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잘 자려면 커피만 참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문제는 '빨대'

2025-05-12 19:31

add remove print link

플라스틱, 수면의 적: 당신의 생체 리듬은 안전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건강 위협: 플라스틱과 수면의 비밀

우리가 매일 무심코 사용하는 플라스틱이 커피처럼 생체 리듬을 교란해 수면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노르웨이 과학기술연구소(NTNU)의 연구진은 최근 국제 환경보건학술지 ‘Environment International’을 통해 플라스틱에서 배출되는 특정 화학 물질이 인간의 생체 시계, 즉 ‘서카디안 리듬’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로 인해 수면의 질이 저하되고, 장기적으로는 당뇨병, 면역체계 이상과 같은 건강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연구진은 실험실 환경에서 인간 세포에 PVC(폴리염화비닐)와 PU(폴리우레탄) 재질의 플라스틱에서 추출한 화학 물질을 노출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사용된 소재는 의료용 음식물 공급 튜브, 수분 공급 파우치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제품들에서 채취된 것이다. 특히 PVC는 장판, 전선 피복, 장난감, 우비 등 다양한 생활용품에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이며, PU는 수영복과 레깅스, 속옷 등에 활용되는 ‘스판덱스’ 소재의 주요 성분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그 결과, 플라스틱 화학 물질이 신체의 생체 리듬을 조율하는 ‘아데노신 수용체’에 영향을 미쳐 신호 전달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데노신은 낮이 되면 ‘이제 깨어날 시간’이라는 신호를 뇌에 전달하며, 밤에는 피로를 느끼게 해 수면을 유도한다. 그런데 플라스틱 속 물질들이 아데노신 수용체를 과도하게 자극하면서 실제 아데노신의 작용을 방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신체는 하루 주기를 정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생체 리듬이 흐트러지게 된다.

이 과정은 커피 속 카페인이 각성을 유도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카페인은 아데노신 수용체와 결합해 아데노신의 피로 신호를 차단하면서 뇌를 깨어있게 만든다. 플라스틱의 화학 물질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용하지만, 그 효과는 덜 강력하더라도 더 오랜 시간, 지속적 노출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연구를 이끈 마틴 바그너 박사는 “해당 화학 물질은 호르몬에 비해 세포 반응을 더 빠르게 유도할 수 있다”며 “플라스틱이 단순히 물리적 폐기물 문제가 아니라, 인체 건강에도 조용한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 몸은 하루를 주기로 작동하는 정교한 시계를 갖고 있는데, 외부 환경에서 유입되는 화학 물질들이 그 흐름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신체 재생과 면역 유지, 정신 건강을 좌우하는 핵심 생리 활동이다. 생체 리듬이 흐트러지면 불면증,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뿐만 아니라 대사 기능 저하, 염증 반응 증가로 이어져 다양한 만성 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당뇨병이나 우울증처럼 리듬의 불균형과 밀접하게 연관된 질환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빨대 / tawanroong-shutterstock.com
빨대 / tawanroong-shutterstock.com

실험은 아직 시험관 단계에 머무르고 있어 사람의 실제 생활 환경에서 플라스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플라스틱 제품에서 유래한 화학 물질이 인체 내 신경전달과 호르몬 조절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전 연구들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이번 연구는 그 영향이 수면이라는 구체적인 생체 주기에까지 미친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신체에 밀착되는 제품 사용 시 플라스틱 성분을 확인하고, 가급적 유해 화학물질이 적은 소재를 선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식품이나 물을 담는 용기 역시 환경호르몬이 새어 나올 수 있으므로 고온에 노출되거나 장기간 재사용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플라스틱은 이미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소재다. 그만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노출되는 시간도 길고, 축적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건강한 수면을 지키기 위해 커피 섭취만큼이나 생활 속 플라스틱 사용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home 위키헬스 기자 wikihealth75@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