 하천에서 단기간에 두 멸종위기종이 잇따라 발견된 사례는 이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우연이 만든 경이로움'으로 보지 않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한상훈 박사는 송 씨가 촬영한 영상에 대해 "크기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올해 독립한 어린 개체로 추정된다. 먹이 자원이 풍부해 이 구간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태화강에서는 과거에도 수달의 흔적이 간헐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언양 반천, 울산과학기술원 인근 저수지, 태화루, 명정천, 회야강 일대에서도 수달의 서식 흔적이 포착됐으며, 일부 지역에는 무인 카메라가 설치돼 개체 모니터링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시민이 직접 생생한 장면을 포착한 경우는 드물어, 이번 사례는 지역 생태계 회복의 징표로 해석된다.

수달은 족제비과에 속하는 반수생 포유류로, 주로 밤에 활동하며 하천, 저수지 주변 굴에 서식한다. 둥근 얼굴과 짧은 귀, 물갈퀴가 발달한 발 등 물속 생활에 적응한 형태를 지녔다. 주로 메기, 미꾸라지, 개구리 등을 먹고 살아가며, 수질과 먹이 자원의 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태 지표종'이다. 현재는 남획, 서식지 파괴, 하천 오염 등의 이유로 개체 수가 급감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수달은 일본에서는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서도 개체 수가 많지 않아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함께 포착된 큰고니는 몸길이 약 150cm에 달하는 대형 조류로, 성체는 흰 깃털에 노란 부리 기부가 특징이다. 세계적으로는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에서 번식 후 겨울철 남하해 우리나라, 일본, 인도 북부 등지에서 월동한다. 국내에서는 주로 낙동강 하구, 천수만, 한강 등지에서 관찰된다. 고니류 중 월동 집단 규모는 가장 크지만, 개체 수는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큰고니는 수면 위를 떠다니며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으며, 주로 수생식물의 뿌리와 줄기, 연체동물, 작은 수서곤충 등을 섭취한다. 일반적으로 인적이 드문 조용한 수역에서 안정적으로 머무르는 특성이 있어, 도심 하천에서의 관찰은 하천 수질과 생물 서식 여건이 크게 회복됐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큰고니 / 울산시 제공(연합뉴스)
큰고니 / 울산시 제공(연합뉴스)

울산시는 이번 발견을 계기로 태화강 야생동물 모니터링 지역을 중하류 중심에서 상류 구간까지 확대하고, 무인 카메라와 시민 제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실시간 생물다양성 자료를 축적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도심 생태계 회복이 실제 사례로 확인된 만큼, 시민과 함께 서식지 보전 활동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때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는 등 오염으로 악명 높았던 태화강이 이제는 수달이 물장구치고, 큰고니가 날갯짓하는 '생명의 강'으로 바뀌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태화강은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이 10mg/L에 이를 정도로 오염돼 공업용수로도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죽음의 강'이라는 오명도 이 시기 붙었다.

하지만 2004년 울산시가 '생태도시 울산'을 선언하며 본격적인 강 살리기 사업에 착수했고, 이후 생태계는 점차 회복됐다. 지금은 3월이면 황어가 돌아오고, 8~9월엔 백로를 비롯한 다양한 철새들이 몰려든다. 태화강과 울산만은 동해안 최초로 국제철새 이동 경로 네트워크(동아시아-호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 EAAFP)에 등재되며 생태 허브로 공식 인정받았다. 태화강을 따라 조성된 십리대숲과 삼호대숲 일대는 2019년 국내 두 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유튜브, 경상일보TV

도심 속 하천, 그리고 시민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긴 멸종위기종 수달과 큰고니. 이들의 모습은 자연이 우리 곁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신호이자, 울산시민과 행정이 함께 만들어낸 생태 복원의 결실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보전과 공존의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장면이었다.

home 김희은 기자 1127khe@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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