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 시절 남은 생선으로 만들었는데…이제는 줄서서 사야한다는 '한국 음식'

2025-05-1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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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대표하는 별미, 다양한 분식으로도 즐겨

남은 생선 자투리를 모아 만든 피란민의 음식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별미가 되었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 amnat30-shutterstock.com
시장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 amnat30-shutterstock.com

오늘날 ‘어묵’은 간편한 간식이자 찌개, 전골, 도시락에까지 두루 쓰이는 국민 반찬이다. 하지만 이 음식이 처음부터 주목받던 재료로 만들어진 건 아니다. 부산 어묵의 뿌리는 일본의 가마보코에서 찾을 수 있다. 흰살 생선을 다져 만든 일본식 연육 요리인 가마보코는 에도 시대부터 전통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 부산으로 넘어온 일본인들이 그들의 가마보코를 조선 땅에 들여왔고, 부산 항구를 중심으로 어묵 가공 기술도 함께 전해졌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현실은 넉넉하지 않았다. 고급 어종을 엄선해 만드는 일본식 가마보코와 달리, 부산 어시장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작은 생선, 잔가시 많거나 물량이 넘쳐나는 비선호 어종들을 주재료로 삼았다. 부산 상인들은 이들 생선을 버리는 대신 살을 긁어내 다져 반죽한 후, 밀가루나 전분을 더해 튀겼다.

◈ 어묵, 한국식으로 다시 태어나다

어묵과 물떡 / mujijoa79-shutterstock.com
어묵과 물떡 / mujijoa79-shutterstock.com

1950년대 전쟁 이후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부산은 값싸고 따뜻한 어묵 한 꼬치가 위안이 되는 도시가 됐다. 당시 명동이나 서울 종로에서도 어묵은 팔렸지만, 기술과 대량 가공의 기반이 모인 곳은 부산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는 부산의 어묵 공장이 일본 수출까지 시작했고, 이 시기부터 부산 어묵은 전국적인 이름값을 얻기 시작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그저 끼니를 잇기 위해 시작된 이 음식은, 이후 부산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값싼 생선과 밀가루, 기름 한 통이면 누구든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란민의 손에서 만들어진 어묵은 그렇게 거리의 국물 간식이자 노동자들의 즉석 요리로 살아남았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부산의 명물로 떠오른 어묵은 ‘분식’이라는 단어를 넘어,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발전했다. 실제로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 인근에는 ‘고래사 어묵’, ‘삼진어묵’ 등 3대 어묵 명가로 불리는 가게들이 있다. 이 가게들 앞에는 평일 낮에도 긴 줄이 늘어선다. 테이크아웃 어묵바는 물론, 카페처럼 꾸며진 체험형 매장도 운영된다. 즉석에서 데운 어묵을 꼬치에 꽂아 먹는 관광객, 대형 냉장 쇼케이스에서 포장 세트를 고르는 가족 단위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다.

한 가게 관계자는 “예전엔 정말 시장에서 허기 달래려 사 가던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명절이나 선물 시즌엔 줄 서서 사야 할 정도”라며 “최근엔 일본, 홍콩, 대만 관광객들까지 일부러 찾아와 인증샷 찍고 간다”고 전했다.

◈ ‘부산’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

어묵 꼬치들 / Kanomaoi-shutterstock.com
어묵 꼬치들 / Kanomaoi-shutterstock.com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떠올리면 어묵 꼬치가 끓고 있는 정겨운 시장을 함께 연상한다. 전통시장뿐 아니라, 백화점·편의점·인터넷 쇼핑몰에까지 ‘부산 어묵’이라는 브랜드가 여전히 쓰이는 이유다. 현대에는 품질 좋은 생선을 다시 선별해 고급 어묵으로 재가공하는 브랜드도 늘었지만, 그 시작은 분명 ‘버려지던 생선의 살점’에서 출발했다.

특별할 것 없는 생선 몇 마리, 그리고 값싼 밀가루. 그 단순한 조합이 어묵을 국민 반찬으로 만들었다. 한때는 생선 부산물 처리 방식 중 하나였던 이 음식은, 지금은 오히려 한국의 대표적인 가공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원조가 아닌 복제였던 음식이, 재료도 기술도 변형되며 새로운 ‘국민 음식’으로 태어난 대표적인 사례다. 부산 어묵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진화한 한식 그 자체다.

home 김지현 기자 jiihyun121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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