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일부러 들여왔는데... ‘식물들의 저승사자’ 된 나물

2025-05-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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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 북아메리카인 정부지정 생태계교란종
수박이나 참외 접목할 때 사용했다가 퍼진 듯

가시박 / '자연인은경' 유튜브
가시박 / '자연인은경' 유튜브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길가에 짙은 녹색 융단이 깔린 듯한 풍경을 마주칠 때가 있다. 공해 속에서 꿋꿋이 자라는 이 덩굴식물은 언뜻 생명력의 상징처럼 보인다. 이 식물은 한국 생태계를 뒤흔드는 외래종 가시박이다. ‘식물들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가시박은 흔하진 않지만 나물로도 쓰이는 동시에 주변 식물을 말려 죽이며 생태계를 장악하는 생태계교란종이다. 북미에서 건너와 농업과 식탁에서 복잡한 족적을 남긴 가시박에 대해 알아봤다.

가시박 덩굴 / '자연인은경' 유튜브

덩굴의 정체와 이름의 기원

가시박은 박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덩굴식물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다. 이름은 열매에서 왔다. 3~10개가 뭉쳐난 열매는 가느다란 가시로 덮여 있다. 이 모습이 박과 식물의 특징과 어우러져 가시박이란 이름을 얻었다. 지역에 따라 ‘안동오이’나 ‘안동대목’으로 불린다. 1980년대 안동에서 오이 접목에 활용된 역사에서 비롯됐다.

가시박 / 국립생물자원관
가시박 / 국립생물자원관

줄기는 4~8m까지 자란다. 햇빛을 쫓아 12m까지 뻗는다. 덩굴손은 3~4갈래로 갈라져 다른 물체를 감는다. 잎은 손바닥 모양이다. 5~7갈래로 얕게 갈라진다. 지름은 8~12cm다. 잎은 부드럽지만 줄기와 열매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이 가시는 옷을 뚫는다. 꽃은 6~9월에 핀다. 수꽃은 누런 흰색이다. 총상꽃차례에 달린다. 암꽃은 연한 녹색이다. 머리 모양의 꽃차례를 이룬다.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흰 가시로 덮인 별사탕 모양이다. 한 그루에서 2만 5천 개 이상의 씨를 만든다. 번식력이 강하다.

가시박은 한국 전역에 퍼졌다. 강변과 습지에서 흔하다. 낙동강, 한강 등 4대강 유역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분포한다. 하천과 수로를 따라 씨앗이 퍼진다. 서울 밤섬, 올림픽공원, 노들섬에서도 발견된다. 최근 확산 속도가 빨라졌다.

접목의 역사와 유입 경로

가시박 유입 경로는 두 가지 설로 나뉜다. 첫째, 1960년대 미군 군수물자와 함께 유입됐다는 설이 있다. 포천의 미군 기지에서 식료품 폐기물과 함께 씨앗이 유출됐다가 강변으로 퍼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군 기지 주변 농경지에서 처음 발견됐다. 둘째, 접목용으로 의도적으로 들여왔다는 얘기가 있다. 1980년대에 오이와 수박 품종 개량을 위해 수입했다는 얘기가 있다. 접목이란 식물의 가지·눈을 잘라 내어 근연(近緣) 식물에 접합 및 유착해 번식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안동 농민들은 가시박에 오이를 접목해 고품질 오이를 생산했다. 하지만 실패한 개체가 야생화됐다. 두 설에 등장하는 가시박이 모두 확산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 미군 유출은 초기 씨앗을 퍼뜨리고 접목 도입은 대규모 확산을 가속했을 수 있다.

