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기 수수께끼였던 태백산맥 비밀, 하찮은 외모의 한국 고유종은 알고 있었다

2025-05-1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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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가치 넘어 지질학적 수수께끼 해명에도 실마리 제공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고유종 어류가 단순한 생물학적 가치를 넘어 지질학적 수수께끼 해명에도 실마리를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 수 세기간 학자들이 제기해 온 수많은 질문에 방점을 찍을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고유종 '참종개' 얼굴 / 유튜브 '국립중앙과학관'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고유종 '참종개' 얼굴 / 유튜브 '국립중앙과학관'

몸길이가 7~10cm에 이르는 작고 하찮은 외모의 참종개가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참종개의 머리와 몸은 굵고 옆으로 약간 납작한 긴 막대 모양이다. 주둥이는 길게 돌출되어 끝이 뾰족하고 작은 입 주변에는 3쌍의 입수염이 있다. 눈은 머리 중앙 위쪽에 있으며 그 아래에는 끝이 둘로 갈라진 가시 형태의 안하극이 있다. 등의 가운데에는 삼각형 등지느러미가 수컷의 가슴지느러미 기부에는 가늘고 긴 막대 모양의 골질반이 존재한다. 체색은 담황색 바탕에 등 쪽과 옆구리에는 갈색 반문이 있고 체 측 중앙 아래쪽에는 10~18개의 좁은 갈색 횡반문이 수직으로 배열돼 있다. 등 쪽에는 구름 모양의 얼룩무늬가 불규칙하게 퍼져 있다.

참종개는 하천 중상류의 유속이 빠르고 맑은 물, 자갈이 깔린 하천 바닥이나 그 근처에 서식한다. 주로 수서곤충과 부착조류를 먹고 살며 산란기는 6~7월로 추정된다. 노령산맥 이북의 서해와 동해로 흐르는 강과 하천, 특히 임진강, 한강, 금강, 만경강, 동진강, 삼척 오십천, 마읍천,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등에서 주로 발견된다. 이처럼 참종개는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고유종은 지리적으로 한정된 지역에만 자생하는 생물종을 의미하며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종 혹은 종 이하 생물종을 지칭한다.

참종개 표본 / 유튜브 '국립중앙과학관'
참종개 표본 / 유튜브 '국립중앙과학관'

국가 생물자원에서 고유종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개체군의 크기와 분포 범위가 작아 환경 변화나 외래종과의 경쟁에서 취약한 경우가 많고 유전적 교란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고유종이 사라지는 것은 단지 한 지역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지구상에서 멸종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유종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종의 관리 차원을 넘어 범국가적인 지속적 연구와 보호 체계가 필요하다.

참종개는 최근 수 세기 동안 의문으로 남아 있던 태백산맥 형성 시기와 관련해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했다. 그간 한반도의 산맥 형성 시기는 지질학적으로 2000만~3000만 년 전 이후로 추정됐으나 정확한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권예슬 박사의 연구팀이 국제 과학저널 〈계통분류학 및 생물다양성〉 7월 17일에 발표한 논문은 이 수수께끼에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권 박사는 참종개속 물고기를 다양한 유전자 마커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이 물고기들이 수계별로 다양한 종으로 분화해 진화한 시기가 태백산맥과 소백, 노령산맥 등의 주요 지질학적 사건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참종개의 몸길이를 자로 잰 모습 / 유튜브 '국립중앙과학관'
참종개의 몸길이를 자로 잰 모습 / 유튜브 '국립중앙과학관'

참종개속은 미꾸릿과에 속하며 이동 능력이 떨어지는 특성상 산간 계곡의 자갈이 깔린 맑은 하천 밑바닥에 서식하면서 수계에 따라 고유한 종으로 쉽게 분화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참종개속의 6종 모두가 한반도 고유종이며 주요 하천 별로 겹치지 않게 나뉘어 분포한다.

논문 교신저자인 이화여대 원용진 교수는 한반도 산맥 형성 시기를 기존 지질학적 방법이 아닌 어류의 종 분화 시기로 역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연구가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DNA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돌연변이 축적 정도를 측정하는 '분자시계' 기법으로 한 종의 분화 시기를 계산하는 방법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참종개속에서 동해안에 서식하는 북방종개가 분화한 시기는 약 1130만 년 전(1710만~776만 년 전)으로 나타났다. 원 교수는 “동해 형성 이후 막연히 추정해 온 태백산맥의 지질학적 나이에 대해 구체적인 시기를 특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생물집단이 고립됐다고 곧바로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건 아니다. 권 박사는 “생물이 고립된 뒤 적어도 수만~수십만 년 뒤에 종 분화가 일어난다고 본다면 실제 산맥 형성 시기는 종 분화보다 훨씬 이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분석은 소백, 노령산맥을 경계로 참종개와 부안종개의 공통 조상이 왕종개, 남방종개, 동방종개의 조상과 계통이 나뉜 시점을 계산한 결과에서 나왔다. 그 시기는 약 928만 년 전으로 추정됐으며 이 결과는 소백, 노령산맥이 태백산맥보다 나중에 융기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공동저자인 이완옥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 박사는 한반도 고유종 어류 대부분이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학계에 처음 보고됐는데 1975년 김익수 전북대 교수가 한국인 연구자로서는 처음으로 참종개를 신종으로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한국 학자들에 의한 고유종 연구가 본격화됐다고 했다.

참종개의 실제 크기 / 유튜브 '국립중앙과학관'
참종개의 실제 크기 / 유튜브 '국립중앙과학관'

참종개처럼 작은 물고기가 어떻게 험준한 산맥을 넘어 분포 지역을 넓힐 수 있었는가에 대한 물음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미국 예일대 김대민 박사과정생 등은 국제 과학저널 〈통합 동물학〉 7월호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홍적세 후기에 발생한 단층 활동이 하천 유로를 바꿔 참종개가 새 지역으로 유입됐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한강, 낙동강, 오십천과 그 주변 하천 어류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오십천 어류가 최근에야 고립됐음을 확인했다. 이 유전적 격리 시기는 오십천 단층이 활동했던 35만~17만 년 전과 일치했다.

연구자들은 오십천 단층이 홍적세 후기에 여러 차례 활동하면서 한강 최상류 골지천과 낙동강 상류 통리 계곡 일대가 붕괴해 그 물줄기가 오십천 상류가 되는 '하천쟁탈' 현상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지역이 석회암으로 이뤄진 카르스트 지형이어서 지하 하천을 통해 연결돼 있을 수 있으며 가능성은 작지만 1970년대 이후 오십천의 독특한 어류상이 확인된 점에서 사람이 산맥을 넘어 물고기를 옮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참종개는 생물학적으로 고유종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지질학적 역사와 진화 과정을 해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고유종 보전의 필요성과 함께 생물다양성과 지질학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고유종의 보호는 단지 생물의 보존을 넘어서 생태계와 자연사 이해의 핵심이자 지구 생물다양성 유지의 중요한 기초다.

유튜브, 국립중앙과학관
home 한소원 기자 qllk338r@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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