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완전히 파괴” 미국이 소스라치며 반입 금지한 뜻밖의 한국 동물

2025-10-12 07:12

add remove print link

땅의 농부에서 생태계 파괴자로... 이 동물이 바꾼 미국 숲

미네소타 / 픽사베이
미네소타 / 픽사베이

우리에게 친숙한 지렁이. 흙을 파고들며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땅의 농부'로 불리며 고마운 존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이 완전히 뒤바뀌는 곳이 있다.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는 외래지렁이들이 오히려 울창한 숲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지렁이가 사라진 땅에 외래지렁이가 정착하면 벌어지는 일’이란 제목으로 ‘과학드림 [Science Dream]’ 유튜브 채널에 소개된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약 2만 년 전 빙하기가 찾아왔던 미국 중서부 숲에서 시작된다. 거대한 빙하가 5대호 지역까지 침투하면서 추위를 견디지 못한 토착 지렁이들이 완전히 멸종했다. 1만 년 전쯤 빙하가 물러간 후 숲은 다시 살아났지만 지렁이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다.

빙하가 침투하지 않았던 미국 본토의 다른 지역에는 토종 지렁이들이 존재했지만, 이들이 중서부까지 이동하기에는 지렁이의 이동 속도가 너무 느렸다. 실제로 생물학자들은 지렁이 개체군이 1년에 약 5~10m를 이동한다고 본다. 빙하기가 끝난 1만1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렁이들이 부지런히 이동했다고 해도 고작 55~110km밖에 이동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는 서울에서 대전까지도 안 되는 거리다.

미국 숲을 황폐화하는 아시아 지렁이. /     ‘과학드림 [Science Dream]’ 유튜브 채널
미국 숲을 황폐화하는 아시아 지렁이. / ‘과학드림 [Science Dream]’ 유튜브 채널

이런 이유로 미네소타, 위스콘신, 미시간주 등 빙하가 덮였던 5대호 지역의 숲들은 빙하기가 끝난 후에도 지렁이라는 분해자가 없는 땅에 적응했다. 물론 분해자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숲 토양에는 곰팡이와 박테리아 같은 수많은 미생물 분해자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낙엽을 먹어 잘게 부숴주는 지렁이가 없는 탓에 이곳 토양의 유기물들은 아주 천천히 분해됐다.

실제로 지렁이가 없는 흙과 있는 흙은 유기물의 분해 속도가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특히 기온이 낮은 기후대에서는 곰팡이와 박테리아의 활동이 더디기 때문에 낙엽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새로 쌓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로 인해 이 숲 토양은 수백 년에 걸쳐 적게는 10cm에서 많게는 20cm까지 낙엽이 두껍게 쌓인 부식층으로 변했다.

이렇게 형성된 두터운 낙엽층은 미중서부 숲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겨울엔 땅이 얼지 않도록 토양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고, 여름엔 반대로 수분 증발을 막아 땅을 시원하고 촉촉하게 만들어줬다. 덕분에 수많은 식물이 이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곤충이나 새, 양서류 등 여러 동물들의 안식처가 됐다.

하지만 이 평화는 인간 활동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그 시작은 유럽에서 건너온 지렁이들이었다. 원목 무역이 활발해지고 낚시 미끼용으로 유럽의 지렁이들이 북미 숲으로 흘러들어오며 비극이 시작됐다.

미네소타대학교에서 토양학을 연구하는 유경수 교수는 지렁이가 침입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했다. "지렁이가 들어오면 낙엽층을 몇 년 안에 다 먹어버린다. 낙엽층을 다 먹어버리면서 그 밑에 있는 광물층과 섞어버리게 된다. 그러면 나무들이나 관목들이 뿌리를 묻었던 낙엽층이 사라지는 것이다."

유 교수는 "이런 변화로 인해 숲의 어린 나무들이 큰 타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미네소타 같은 경우에는 단풍나무가 참 많이 자라는데, 단풍나무들은 위에 커다란 나무들이 쓰러질 때까지 아주 작은 키로 수십 년을 지낼 수 있다. 그 수십 년을 기다리는 동안 낙엽층이 보호를 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보호해주는 낙엽층이 사라지는 것이다. 추위에서 보호해주고 사슴들에게 먹히는 데서 자기 몸을 숨겨주는 낙엽층을 잃어버리게 된다."

