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 공원에서 후다닥 달아나는 도마뱀을 봤어요” (광주)
2025-05-0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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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마뱀 이름이 뭐예요?”
“이 도마뱀 이름이 뭐예요?”
9일 광주 북구 두암동 제1근린공원. 공원 보수 중이던 40대 남성 B씨의 눈에 낯선 생명체가 들어왔다. 행여나 잡힐세라 재빠르게 풀숲으로 사라진 작은 파충류. 어렸을 땐 고향인 전남 장성군에서 종종 보던 녀석이었다. 근 20년 만에 다시 본 도마뱀이 반가웠던 B씨는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녀석의 모습을 담았다. “과거엔 자주 봤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신기합니다. 이 도마뱀의 정체가 뭐예요?” B씨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첨부하며 이렇게 위키트리에 물었다. B씨가 본 도마뱀의 이름은 줄장지뱀이다. 어떤 동물인지 알아봤다.
줄장지뱀은 몸길이 약 46mm의 작은 도마뱀이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작고 귀여운 모습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 녀석의 진짜 매력은 꼬리에 있다. 꼬리 길이는 몸통의 2.5배, 약 115mm로 전체 길이가 15~20cm에 달한다. 긴 꼬리는 날렵한 움직임을 돕고, 위기 상황에서는 생존의 열쇠가 된다. 줄장지뱀은 천적에게 잡히면 꼬리를 스스로 끊어내고 도망친다. 이른바 ‘자절’ 행동이다. 잘린 꼬리는 신경이 남아 있어 꿈틀거리며 천적의 주의를 끌고, 그 사이 줄장지뱀은 재빠르게 도망친다. 이 과정에서 척추혈관이 수축해 출혈은 최소화된다. 놀랍게도 잘린 꼬리는 18~20일 안에 재생된다. 재생된 꼬리는 연골로 이뤄져 원래 뼈와는 다르고, 다시 끊어지지 않는다. 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생존 기술은 줄장지뱀의 생명줄이다. 도마뱀의 어원이 왜 ‘꼬리를 도막 내는 뱀’인지 알 수 있는 습성이다.
줄장지뱀 외모는 독특하다. 올리브색 또는 녹갈색 바탕에 흰색 또는 노란색 줄무늬가 머리부터 몸통, 때로는 뒷다리까지 이어진다. 특히 제주도 개체는 노란빛과 초록빛이 강해 더 화려하다. 몸 양옆의 비늘은 약한 돌기로 된 용골(龍骨)을 이루고, 등쪽 비늘은 더 강한 돌기를 가진다. 배쪽은 누런빛이 도는 흰색이나 녹색빛 흰색으로 부드러운 색감을 띤다. 피부는 도마뱀과 달리 거칠고 건조한 느낌이다. 또 하나의 구별 포인트는 뒷다리와 몸통 사이에 있는 서혜인공(샅구멍)이다. 줄장지뱀은 이 구멍이 한 쌍 존재하는데, 이는 페로몬을 분비해 짝짓기 상대를 유인하는 데 쓰인다. 반면 표범장지뱀은 10~12쌍, 아무르장지뱀은 3~4쌍을 가져 종 구분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도마뱀이 한국에도 사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줄장지뱀은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동아시아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국내에서는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주로 저지대 하천변, 야산, 풀숲, 도로변 잡초가 무성한 곳, 묵밭, 초원 등에서 서식한다. 흙 속, 모래 속, 나뭇잎 사이를 오가며 생활한다. 서울시에서는 보호 야생 생물로 지정돼 특별 관리된다. 이 녀석들은 주행성이다. 낮에는 햇빛이 잘 드는 나뭇가지나 바위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체온을 유지한다. 밤에는 풀 위에서 잠을 잔다. 외부 환경에 따라 체온을 조절하는 변온동물의 모습이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먹이로는 거미, 귀뚜라미, 메뚜기, 쥐며느리 등 작은 육상 곤충을 선호한다. 줄장지뱀은 뱀과 달리 아래턱뼈가 붙어 있어 큰 먹이를 통째로 삼키지 못한다. 대신 몇 번 씹어 먹이를 소화한다. 눈꺼풀이 있고, 발가락은 다섯 개씩이다. 발톱도 있어 나무를 오르거나 땅을 파는 데 유리하다. 이런 신체적 특징은 줄장지뱀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비결이다.
줄장지뱀의 번식기는 따뜻한 계절에 활발하다. 4월 동면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고 5월부터 짝짓기에 돌입한다. 수컷은 암컷을 만나면 옆구리를 물고 꼬리로 몸을 감아 교미를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암컷 옆구리에 이빨 자국이 남으면 암컷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짝짓기 후 암컷은 6~8월 사이, 보통 4~6개의 알을 낳는다. 알의 지름은 7.3~8.8mm로, 흙을 파서 묻거나 덤불 속, 돌 틈에 낳는다. 사육 환경에서는 화분 흙 속에 알을 낳기도 한다. 알은 약 한 달 뒤 부화해 새끼들이 세상으로 나온다.
줄장지뱀은 천적이 많다. 특히 새들, 그중에서도 때까치는 먹이를 나뭇가지에 꽂아 저장하는 습성이 있어 나무에 꽂힌 줄장지뱀의 모습이 가끔씩 발견된다. 천적을 피하기 위해 꼬리 자절은 필수적인 방어 전략이다. 하지만 꼬리 재생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꼬리에는 지방이 저장돼 있기에 이를 잃으면 다른 신체 성장이나 번식 활동이 제한된다. 재생된 꼬리는 이동 시 균형을 잡거나 나무를 오르는 데 덜 효과적이고, 방향 전환이 느려져 천적에게 더 취약해진다. 이처럼 꼬리 자절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카드다.

줄장지뱀은 일반 도마뱀과 종종 혼동되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도마뱀은 피부가 미끌미끌하고, 배의 비늘이 육각형인 반면, 줄장지뱀은 거친 피부와 사각형 배 비늘을 가진다. 도마뱀에겐 서혜인공(샅구멍)이 없지만, 줄장지뱀은 반드시 존재한다. 서혜인공은 줄장지뱀 같은 일부 파충류의 뒷다리와 몸통 사이에 있는 작은 구멍을 말한다.
국내 장지뱀류로는 줄장지뱀, 아무르장지뱀, 표범장지뱀이 있다. 과거 별도의 종으로 여겨졌던 장지뱀과 아무르장지뱀은 현재 아무르장지뱀으로 통합됐다.
줄장지뱀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해제종이다. 한때 그 수가 많지 않았지만 위협 요인이 해소돼 멸종위기종 지정 기준에 해당하지 않게 됐다.
줄장지뱀은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간다. 학교 화단, 공원 풀숲, 산기슭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 작은 파충류가 아이들에게 자연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이유다. 하지만 빠른 움직임 때문에 잡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줄장지뱀을 관찰할 때는 괴롭히지 말고 멀리서 지켜보라고 당부한다. 꼬리를 잡으면 놀라서 끊어버릴 수 있다. 그러면 의도치 않게 줄장지뱀 생존에 크나큰 부담을 안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