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나물인데... 독일에서는 '약국'에서 취급하는 식물
2025-05-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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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혈·두통·염증 치료하고 진통·항우울 효과까지... 약 같은 한국 나물

물레나물이란 특이한 이름을 가진 나물이 있다. 깨끗한 공기가 흐르는 산지에서 자라는 이 나물은 노란 꽃잎과 선명한 붉은 꽃술로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국의 산과 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인 물레나물에 대해 알아본다.

어디서 자라고, 어떤 생김새인가
물레나물은 햇빛이 잘 드는 산지의 숲 가장자리나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란다. 한국 전역에 분포한다.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의 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중국, 일본, 몽골, 러시아, 베트남, 북아메리카 동부에도 퍼져 있다. 깨끗한 환경을 선호한다. 도시화된 지역이나 오염된 곳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줄기는 곧게 서며 높이는 50~120cm다. 약간 네모진 모양이다. 가지가 갈라지기도 한다. 잎은 마주나며 긴 타원형 또는 피침형이다. 길이는 5~10cm, 폭은 1~3cm다. 잎 끝은 뾰족하다. 밑부분은 심장 모양으로 줄기를 감싼다. 잎자루가 없다. 햇빛에 비추면 투명한 유점이 반짝인다. 이 유점에는 히페리신 성분이 들어 있다.
꽃은 6~8월에 핀다. 줄기와 가지 끝에서 취산꽃차례를 이룬다. 노란 꽃은 지름 4~6cm로 큼직하다. 꽃잎은 5장이다. 낫 모양의 넓은 난형이다. 약간 비틀려 바람개비처럼 배열된다. 꽃받침은 5장이며 크기가 다르다. 꽃술은 선명한 빨간색이다. 수술은 많다. 5개의 뭉치로 나뉜다. 암술은 1개다. 암술머리는 5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달걀 모양의 삭과다. 길이는 12~18mm다. 씨앗에는 작은 그물맥이 있다.
이름의 유래와 상징성
물레나물이라는 이름은 꽃잎의 독특한 모양에서 비롯됐다. 노란 꽃잎 5장이 한쪽으로 휘어져 있다. 바람개비나 물레바퀴가 도는 듯하다. 옛날 어머니들이 목화에서 실을 잣던 물레바퀴를 닮았다. 그래서 물레나물이라 불렀다. 이 이름은 한국의 전통적인 삶과 노동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실을 잣는 물레는 과거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오늘날에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지만, 물레나물의 이름은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린다.
영어명은 ‘성 요한 풀’이다. 세례 요한의 기념일인 6월 24일경 꽃이 피기 시작해서 붙여졌다. 꽃말은 ‘임 향한 일편단심’과 ‘추억’이다. 넉넉한 황금빛 꽃잎과 강렬한 꽃술은 성숙한 기품을 풍긴다. 깨끗한 자연에서만 자라는 특성은 순수함과 청정함을 상징한다. 여름 숲에서 고고하게 피어나는 모습은 자연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요리법, 맛, 그리고 약효
물레나물은 식용으로 사랑받는다. 어린잎과 순을 주로 사용한다. 제철은 봄에서 초여름이다. 꽃이 피기 전, 잎이 부드러운 5~6월이 가장 좋다. 맛은 약간 쌉쌀하다.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다. 상처를 내면 잎과 줄기에서 향긋한 냄새가 난다. 이 은은한 향은 요리에 독특한 풍미를 더한다.

가장 흔한 요리법은 나물 무침이다. 어린잎과 순을 채취한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30초에서 1분이면 충분하다. 데친 나물은 찬물에 헹군다. 물기를 짠다. 볼에 간장, 참기름, 다진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을 넣고 버무린다. 고추장이나 된장을 약간 추가하면 매콤하거나 구수한 맛이 더해진다. 이 무침은 밥반찬으로 훌륭하다. 쌉쌀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고기와 함께 먹으면 느끼함을 잡아준다.
된장국도 좋은 방법이다. 물레나물 순을 씻는다. 3~4cm 길이로 자른다. 멸치 육수를 낸다. 된장을 푼다. 나물을 넣는다. 감자, 호박, 두부를 추가하면 단맛과 고소함이 어우러진다. 나물은 오래 끓이지 않는다. 2~3분이면 적당하다. 부드러운 식감이 된장의 구수함과 조화를 이룬다. 아침 식사로 가볍게 먹기 좋다.
튀김 요리도 별미다. 어린잎을 씻는다.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다. 밀가루와 찬물을 섞는다. 묽은 반죽을 만든다. 나물에 반죽을 묻힌다. 170~180도 기름에 튀긴다. 노릇하게 익으면 건져낸다. 소금이나 간장 소스를 찍어 먹는다. 바삭한 식감이 나물의 은은한 향과 어울린다. 맥주 안주로도 제격이다.
물레나물은 약용으로도 쓰인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홍한련이라 부른다. 가을에 채취한다. 햇볕에 건조한다. 맛은 약간 쓰다. 성질은 차다. 열을 내린다. 부기를 가라앉힌다. 지혈 효과가 있다. 해독 작용도 한다. 타박상, 토혈, 출혈, 두통, 피부 염증, 종기, 부스럼 치료에 사용된다. 연주창 같은 피부질환에도 효과적이다. 주요 성분은 히페리신과 히페리포린이다. 히페리신은 붉은색 형광 물질이다. 항균 작용이 강하다. 히페리포린은 항우울 효과와 관련 있다.
권순경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서양에서는 ‘성 요한 풀’로 유명하다. 항균 작용 덕분에 세균성 피부질환에 쓰인다. 미국과 독일에서는 추출물이 항우울제로 사용된다. 신경통이나 긴장성 두통에도 효과적이다. 말린 전초를 뜨거운 물에 우려낸다. 차로 마시면 통증이 줄어든다. 진통 효과는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에 버금간다. 독일 약국에서는 차 형태로 판매된다. 한국에서도 물레나물의 항우울 효과가 인정됐다. 2008년 건강기능식품 교과서에 실렸다. 우울증 예방과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
히페리신엔 광독성이 있다. 햇볕에 노출되면 독성을 나타낸다. 이 성질을 활용해 약을 개발할 수 있다. 염증성 질환에도 효과가 좋다. 축농증, 편도선염, 중이염, 방광염 치료에 유용하다. 고추나물과 비교하면 물레나물은 꽃이 더 크다. 수술이 5개의 뭉치로 나뉜다. 암술대는 5개다. 고추나물은 잎에 검은 반점이 많다. 물레나물은 투명한 유점이 특징이다.
재배는 어렵지 않다.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한다. 사질양토가 적합하다. 습기가 충분해야 한다. 배수가 잘돼야 한다. 씨앗으로 번식한다. 포기나누기도 가능하다. 가을에 씨를 뿌린다. 다음 해 여름 꽃을 볼 수 있다. 포기나누기는 늦가을이나 이른 봄에 한다. 노지에서 월동한다. 오래된 포기는 눈이 많다. 나누기할 때 주의한다. 화분에 심을 경우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둔다. 흙이 마르지 않도록 관리한다.
물레나물은 관상용으로도 인기다. 정원이나 공원에 심는다. 여름철 노란 꽃이 화사하다. 친환경 농업에서는 천연농약으로 활용된다. 전초를 생즙 내거나 달인다. 살균과 구충 효과가 뛰어나다. 꽃이 피거나 열매가 달린 시기에 채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