미국 숲을 황폐화하는 아시아 지렁이. / ‘과학드림 [Science Dream]’ 유튜브 채널
미국 숲을 황폐화하는 아시아 지렁이. / ‘과학드림 [Science Dream]’ 유튜브 채널

실제로 지렁이가 없던 숲에 지렁이가 침투하면 어린 묘목을 지켜줄 낙엽층이 완전히 소실된다. 게다가 지렁이로 인해 토양의 유기물이 빠르게 분해되면서 오랜 세월 농축됐던 영양분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와 식물들이 흡수하기도 전에 지하수에 씻겨 내려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유 교수는 지렁이가 낙엽층을 초토화하기 시작하면서 그 영향이 식물에서 그치지 않고 동물에게까지 미친다고 밝혔다. 미중서부 숲은 일명 송버드라 불리는 새들이 많이 사는데, 이 새들 중 일부는 낙엽에 둥지를 튼다. 그런데 지렁이로 인해 낙엽층이 사라지면서 이런 새들이 집을 지을 곳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실제 2011년 연구에 의하면 유럽지렁이의 침입이 시작된 위스콘신주의 숲에서 땅에 둥지를 트는 새인 오븐버드와 갈색 집박새의 새끼 생존율이 지렁이의 침입으로 인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도룡뇽과 같은 양서류들에게는 습기가 있는 낙엽층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들 역시 낙엽층이 사라지게 되면서 살 곳을 잃어가는 상황이다. 더불어 낙엽층이 서식지였던 절지동물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2022년 뷔르츠부르크대학교의 생태학자인 마티외 요엥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 앨버타주에서는 지렁이 침입 때문에 육상 절지동물의 개체수는 61%, 생물량은 27%, 종 다양성은 18%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심지어 이제는 토양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미생물마저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유 교수는 "낙엽층이 없어지면서 흙의 기후가 완전히 바뀐다"고 설명했다. "흙의 수분도 변하고 흙의 온도도 변하고 그다음에 흙의 유기물의 상태도 변하고, 그러면서 미생물에게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흙속에서 곰팡이가 좀 더 우세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지렁이가 침입한 후에는 박테리아가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런 식으로 토양 안에 있는 미생물 사이의 역할 분담도 바뀌고 흙에 있는 미생물의 종류도 바뀐다."

지렁이 침입으로 인해 토양 박테리아의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처럼 미생물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 토양 속 영양분과 물질 순환이 영향을 받게 돼서 숲 생태계 전반이 망가질 수 있다.

미네소타 / 픽사베이
미네소타 / 픽사베이

이렇게 유럽 지렁이의 침공으로 미국 숲이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 새로운 2차 침공이 시작됐다. 이번엔 한국의 지렁이였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에만 서식하는 건 아니고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가 원산지인 지렁이들인데, 이들이 어떤 경로로 미국까지 진출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지렁이들은 건드리면 펄떡펄떡 뛰는 특징 때문에 아시안 점핑웜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지렁이가 미국인들의 혼을 빼놓았던 것인지, 점핑웜에 대한 꽤 많은 영상들이 SNS에 올라와 있다.

이 아시아 지렁이들은 새로운 파괴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도대체 유럽 지렁이와는 어떻게 다르길래 위험한 침입종으로 떠오르게 된 걸까?

유 교수는 "점핑웜이 만들어내는 흙은 유럽 지렁이들이 만들어내는 흙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것은 내가 본 적이 없는 흙이다. 유럽지렁이들은 그 숲의 흙을 단단하게 만든다. 낙엽층을 없애고 유기물질과 흙을 혼합하면서 크게 밀도를 높인다. 그런데 점핑웜이 들어오면 흙을 완전히 느슨하게 만든다. 흙이 원두커피 만들고 나서 말리고 났을 때의 그 푸석푸석한 가루처럼 된다. 그래서 점핑웜이 있는 언덕을 걷게 되면 걸으면서 흙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런 특징 때문에 아시아 지렁이들이 점령한 토양에서는 낙엽이 빠르게 사라지는 건 물론 흙이 식물 뿌리에 단단히 붙어 있지 못해 식물 뿌리가 쉽게 뽑혀버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미스터리한 사실은 이 아시아 지렁이들이 원산지인 한국에서는 이런 특성을 띠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독 미국에 침입해온 녀석들만 흙을 이렇게 가루처럼 만들고 있다. 유 교수는 이게 지렁이의 개체수가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분자생물학적인 새로운 특징이 생긴 건지는 추가적으로 연구를 더 해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지렁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대체로 무성생식을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수 개체만 유입돼도 급속도로 퍼질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재밌는 건 아시아 점핑웜들은 기존에 침입해 자리잡은 유럽의 이슬지렁이를 몰아내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이슬지렁이들은 대체로 굴을 파며 생활하는데, 점핑웜들이 흙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놓는 탓에 이슬지렁이들이 더 이상 굴 자체를 만들지 못하고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침입종의 경쟁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물론 점핑웜과 공존하는 유럽 지렁이들도 있다. 아포렉토데아 속 지렁이들은 낙엽을 먹지 않고 흙 알갱이만 먹고 살기 때문에 점핑웜과 경쟁 관계에 있지 않다. 이렇게 아시아 지렁이들은 기존 유럽 지렁이들의 뒤를 이어 미국 숲에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긴다. 이게 과연 미중서부만의 일일까? 현재 고위도 극지방의 다른 지역들도 원래 빙하로 덮여 있다가 빙하가 점점 후퇴하는 지역들이 많은데, 그럼 마찬가지로 거기도 침입 지렁이들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을까?

