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큰 물고기들을 이 동물이 잠수해 싹 잡아먹는 중... 상황이 심각하다
2025-05-2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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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어부들에게 절망감 안기는 동물의 정체

서울 한강의 잔잔한 물결 위로 검은 그림자가 스쳐간다. 민물가마우지다. 겨울에 한국을 찾았던 철새지만 어느덧 텃새가 된 새다. 사계절 내내 한국의 강과 호수에서 먹이를 사냥한다. 물속을 잠수하며 물고기를 낚아채는 모습은 정교한 사냥꾼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새가 가져온 변화는 아름다운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청계천, 한강, 소양강을 비롯한 전국의 수역에서 민물가마우지가 어민과 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마우지는 가마우지목 가마우지과에 속하는 조류다. 전 세계에 32종이 분포한다. 한국엔 민물가마우지, 바다가마우지, 쇠가마우지가 산다. 민물가마우지는 몸길이 약 90cm로 가장 크고 흔하다. 뺨이 흰색이고 깃털은 검은색이다. 이들은 해안뿐 아니라 강, 호수, 저수지 등에 서식한다. 물 위를 헤엄치며 물고기를 찾는다. 물고기를 발견하면 물속으로 잠수해 물갈퀴 발로 힘차게 헤엄쳐 사냥한다. 잡은 물고기는 물 위로 올라와 삼킨다. 목구멍이 유연해 큰 물고기도 쉽게 삼킬 수 있다. 기름샘이 없어 낮은 부력으로 깊이 잠수할 수 있다. 하지만 깃털이 쉽게 젖는다. 그래서 물에서 나오면 날개를 펴고 몸을 말린다.
민물가마우지는 겨울철새였다. 주로 연해주와 사할린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한국, 일본으로 이동했다. 2000년대 들어 기후변화로 상황이 바뀌었다. 따뜻해진 기온과 하천 정비로 먹이가 풍부해졌다. 민물가마우지는 더 이상 철새가 아니라 텃새가 됐다. 2000년 전엔 수백마리에 불가했던 개체수가 수만마리로 늘었다.
청계천에서도 민물가마우지가 자주 목격된다. 민물가마우지의 출현으로 어족 자원이 위협받고 있다. 이들은 하루 평균 700g, 번식기에는 1kg의 물고기를 먹는다. 특히 천연기념물인 어름치 같은 토종 어종이 피해를 입는다. 유튜브 채널 ‘청계천 친구들’은 민물가마우지가 청계천에서 잠수하며 사냥감을 찾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어부들은 어획량 감소를 호소한다. 민물가마우지가 물속으로 잠수해 닥치는 대로 큰 물고기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정상 조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다.
민물가마우지의 유해성은 어족 자원 고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의 배설물은 강한 산성을 띤다. 나무와 바위를 하얗게 만든다. 이를 수목 백화현상이라고 부른다. 충주호의 한 섬에서는 나무들이 배설물로 고사했다. 원주시 흥업면 매지저수지 거북섬도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나무가 모두 말라죽어 복원 작업이 진행됐다. 소양강 하류의 버드나무 군락도 고사 위기에 처했다. 청계천 주변에서도 배설물로 인한 환경 훼손이 우려된다. 배설물은 수질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인산 성분이 강해 수생태계를 교란한다.
어민 피해는 심각하다. 강원도 내수면 어획량은 2017년 933t에서 2021년 613t으로 줄었다. 양구 소양호에서는 민물가마우지가 그물에 걸린 쏘가리를 빼앗는다. 그물을 부리로 찢는 경우도 많다. 어획량이 40%가량 감소했다는 어민의 증언도 있다. 여수시 돌산읍의 양식장은 이중 그물망을 설치했다.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청주시와 평창군을 포함한 28개 지자체에서 58개 수역의 피해가 보고됐다.
환경부는 민물가마우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조치를 취했다. 2023년 8월 민물가마우지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피해가 입증되면 지자체 허가를 받아 포획이 가능하다. 지난해 3월부터 일부 지자체는 총기와 그물을 이용한 포획을 시작했다. 강원도는 2억 원을 투입해 번식지 둥지를 제거한다.
민물가마우지의 텃새화는 기후변화와 밀접하다. 지구온난화로 겨울 기온이 상승했다. 하천 정비로 수위가 안정되며 먹이 사냥 환경이 좋아졌다. 전문가들은 이를 텃새화의 주요 원인으로 본다. 하지만 포획이 최선의 해결책인지를 두고선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조류보호협회는 자연스러운 생태 변화로 본다. 인위적 개입이 오히려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도 민물가마우지 문제는 심각하다. 전 세계 개체 수는 140만~210만 마리로 추정된다.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덴마크, 일본, 캐나다 일부 주는 포획을 허가한다. 독일과 체코는 어업 피해에 대해 재정보상을 제공한다. 유럽연합은 그물과 소음기로 가마우지 접근을 막는다. 하지만 어류 개체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연구도 있다. 가마우지가 플랑크톤 섭식 어류를 먹으며 부영양화를 줄이는 긍정적 역할도 있다는 주장이다.
청계천과 한강에서의 민물가마우지 문제는 도시 생태계에 직결된다. 이들은 천연기념물 어름치를 포함한 토종 어종을 위협한다. 배설물로 수질과 식생을 훼손한다. 하지만 무차별 포획은 또 다른 생태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 2021년 정부 용역 연구는 가마우지와 어류 개체군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고 밝혔다. 포획이 아닌 둥지 제거 같은 비살생적 방법이 우선 시도됐다. 하지만 피해가 계속되자 포획 허가가 불가피했다.
중앙아시아와 몽골에서는 민물가마우지 개체 수 조절이 더 극단적이다. 어부들이 서식지를 파괴한다. 한 번에 새끼들을 모조리 제거하기도 한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북상한 결과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생태계 불균형으로 볼 것이냐,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생태계 변화로 볼 것이냐에 따라 대응이 달라진다. 기후변화가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존에 미치는 영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물이 바로 민물가마우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