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널려 있어 토종인 줄 알았던 이 나물... 알고 보니 고향이 북아메리카
2025-05-1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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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 주의해야... 링컨 어머니를 ‘우유병’으로 죽인 그 식물
남산을 걷다 보면 작은 깻잎을 닮은 잎 사이로 흰 꽃송이가 뭉쳐 피어 있는 풀을 만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눈이 쌓인 듯한 풍경이다. 서양등골나물이다. 예쁜 외모와 달리 한국 생태계를 위협하는 불청객이다. 하지만 어린잎은 먹을 수 있는 나물이기도 하다. 서양등골나물에 대해 알아봤다.
북아메리카에서 온 귀화식물
서양등골나물은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다. 한국에서는 1978년 서울 남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빠르게 퍼져 나갔다. 현재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남산, 북한산, 인왕산, 안산, 우면산 같은 서울과 근교 산지에서 무섭게 번지고 있다. 이 식물은 산기슭, 길가, 숲속 그늘에서도 잘 자란다. 햇볕이 드는 곳뿐 아니라 음지에서도 번성하는 강한 생명력이 특징이다.
이름의 유래는 한국 토종 식물인 등골나물에서 왔다. 등골나물과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서양’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서양등골나물은 등골나물보다 작다. 줄기 위쪽 잎의 잎자루가 길고, 모인꽃싸개잎이 한 줄로 배열돼 구분된다. 높이는 30~130cm 정도다. 줄기 윗부분에는 잔털이 있다. 잎은 마주나며, 난형으로 길이 2~10cm, 폭 1.5~6cm다. 잎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다. 꽃은 8~10월에 핀다. 흰색 관모양꽃 15~25개가 뭉쳐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열매는 수과로, 길이 약 2mm에 검은색 광택이 난다.
서양등골나물은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됐다. 2002년 환경부가 이를 공식 발표했다. 씨앗이 바람에 쉽게 퍼지고, 발아력이 강해 급속도로 번진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여러해살이 특성상 계속 자란다. 토종 식물의 자리를 빼앗는다. 주기적으로 제거 작업을 해도 번식력이 워낙 강한 탓에 완벽한 제거가 어렵다.
식용 가능하지만 독성 주의
서양등골나물은 어린잎은 먹을 수 있다. 봄철 새순이나 어린잎을 채취해 나물로 요리한다. 데쳐서 무침이나 볶음으로 먹는다. 맛은 부드럽고 약간 쌉쌀하다. 국화과 식물 특유의 은은한 향이 있다. 나물로 먹을 때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아린 맛을 제거한다. 간장, 고추장, 참기름으로 양념해 무치면 밥반찬으로 좋다. 볶을 때는 마늘과 멸치를 넣어 감칠맛을 더한다.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과다 섭취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서양등골나무 독성은 치명적일 수 있다. 서양등골나물은 북아메리카에서 ‘우유병’을 일으키는 식물로 악명 높다.
19세기 미국에선 서양등골나물을 먹은 소, 말, 염소의 우유를 마신 사람이 중독 증상을 보였다. 토하고, 손발을 떨며, 침을 흘리다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어머니(낸시 링컨)도 우유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성물질은 트레메톨(tremetol)이다. 이 물질은 동물의 우유나 고기를 통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목축지에 서양등골나물이 있는 경우가 없기에 이런 위험은 낮다. 그래도 생으로 먹거나 과하게 섭취하면 위험하다. 어린잎을 소량만 요리해 먹는 것이 안전하다.
생태계 위협과 관리의 딜레마
서양등골나물은 예쁜 꽃으로 오해를 산다. 흰색 꽃잎이 다섯 갈래로 갈라져 뭉쳐 피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서울시가 서양등골나물을 가로변에 심었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당시 결정은 생태계에 큰 부담을 줬다. 바람에 씨앗이 퍼지며 급속도로 확산했다. 현재는 수도권을 넘어 강원, 충청까지 퍼졌다. 다른 귀화식물과 달리 숲속 깊은 곳까지 침투한다. 역시 귀화식물인 개망초나 망초는 주로 햇볕 드는 길가에서 자란다. 반면 서양등골나물은 그늘에서도 번성한다. 자생식물의 생존 공간을 위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