유 교수는 "지렁이가 사람을 매개로 해서 지렁이가 없던 생태계에 들어가서 확장되고 있는 일은 미네소타만의 일이 아니고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극지 스웨덴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극지 핀랜드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알래스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아주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극지 쪽에 주로 본 곳들이 자작나무가 자라는 극지 서브아틱 숲들인데, 이들의 경우 낙엽층이 아주 두껍다. 20cm에서 30cm까지. 근데 미네소타에서 본 것처럼 이런 낙엽층들도 이슬지렁이가 들어오고 나면 한 5년 안에 없어진다."

물론 다른 극지방에서는 아직 미국만큼의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지렁이의 침입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만큼 생태학자들은 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침입 지렁이 문제는 단순히 숲의 파괴를 넘어 지구온난화와도 연관이 있다. 우선 지렁이가 없던 땅에 지렁이들이 정착해 낙엽을 먹어치우면서 유기물이 빠르게 분해돼 이전보다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문제는 이런 효과가 지금의 지구 온난화 속도와 맞물리면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빙하가 녹으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더 넓어지고 한편으로는 여러 항로들이 개척되고, 이에 따라 항구도시들이 만들어지면서 자연히 사람들이 유입될 수 있다. 유경수 교수는 이 과정에서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거나 지렁이를 미끼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지렁이가 없던 땅에 지렁이가 유입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지렁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온실기체가 발생할지는 아직 객관적인 수치로 연구가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문제다.

그렇다면 이 침입 지렁이를 제거할 방법은 없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방법은 없다고 한다.

유 교수는 "결국 지렁이는 한번 땅에 들어가면 없앨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유럽 지렁이 같은 경우에는 미네소타나 이런 데서는 졌다라고 생각한다. 뭔가 해야 되지 않을까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벌써 거의 모든 곳에 다 있으니까. 점핑웜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한번 막아보자. 이런 태세다."

지금은 지렁이에게 졌다고밖에 할 수 없다. 지렁이를 잡는 방법 중 하나는 2.5L 정도 되는 물에 겨잣가루를 40g 정도 풀어서 땅에 뿌린 뒤 지렁이가 땅 밖으로 기어나왔을 때 잡는 것이다. 이 방법을 그 넓은 숲에 다 적용할 수도 없을뿐더러 아시아 지렁이들은 이 겨잣가루에 잘 반응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지렁이를 퇴치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현재는 퇴치보다는 지렁이가 최대한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실제로 미네소타주에서는 지난해 7월 1일부터 주 내에서 점핑웜을 소유, 수입, 판매, 운송, 번식시키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물론 실효성이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사실 지렁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문제의 발단은 역시 사람이니까 말이다. 또 기존 토양에 쭉 살아왔던 지렁이들은 여전히 농경지의 흙을 비옥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이런 면에서 침입 지렁이는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유 교수는 "우리 연구에 따르면 지렁이는 정말 두 얼굴을 가진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자연 속에 있는 생명을 볼 때 우리 중심으로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지렁이가 흙에서 산다는 것을 생각하면 흙이라는 것을 더 크게 생각해봤을 때 흙은 인간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한 가장 가까운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지렁이가 사라진 땅에 외래지렁이가 정착하면 벌어지는 일’이란 제목으로 ‘과학드림 [Science Dream]’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