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너무 좋아 신선이 몰래 먹었다는 전설을 품은 ‘귀신 쫓는 열매’
2025-05-1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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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한국의 약용 식물
하늘타리란 이름을 가진 식물이 있다. 한국의 들판은 물론 시골 집 담벼락 주변에서 흔히 자라는 식물이다. 흔하긴 하지만 신선들이 몰래 먹다가 들켜 인간들에게 내줬다거나 귀신도 쫓는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어떤 식물이기에 이렇게 신비로운 이야기가 담긴 것일까. 하늘타리에 대해 알아봤다.
하늘타리는 박과에 속하는 덩굴성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2~6m까지 자란다. 덩굴손을 뻗어 나무, 담장을 감싼다. 시골에 가면 관리하지 않은 폐가가 하늘타리로 온통 덮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잎은 어긋난다. 단풍잎처럼 5~7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길이와 너비는 각각 8~15cm. 노랑하늘타리라는 변종은 잎이 3~5갈래로 얕게 갈라진다. 뿌리는 고구마처럼 굵다. 이따금 20kg이 넘는 무게의 뿌리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뉴스로 전해지기도 한다.
봄이면 이 뿌리에서 새순이 돋는다. 꽃은 6~8월에 핀다. 흰색 꽃은 지름 8~10cm. 꽃잎은 5개로 갈라지고, 끝은 실처럼 가늘게 찢어진다. 저녁에 피어나 다음 날 정오까지 유지된다. 박각시 나방이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열매는 9~10월, 늦게는 12월까지 익는다. 오렌지빛 또는 노란색으로 둥글다. 지름은 6~8cm. 속에는 연한 갈색 씨앗이 가득하다.
이름 유래가 흥미롭다. ‘하늘’과 ‘다래’가 합쳐진 말이다. 다래는 덩굴식물의 열매를 뜻한다. 덩굴이 다른 나뭇가지를 칭칭 감고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는 뜻에서 하늘타리란 이름이 붙었다.
하늘타리는 열매가 하늘을 향해 열리는 듯해 천과(天瓜), 즉 하늘참외로 불렸다. 다른 이름도 많다. 하늘수박, 쥐참외, 과루, 천선지루. 제주에선 하늘레기라고 부르며 방에 걸어두면 귀신을 쫓는다고 여겼다. 괄루(括樓)라는 한자명은 누각을 감고 오르는 덩굴을 의미한다. 평북 방언에서 ‘타리’는 말이나 사자의 갈기를 뜻한다. 하늘타리 꽃의 치렁한 모양이 갈기를 닮았다.
한국 전역에서 자란다. 특히 제주도, 남부지방의 밭, 과수원, 숲 가장자리에서 흔하다. 산기슭, 돌담, 폐가 주변을 좋아한다. 동아시아 온대와 아열대 지역에도 분포한다. 중국, 일본, 러시아, 동남아시아에서도 발견된다. 번식력이 강하다. 씨앗은 새나 바람에 퍼진다. 사람이 사는 집에서는 뽑히지만 폐가에서는 무성히 자란다. 밤에 피는 하얀 꽃은 야행성 곤충을 끌어들인다. 이 때문에 동네 중심으로 퍼진다.
하늘타리는 식용과 약용으로 쓰인다. 하지만 생으로 먹기는 어렵다. 열매가 매우 쓰다. 하늘수박으로 불리지만 수박처럼 달지 않다. 맛은 강렬한 쓴맛이 지배적이다. 생열매는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대신 말리거나 가공해 사용한다. 열매껍질은 차로 끓여 마신다. 물 2리터에 10g 정도를 넣고 보리차처럼 끓인다. 씨앗은 달여 마신다.
뿌리를 가루로 가공한 것을 천화분이라고 한다. 천화분을 만들려면 뿌리를 캐서 껍질을 벗긴다. 흰 속을 1치씩 자른다. 5일간 물에 담갔다가 짓이긴다. 비단 주머니에 넣어 거른다. 액을 가라앉혀 가루로 만든다. 이 가루는 당뇨, 염증, 종기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
하늘타리는 주로 약용 차나 가루로 소비된다. 열매껍질을 말려 차로 마시는 게 일반적이다. 씨앗은 달여 약으로 먹는다. 뿌리는 가루로 만들어 환으로 복용한다. 피부 염증에는 가루를 팩처럼 바른다. 제철은 열매가 익는 9~10월이다. 뿌리는 늦가을에 캔다. 열매는 노랗게 익을 때 수확한다. 벌레나 곰팡이 피해를 막으려면 약간 노란빛이 돌 때 쪼개 말린다.
맛은 몹시 쓰다. 차로 마셔도 쓴맛이 남는다. 씨앗은 차가운 성질을 갖는다. 건강이 약하거나 체질에 맞지 않으면 피해야 한다. 뿌리는 달고 쓰며, 성질은 차다. 쓴맛은 트리테르페노이드 사포닌에서 온다. 이 성분은 항암, 항염 효과를 낸다.
하늘타리는 약재로 오래 쓰였다. 뿌리는 과루근, 열매는 과루, 씨앗은 과루인으로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 기록됐다. 열을 내리고 담을 삭인다. 폐를 튼튼히 하고 대변을 통하게 한다. 부스럼, 고름, 염증을 치료한다. 뿌리는 당뇨, 통경, 이뇨, 배농에 쓰인다. 씨앗은 거담, 진해, 진통, 소염제로 사용된다. 트리테르페노이드 사포닌은 항암 효과가 뛰어나다. 유방암, 식도암, 폐암, 복수암, 유선암에 효능이 있다. 잘 익은 열매가 풋열매보다 항암 효과가 크다. 황달, 피부 염증, 노화를 늦춘다. 기침, 가래, 가슴 답답함에도 도움을 준다. 혈전을 제거한다. 심혈관 건강, 간기능 회복에도 쓰인다.
부작용도 있다. 차가운 성질 때문에 체질이 차가운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임신 중에는 피한다. 혈당을 낮추므로 당뇨약과 함께 먹을 때는 의사와 상담한다. 우슬과 함께 쓰면 부작용이 생긴다. 과다 복용은 피한다. 씨앗은 성질이 차서 건강이 약한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
건강에 두루두루 좋은 까닭인지 하늘타리는 액운을 쫓는 벽사로 사용됐다. 열매를 방에 걸어뒀다. 귀신이 하늘타리 열매를 보고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역시 약성이 워낙 좋아 신선이 몰래 먹다 인간에게 내줬다는 설화를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