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새로운 종' 보고... 전 세계서 오직 한국에만 사는 멸종위기 물고기

2025-05-0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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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빠가사리’로 불리며 매운탕 재료로 쓰인 물고기

전 세계에서 오직 대한민국에만 사는 메기 닮은 물고기가 있다. 맑은 물이 자갈 위를 굽이치며 흐르는 여울에서 작지만 단단한 몸으로 돌 틈을 누비는 물고기다. 퉁사리. 이 작은 민물고기는 한국의 하천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며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1987년 신종으로 발견된 이래 퉁사리는 그 독특한 생태와 희소성으로 학계와 환경보호가의 주목을 받아왔지만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댐 건설과 하천 환경의 변화 때문에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로 지정돼 있다. 금강과 만경강의 여울을 지키던 퉁사리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퉁사리 / KBS
퉁사리 / KBS

퉁사리는 메기목 퉁가리과에 속하는 민물고기다. 한국 고유종으로 금강, 만경강, 영산강, 그리고 과거 웅천천의 중상류 여울에서 발견됐다. 몸길이는 보통 7~10cm로, 큰 개체는 12cm까지 자란다. 몸은 길쭉하고 약간 통통하며, 꼬리 쪽은 좌우로 납작하다. 머리는 위아래로 납작하고, 눈은 매우 작아 머리 위쪽에 치우쳐 있다. 피막에 덮인 작은 눈은 퉁사리가 야행성임을 보여준다. 입은 주둥이 끝에 위치하며, 위턱과 아래턱의 길이가 거의 같다. 입 주변에는 4쌍의 수염이 있어 어두운 물속에서 먹이를 찾는 데 도움을 준다. 몸은 짙은 황갈색을 띠고, 등은 더 진하며 배는 담황색이다. 모든 지느러미 가장자리는 밝은 황색으로 빛난다.

퉁사리의 두드러진 특징은 가슴지느러미의 뾰족한 가시다. 이 가시 안쪽에는 3~5개의 톱니 모양 거치가 있어 성장하면서 수가 늘어난다. 이 가시에 찔리면 심한 통증을 유발해, 지역에 따라 물쐐기, 쏜대, 탱가리 등 다양한 방언으로 불린다. 꽈리, 뚱어리, 짜게살이, 통쏘가리, 찌바귀 등 50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퉁사리는 지역 주민들에게 익숙한 존재였다. 비늘은 없고, 피부는 미끈한 점액질로 덮여 자갈 틈을 헤집고 다니기에 적합하다.

퉁사리 / 국립생물자원관
퉁사리 / 국립생물자원관

퉁사리는 주로 금강 이남의 서해로 흐르는 하천 중상류에 분포하한다. 맑은 2급수 이상의 하천에 산다. 유속이 완만하고 자갈이 깔린 여울부의 수심 50cm 내외 돌과 자갈 틈에 숨어 지낸다. 야행성인 퉁사리는 밤에 활동하며, 지렁이, 강도래 같은 수서 곤충을 주식으로 삼는다. 빠른 물살 속에서도 돌 틈에 몸을 고정하며 먹이를 사냥하는 적응력을 보인다. 산란기는 5월 말에서 6월 중순으로, 암컷은 평평한 돌 아래 모래를 파고 산란장을 만든다. 암컷은 100~120개의 알을 덩어리 모양으로 돌 아랫면에 붙이고, 수컷은 정자를 뿌려 수정시킨 뒤 알이 부화할 때까지 산란장을 지킨다. 수컷은 이 기간 먹이도 먹지 않고 알을 보호하며,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한 번에 낳는 알은 다른 물고기에 비해 적은 100여 개, 때로는 30~40개에 불과해 개체 수 증가가 어렵다.

퉁사리 / 국립생물자원관
퉁사리 / 국립생물자원관

퉁사리는 1987년 충북 영동군 심천면 금강 중류에서 손영목 서원대 교수에 의해 신종으로 보고됐다. 퉁가리와 자가사리의 중간적 특징을 보여 ‘퉁사리’라 명명됐으며, 퉁가리와는 가슴지느러미 거치 수로, 자가사리와는 턱 모양으로 구분된다. 이후 만경강, 영산강, 웅천천에서도 드물게 관찰됐지만, 1990년 웅천천의 보령댐 건설로 서식지가 파괴되며 이 지역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2001년 금강 상류에 용담댐이 들어서며 퉁사리의 서식 환경은 더욱 악화됐다. 댐으로 수량이 줄고 유속이 느려지면서 자갈 틈에 개흙이 쌓여 퉁사리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됐다. 2005년 2월 7일 환경부는 퉁사리를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했고, 1996년 4월 1일부터 특정야생동물로 보호하고 있다. 현재 퉁사리는 금강, 만경강, 영산강의 자갈이 많은 여울 초입에서만 극히 드물게 발견된다.

퉁사리 / 국립생물자원관
퉁사리 / 국립생물자원관

과거 퉁사리는 무주군 금강 본류에서 자가사리, 눈동자개, 동자개 등과 함께 ‘빠가사리’로 불리며 매운탕 재료로 쓰였다. 동자개는 양식으로 공급돼 빠가사리 매운탕의 주재료였지만, 퉁사리도 하천에서 잡히면 매운탕에 넣었다. 매운탕은 메기목 어류의 쫄깃한 살과 독특한 풍미로 지역 별미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멸종위기 1급 종인 퉁사리를 이제 절대 잡거나 먹어선 안 된다. 환경부는 불법 포획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며, 서식지 훼손을 막기 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퉁사리 복원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생물다양성연구소는 환경부의 멸종위기종 복원사업 일환으로 인공수정을 통해 치어를 증식하고 있다. 하지만 개체 수가 적고 서식지 환경이 열악해 복원에는 시간이 걸린다. 댐 하류의 수량과 유속을 조절하고 자갈 환경을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퉁사리는 생태적 가치가 크다. 메기목 어류 4000여 종 중 가장 적은 염색체를 가진 퉁사리는 진화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맑은 하천의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종으로, 퉁사리가 사라진다는 건 하천 생태계의 붕괴를 뜻한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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