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한국 유일 물고기...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만 서식

2025-05-1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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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유일하게 눈꺼풀이 있는 멸종 위기 민물고기

꾸구리 / '딩가딩가 스튜디오' 유튜브
꾸구리 / '딩가딩가 스튜디오' 유튜브

한국의 맑은 여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비로운 생명체가 살고 있다. 고양이처럼 눈을 깜빡이며 자갈 사이를 오가는 물고기도 있다. 이 작은 물고기는 꾸구리. 대한민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고유종이다. 독특한 생태와 위태로운 운명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꾸구리에 대해 알아봤다.

꾸구리 / 국립생물자원관
꾸구리 / 국립생물자원관

꾸구리는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다. 몸길이는 보통 6~13cm 정도로 작다. 몸은 원통형이며 뒤로 갈수록 가늘어져 날렵한 인상을 준다. 황갈색 몸통에는 꼬리 쪽으로 짙은 갈색 가로줄 무늬 세 개가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등지느러미는 삼각형이고, 꼬리지느러미는 끝이 살짝 파인 형태다. 입 주변에는 한 쌍, 아래턱에는 세 쌍의 수염이 나 있어 물속에서 먹이를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수염은 특히 맨 뒤쪽이 눈 지름보다 길어 독특한 외모를 완성한다.

꾸구리 / 국립생물자원관
꾸구리 / 국립생물자원관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바로 꾸구리의 눈이다. 이 물고기는 물고기로는 드물게 눈꺼풀 같은 피막을 가지고 있다. 밝은 곳에서는 이 피막이 눈을 덮어 I자 모양의 가느다란 눈을 만들고, 어두운 곳에서는 피막이 물러나 둥근 눈을 드러낸다. 마치 고양이가 빛에 따라 동공을 조절하듯 꾸구리도 주변 밝기에 따라 눈 모양을 바꾼다. 이 신비로운 눈 덕분에 꾸구리는 물속 환경에 놀라울 정도로 잘 적응한다. 이런 독특한 눈이 꾸구리를 경이로운 물고기로 만들어 준다.

꾸구리는 맑고 빠른 물살이 흐르는 하천의 중·상류 여울에서 산다. 임진강, 한강, 금강 수계의 자갈이 깔린 얕은 물이 그들의 집이다. 수심 30cm 이내의 맑은 2급수 이상 환경을 선호한다. 자갈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이들은 바닥에 자갈이 두껍게 쌓인 곳을 좋아하는데, 이는 먹이를 찾고 포식자를 피하기에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천에 유기물이 쌓이거나 남조류, 녹조류가 번성하면 꾸구리는 더 이상 그곳에서 살아갈 수 없다. 깨끗한 물과 빠른 유속은 꾸구리의 생존에 절대적인 조건이다.

꾸구리 / '딩가딩가 스튜디오' 유튜브

꾸구리는 육식성이다. 주로 물속 곤충을 먹는다. 어린 치어는 깔따구 애벌레 같은 작은 먹이를 즐기지만, 성장하면서 하루살이, 날도래, 파리 같은 더 큰 곤충 애벌레를 사냥한다. 이들은 자갈 사이를 민첩하게 오가며 먹이를 찾아낸다. 치어 때는 노란 바탕색이 선명해 아름다운 외모를 뽐내지만, 성체가 되면서 색은 점차 황갈색으로 변한다.

꾸구리의 번식은 5~6월, 특히 5월에 절정을 이룬다. 수온 18~20도의 얕은 여울 가장자리, 수심 10~15cm 정도 되는 자갈밭이 산란 장소다. 암컷은 자갈 사이를 파고 들어가 알을 낳고, 수정된 알은 자갈에 붙어 3일 만에 부화한다. 산란 과정은 흥미롭다. 준비된 암컷이 물 위로 솟구치면 수컷이 다가가 배를 문지르거나 함께 빠르게 헤엄친다. 그러다 수면 가까이에서 수컷이 꼬리지느러미로 암컷을 감싸고, 암컷이 알을 낳는 순간 수컷은 정액을 방출해 수정한다. 이 짝짓기 춤은 물속에서 펼쳐지는 짧지만 아름다운 의식이다.

꾸구리의 삶은 위협에 둘러싸여 있다. 대한민국 고유종이자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다. 또한 한국 적색목록 취약(VU) 종으로 지정돼 있다. 과거 한강 수계, 특히 경기 여주시 금사면과 점동면 일대는 꾸구리의 대규모 서식지였다. 그러나 4대강 사업으로 이포보와 여주보가 들어서며 여울이 사라졌고 꾸구리도 자취를 감췄다. 하천 정비, 댐 건설, 보 설치 같은 인간의 개발은 꾸구리 서식지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과거에는 폐수나 농약으로 인한 수질 오염이 큰 위협이었지만, 서식지 자체의 소실 또한 심각한 문제다. 현재는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자연하천 일부에서만 드물게 발견된다.

꾸구리는 멸종위기종으로, 허가 없이 포획하면 법적 처벌을 받는다. 꾸구리 서식지에서 낚시를 자제하고, 비슷한 생김새의 물고기를 잡았다면 반드시 방생해야 한다. 같은 잉어과 돌상어와도 혼동되기 쉽다. 꾸구리는 지느러미에 작은 점 무늬가 있는 반면 돌상어는 무늬가 없어 구분할 수 있다. 참고로 돌상어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다.

꾸구리의 이름은 독특한 유래를 가진다. 일부는 ‘꾸구리다’라는 동남 방언에서 왔다고 본다. 이는 ‘구기다’, ‘구부리다’라는 뜻으로, 눈꺼풀로 눈을 조절하는 꾸구리의 특징을 반영한다. 다른 설로는 산란기 수컷이 내는 울음소리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꾸구리는 이름부터 생태까지 독특함으로 가득하다.

꾸구리의 생존은 우리나라 하천 생태계의 건강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들이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한 종의 멸종이 아니라 맑은 물과 자연 그대로의 여울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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