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가 지나가면 독사는 다 죽는다”... 온 몸이 붉은 대한민국 토종개

2025-05-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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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만으로 다른 개를 압도하는 '늑대의 피를 품은 개'
눈, 코, 입, 발톱, 심지어 속살까지 붉은색인 한국 토종개

불개 / EBS
불개 / EBS

한국 토종개 가운데 진돗개, 삽살개, 풍산개는 가장 유명하다. 불개는 이들 개만큼은 유명하지 않더라도 생김새만으론 다른 모든 개를 압도하는 신비로움을 품고 있는 한국 토종개다. 붉은 털을 휘날리며 야생의 기운을 뿜는 불개에 대해 알아봤다. 전설과 현실이 뒤섞은 듯한 이 개는 한국의 토종견 중에서도 독보적인 매력을 지닌 품종이다.

불개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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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후예로 여겨지는 불개는 그 붉은 외모와 강렬한 야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멸종의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오늘날 대한민국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불개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조상의 삶과 신화,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이 녹아든 살아있는 역사다.

불개의 기원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소백산맥에 살던 늑대가 민가로 내려와 집개와 교배해 불개가 탄생했다는 설이 있다.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불개의 야생성과 독특한 외모를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가설 중 하나다. 경북 영주시를 중심으로 안동시, 충북 단양시, 그리고 전북 정읍시 등지에서 불개가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다.

불개는 한때 ‘약개’로 불리며 어혈을 풀어주고 환자 회복에 좋다는 소문 때문에 식용으로 소비되며 멸종 위기에 처했다. 1990년대 불개의 개체수는 급격히 줄어들어 20마리 남짓만이 남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위기를 동양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한 고승태 씨가 극복했다. 고 씨는 5년간의 노력 끝에 불개 개체수를 90여 마리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 민간의 노력으로 현재 수백마리의 불개가 전국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정읍불개는 유엔식량농업기구(UN FAO)의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대한민국 고유 자원으로 등록되며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EBS는 불개에 대해 소백산 야생늑대와 집 강아지 사이에허 태어난 귀한 한국 토종견으로 설명한다. / EBS

불개의 외모는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몸길이는 50~55cm, 몸무게는 15~25kg으로 중형견에 속하는 이 개는 신체의 모든 부위가 붉은빛을 띤다. 눈, 코, 입, 발톱, 심지어 속살까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어 마치 전설 속 불의 정령을 연상하게 한다.

불개의 털은 적황색과 적갈색 두 가지로 나뉜다. 적황색 불개, 흔히 영주불개로 불리는 이들은 황색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털을 가지며, 눈가와 입술, 콧수염 등이 붉은 황색을 띤다. 반면 적갈색 불개, 즉 정읍불개는 갈색에 가까운 털과 피부를 지니며, 유전자 검사 결과 검은색에 대한 열성 발현으로 이 색상이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강아지 시절 회색이나 푸른빛 눈동자를 보이다가 3개월 무렵 노란색으로 변하고, 성견이 되면 호박색이나 구리색으로 붉은빛을 더하는 경우도 있다. 검은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독특한 색상은 불개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불개의 성격은 야생성과 온순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이들은 청각이 매우 예민해 작은 소리에도 빠르게 반응하며, 물을 좋아해 계곡에서 헤엄치거나 발을 담그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야생성이 강해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지만,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깊다. 한 사육자는 EBS와의 인터뷰에서 불개에 대해 “첫 주인만 따르고 다른 사람은 쉽게 따르지 않는다”고 전했다.

불개는 서열 경쟁이 치열한 강아지 시절을 거치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보호자와의 감정 교류가 풍부해 훈련 능력도 뛰어나다. 나무를 잘 타고 땅을 파서 새끼를 낳는 습성도 있다. 그들의 야생 본능을 잘 보여준다. 또한 뱀, 개구리, 너구리 등 작은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은 불개가 단순한 반려견이 아니라 자연 속 포식자임을 드러낸다. 고승태 씨는 “얘(불개)만 지나가면은 독사는 다 죽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불개는 단순한 동물을 넘어 한국의 문화와 신화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까막나라 불개’ 설화가 불개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설화에서 불개는 암흑의 나라 까막나라의 국왕 명령으로 해와 달을 훔치러 갔지만, 해는 너무 뜨겁고 달은 너무 차가워 실패한다. 이 과정에서 불개는 일식과 월식의 원인으로 묘사되며, 신화 속 불개는 불(火)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정승각의 동화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는 이 설화를 각색해 불개가 햇빛과 달빛을 몸에 머금고 까막나라를 밝히는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이 동화의 결말은 불개가 주작과 학의 도움으로 한국에 도착해 황삽사리와 청삽사리를 낳았다는 것이다. 불개가 한국 토종견의 뿌리와 연결돼 있는 셈이다. 이 설화는 불개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한국인의 상상력과 자연관을 반영한 상징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불개의 보존 노력은 현재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적황색 불개는 단양 불개종복원센터를 중심으로 애호가들의 헌신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적갈색 불개는 정읍의 미르농원에서 체계적으로 보호되고 있다. 국립축산과학원은 2024년 불개가 진돗개, 풍산개, 삽사리 등과 함께 대한민국 토종견이라고 공식 인정했다. ᄃᆞᆫ 불개는 여전히 현대적 표준체형 규정이 없고, 역사적 문헌이 부족해 견종협회로부터 공식 품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불개의 늑대 기원설이 연구 자료로 불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불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계속 필요함을 보여준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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