가시박 / 국립생물자원관
가시박 / 국립생물자원관

가시박은 한때 한국 농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앞에서 기술했듯이 박과 식물의 접목용 대목으로 쓰였다. 접목은 두 식물의 조직을 결합하는 기술이다. 가시박은 뿌리와 줄기가 튼튼하다. 병충해에 강하다. 오이, 수박, 참외의 대목으로 적합했다. 가시박의 뿌리는 영양분을 잘 흡수한다. 작물의 생장력을 높인다. 수확량을 늘린다. 1980년대 후반 안동에서 오이와 접목해 안동오이를 개발했다. 병해에 강해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접목은 복잡하다. 기술 난이도가 높아 성공률이 낮다. 실패한 개체가 버려져 가시박이 야생으로 퍼졌다. 안동과 포천에서 확산이 두드러진 것이 이를 방증한다.

가시박 / 국립생물자원관
가시박 / 국립생물자원관

현재 소규모 오이 농가에서 가시박을 사용한다. 뿌리가 깊다. 토양 영양분을 효율적으로 흡수한다. 오이 생장 속도를 높인다. 하지만 야생 확산 문제로 사용이 제한된다. 정부는 씨앗 유출 방지를 위해 관리 지침을 강화했다.

생태계의 저승사자

가시박은 ‘식물들의 저승사자’로 불린다. 주변 식물을 말려 죽인다. 덩굴로 다른 식물을 덮는다. 햇빛을 차단한다. 타감물질을 뿜는다.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한다. 가시박만 살아남는다. 토종 식물에 치명적이다. 낙동강변과 하천 생태계가 위협받는다. 종 다양성이 1.5~2배 감소한다. 토양 질소 함량은 1.3~4배 높아진다. 2009년 환경부는 가시박을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했다.

가시박 / 국립생물자원관
가시박 / 국립생물자원관

제거는 어렵다. 가시가 작업을 방해한다. 뿌리가 남으면 다시 자란다. 하루 30cm씩 자란다. 더욱이 씨앗이 1㎡당 700~1300립이나 분포한다. 생존기간도 2~6년이나 된다. 환경이 맞지 않으면 60년까지 씨앗 상태로 싹이 틀 때까지 대기할 수도 있다. 방제법은 씨앗 맺히기 전 덩굴을 뽑거나 자르는 것이다. 가시밭이 자라는 하천변은 접근하기 어렵고 제초제는 다른 식물까지 해친다. 충남에선 가시박 제거를 위해 고압 살수 장비와 특수 칼날까지 개발했다. 하지만 전국 확산을 막기엔 부족하다.

가시박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유럽, 호주에서도 불청객이다. 생태계를 교란해서다.

식탁 위의 가시박

가시박은 식탁에서 어느 정도 잠재력이 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어린 순과 잎을 채취한다. 끓는 물에 데친다. 찬물에 헹궈 쓴맛을 줄인다. 간장, 마늘, 참기름으로 무친다. 나물로 먹는다. 잎은 호박잎처럼 쪄서 쌈으로 먹는다. 약간의 단맛이 난다. 이 단맛은 풋풋한 매력을 더한다. 한 유튜버는 가시박 잎과 왕우렁이로 강된장을 만들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가시박 / 국립생물자원관
가시박 / 국립생물자원관

하지만 가시박을 이용한 요리는 대중적이지 않다. 맛과 식감이 뛰어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시가 손을 찔러 수확이 어려운 점도 식재료로서의 접근을 가로막는다.

차나 약으로도 쓴다. 잎과 줄기를 채취한다. 잘게 썰어 말린다. 1회 10~20g을 달여 복용한다. 중국 본초학에서는 ‘소편과’라고 부른다. 청열과 살충 효과가 있다. 위열, 구고, 심번희구, 회충병, 조충병 치료에 쓰였다. 현대 연구는 비알콜성 간질환과 항염 효과를 확인했다. 다만 실효성은 미미하다. .

양봉 농가에 이점이 있다. 가시박은 꽃과 꿀이 많다. 밀원식물로 유용하다. 방제 농약은 꿀벌에 피해를 준다. 가시박 바이오매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7종의 플라보노이드가 발견됐다. 시킴산(타미플루 원료) 추출법이 개발됐다. 퇴비로 사용하면 상추 수량이 17% 증가한다. 식용 매력은 제한적이지만 이용을 찾다 보면 식물들의 저승사자를 자원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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