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한 동시에 아삭하다... 독보적인 식감 자랑하는 '한국 나물'

2025-05-0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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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멸치가 가지에 늘어선 것처럼 보인다는 한국 나물

멸가치라는 특이한 이름의 한국 나물이 있다. 이름에서 멸치를 떠올렸다면 맞다. 봄이면 나물로, 가을이면 약재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오랜 세월 함께해온 나물, 이름부터 독특한 멸가치의 매력을 하나씩 풀어본다.

멸가치 / '텃밭친구' 유튜브
멸가치 / '텃밭친구' 유튜브

이름의 유래와 생김새

멸가치라는 이름은 열매의 독특한 모양에서 비롯됐다. 방사형으로 퍼진 열매가 마치 멸치가 가지에 늘어선 듯 보인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지역에 따라 열치나 명어치로 불리는 멸치에서 ‘열가치’나 ‘명가지’ 같은 이름도 생겨났다. 이처럼 멸가치는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개머위, 옹취, 총취, 호로채, 말굽취 등 그 별칭만 열 가지가 넘는다.

멸가치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높이는 50~100cm 정도로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며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줄기와 잎 뒷면에는 끈적한 샘털이 빽빽이 나 있다. 잎은 삼각형에 가까운 신장형으로, 표면은 녹색, 뒷면은 흰빛을 띤다. 잎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으며, 뿌리잎은 꽃이 필 때까지 남아 있다. 꽃은 8~9월에 핀다. 가지 끝에 하얀 머리모양꽃이 하나씩 달린다. 꽃은 처음에는 흰색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연한 붉은빛으로 변한다.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곤봉처럼 생긴 수과는 방사형으로 퍼지며, 끈적한 샘털이 붙어 있어 사람 옷이나 동물 털에 달라붙어 씨를 퍼뜨린다.

멸가치 / 국립생물자원관
멸가치 / 국립생물자원관

멸가치는 한국 전역에서 자란다. 특히 산지나 들판의 그늘지고 습기 있는 곳을 좋아한다. 제주도 한라산 기슭이나 강원도 산골짜기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중국, 일본, 히말라야, 러시아 우수리 지역에도 분포한다. 이 식물은 집단으로 자라는 습성이 있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무리 지어 번성한다.

제철과 요리법

멸가치의 제철은 봄이다. 어린잎과 순이 가장 부드럽고 맛이 좋을 때다. 4~5월에 채취한 어린잎은 나물로 요리하기에 최적이다. 여름이 지나면 잎이 질겨지고 쓴맛이 강해진다. 가을에는 뿌리를 캐 약재로 쓴다. 하지만 나물로는 봄이 가장 적합하다.

멸가치를 나물로 요리하려면 어린잎과 순을 채취한다. 깨끗이 씻어 흙과 이물질을 제거한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30초에서 1분 정도면 충분하다. 너무 오래 데치면 식감이 물러진다. 데친 멸가치는 찬물에 헹궈 쓴맛을 뺀다. 물기를 짜고 적당한 크기로 썬다. 간장, 참기름,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무친다. 고소한 맛을 더하려면 깨소금을 뿌린다.

멸가치 / 국립생물자원관
멸가치 / 국립생물자원관

멸가치는 국거리로도 훌륭하다. 데친 멸가치를 된장국에 넣는다. 멸치 육수나 소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하면 더 깊은 맛이 난다. 감자나 두부를 함께 넣으면 부드러운 조합이 완성된다. 국은 쌉싸름한 멸가치의 풍미가 육수와 어우러져 구수한 맛을 낸다.

말려서 먹는 방법도 있다. 봄에 데친 멸가치를 햇볕에 말린다. 말린 멸가치는 겨울철 나물로 요리한다. 물에 불린 뒤 무침이나 국으로 조리한다. 말린 멸가치는 쫄깃한 식감이 더 두드러진다.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나온다.

멸가치 / '텃밭친구' 유튜브
멸가치 / '텃밭친구' 유튜브

멸가치의 맛은 독특하다. 처음 입에 넣으면 쌉싸름한 맛이 강하다. 하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온다. 식감은 특이하다. 쫄깃하면서도 아삭하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식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 조화로운 맛과 식감 덕분에 멸가치는 나물로 사랑받는다. 지역에 따라 멸가치를 말굽취라 부르며 된장찌개에 넣어 먹기도 한다. 제주에서는 멸가치를 데쳐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반찬으로 내놓는다.

효능과 약용

멸가치는 식용뿐 아니라 약용으로도 쓰인다. 뿌리는 기침, 천식, 산후 복통, 수종, 소변불통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뿌리를 말려 물에 달여 마신다. 외용으로는 뿌리를 으깨어 즙을 내 상처에 바른다. 이 즙은 진정과 소염 효과가 있다. 전초는 진정제, 이뇨제, 세안제로 사용된다. 멸가치의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쓰다. 이 쓴맛은 약효와 연결된다. 혈액순환을 돕고 어혈을 풀어준다. 몸이 붓거나 오줌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이뇨 작용을 한다.

멸가치 / 국립생물자원관
멸가치 / 국립생물자원관

민간에서는 멸가치를 세안제로 썼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진 않았지만잎을 우려낸 물로 얼굴을 닦으면 피부가 맑아진다고 믿었다. 부작용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멸가치의 삶과 미래

멸가치는 화려한 꽃도, 강렬한 향도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숲속 그늘에서 조용히 자라는 이 들풀은 오히려 그 점에서 특별하다. 끈적한 열매는 사람 옷이나 동물 털에 붙어 씨를 멀리 퍼뜨린다. 이 방식은 멸가치가 생존을 위해 택한 전략이다. 쇠무릎이나 도깨비바늘처럼 씨앗을 퍼뜨리는 다른 들풀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이를 귀찮게 여기지만, 멸가치에게는 자손을 이어가는 최적의 방법이다.

최근 멸가치는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야생 서식지가 줄었다. 하지만 종자 발아율이 높아 번식은 어렵지 않다. 늦가을이나 이른 봄에 뿌리를 나누거나 씨를 뿌리면 쉽게 자란다. 햇볕이 적은 화단에 심고 2~3일 간격으로 물을 주면 된다. 집단으로 자라는 특성을 살려 여러 개체를 함께 심으면 더 잘 번성한다.

멸가치의 꽃말은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다. 가을 숲 속에서 운명처럼 살아가는 이 식물은 이름 그대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안기는 나물이다.

멸가치 / '텃밭친구' 유튜브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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