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10억 신고한 김문수... 배우자 “내가 일해서 여기까지 왔다”
2025-05-1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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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후보는 돈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설 여사는 16일 '고성국 TV'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영상에서 김 후보와의 42년 결혼 생활, 노동운동 시절의 추억, 그리고 가족과의 일화를 공개했다.
설 여사는 김 후보의 돈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며 "김 후보는 돈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가까이하지 않으려 한다. 돈 자체에 대해 굉장히 거리를 두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랄까, 유교 집안의 양반 기질이랄까, '더러운 돈은 만지는 게 아니다'라며 늘 자기 자신을 청결하고 깨끗하게, 고고하게 다스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설 여사는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을 걷는 사람과 같아서 잘못하면 감옥에 간다"고 쓴 김 후보 책 속 문구를 소개하면서 "김 후보는 돈과 거리를 두고 청빈한 삶을 살았다. 내가 일하며 쌓은 재산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10억 원의 재산을 신고한 바 있다.
설 여사는 김 후보와의 첫 만남과 결혼 과정을 자세히 회상했다. 1978년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던 그는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이던 김 후보를 상급 단체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김 후보의 첫인상에 대해 "청색 작업복을 입고 2대 8 가르마를 한 모습이 비록 촌스러웠지만, 굉장히 스마트하고 프레시했다. 얼굴이 세안을 마친 듯 반짝거렸다"고 말했다.
그는 "김 후보는 말과 행동이 점잖고 느리다. 영천 집안 특성인지도 모른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수배 생활하며 도망 다닐 때는 빨랐다"라고 농담했다.
두 사람은 노동운동을 함께하며 가까워졌고 1981년 결혼했다. 설 여사는 결혼 당시를 떠올리며 "돈이 없어 웨딩드레스 대신 원피스를 입고 성당 미사포로 면사포를 대신했다. 직장 동료가 부케를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노동자들을 위해 격식을 차리지 않고, 사랑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스몰 웨딩을 했다"고 말했다.
결혼식은 명동성당 교육관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당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로 계엄령 상황이었다. 경찰은 위장 결혼식으로 의심해 전경차 5대를 배치했다. 설 여사는 "결혼식 후에야 이를 알았다"고 전했다.
설 여사는 노동운동 시절의 경험과 함께 김 후보 청혼을 거절한 일화도 공개했다. 그는 "당시 노조 운동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노동 3권 보장, 생리 휴가 보장 같은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했다. 하나하나 성취될 때마다 신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세진전자에서 1500명 규모의 노조를 이끌며 노동 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을 위해 싸웠다.
그는 처음엔 김 후보 청혼을 거절했다고 한다. 설 여사는 김 후보가 청혼할 때 "갈 데 없으면 나한테 오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면서 처음엔 자존심이 상해 거절했지만 김 후보의 지속적인 설득과 노동운동을 함께하며 쌓인 신뢰로 결국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결혼 생활 초기는 쉽지 않았다. 설 여사는 "서울대 입구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김 후보는 만인을 먹여 살릴 사람이라며 장인에게 큰소리쳤지만, 실제로는 내가 더 많이 벌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울 봉천동 국민주택형 아파트에 살고 있다. 설 여사는 "집은 오래됐지만 관악산이 가까워 공기가 좋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욕심을 버리고 절제하며 살아왔다. 노조위원장 시절에도 조합원 눈치를 보며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다. 더 낮은 곳에서 뜨겁게 살자는 신조를 지켰다"고 밝혔다.
설 여사는 딸의 진로에 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딸은 영어과를 희망했지만 "사회복지학과는 인간을 위한 숭고한 일"이라고 김 후보가 설득해 사회복지사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딸은 아빠를 존경하고, 본인의 뜻도 반 정도 반영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설 여사는 1980년 김 후보가 남영동 대공분실에 40일간 구금된 사건도 언급했다. 설 여사는 "그 시절 노동운동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결혼과 출산은 운동권에서 눈치 보이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