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도 공포에 떨 정도로 잔혹한데... 사람에게는 친절해 장난까지 치는 동물

2025-05-2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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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이 뛰어나 의도적으로 사람을 놀리기까지 하는 동물

범고래 / '과학드림' 유튜브
범고래 / '과학드림' 유튜브

무자비한 사냥 능력으로 바다를 지배하는 동물이 있다. 그런데 이 동물이 특이하게도 인간에게는 우호적이다. 검은색과 흰색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유선형의 몸체가 물살을 가르며 나타나면 바다의 모든 생명체들이 긴장한다. 바로 '바다의 늑대'로 불리는 범고래. 존재만으로도 해양 생태계의 질서를 재편할 만큼 범고래는 바다에서 절대 권력을 지닌 최상위 포식자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겐 한없이 친절한 동물이라는 대반전 습성을 갖고 있다.

범고래 / 고래연구센터 케네스 발콤
범고래 / 고래연구센터 케네스 발콤

범고래는 고래목 참돌고래과에 속하는 해양 포유동물이다. 돌고래류 중 가장 큰 종이다. 성체 수컷의 경우 몸길이가 8~10m, 체중이 6~8톤에 이른다. 암컷은 약간 작아서 7~8미터, 4~6톤 정도다. 이들의 가장 특징적인 외모는 검은색 등과 옆구리, 그리고 눈 주변과 배 부분의 선명한 흰색 무늬다. 특히 수컷의 등지느러미는 높이가 1.8미터에 달해 바다 위에서도 쉽게 식별할 수 있다.

2011년 전남 여수시 돌산읍 방죽포 인근 해상에서 정치망 유도그물에 걸려 탈진 상태에 있던 7m 길이의 범고래를 해경과 어민이 구조해 바다로 돌려보낸 적이 잇다. / 여수해경 제공
2011년 전남 여수시 돌산읍 방죽포 인근 해상에서 정치망 유도그물에 걸려 탈진 상태에 있던 7m 길이의 범고래를 해경과 어민이 구조해 바다로 돌려보낸 적이 잇다. / 여수해경 제공

범고래는 전 세계의 모든 바다에 서식하지만 특히 극지방 근처의 차가운 바다를 선호한다. 이들은 고도로 사회적인 동물이다. 모계 중심의 가족 단위인 '팟(pod)'을 이뤄 생활한다. 한 팟은 보통 5~30마리로 구성되며, 암컷이 가족의 리더 역할을 담당한다. 흥미롭게도 범고래 수컷은 평생 어머니와 함께 생활한다. 포유동물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사회 구조다.

범고래의 지능은 해양 생물학자들을 지속적으로 놀라게 한다. 이들의 뇌는 인간보다 4배가량 크다. 특히 감정과 사회적 행동을 관장하는 대뇌변연계가 매우 발달했다. 실제로 범고래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자아 인식 능력을 보여준다. 이는 극소수 동물만이 가진 고등한 인지 능력이다. 각 개체는 고유한 '방언'을 가지고 있으며, 같은 가족 내에서는 특별한 소리 언어로 소통한다. 이들의 소리는 최대 160dB에 달해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전달될 수 있다.

범고래의 놀라운 지능은 때로는 인간에게 장난을 치는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해양 공원에서 사육되는 범고래들이 사육사에게 의도적으로 물을 뿌리거나, 먹이를 받기 위해 특정 행동을 과장해서 보여주는 사례들이 보고됐다. 야생에서도 범고래들이 배를 따라오며 선원들의 관심을 끌려는 듯한 행동을 보이거나, 해변가에서 인간을 관찰하며 호기심을 표현하는 모습이 목격된다. 일부 연구자는 이러한 행동을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의도적인 '놀이' 또는 '장난'으로 해석한다.

그럼에도 범고래가 인간에게 직접적인 위험을 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야생에서 범고래가 인간을 공격한 사례는 거의 보고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익사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운 사례들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다만 해양 공원에서 사육되는 범고래가 스트레스나 좌절감으로 인해 사육사를 공격한 사건들은 몇 차례 발생했다. 이는 범고래가 본래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 동물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범고래가 레전드 사냥꾼인 진짜 이유!'란 제목으로 '과학드림'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는 영상.

범고래가 사냥할 때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면을 보여준다. 이들은 '바다의 늑대'라는 별명에 걸맞게 극도로 체계적이고 잔혹한 사냥꾼이다. 범고래의 사냥법은 먹이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데, 이 모든 것이 학습과 전수를 통해 이뤄진다. 물개나 바다사자를 사냥할 때는 해변 근처까지 접근해 몸을 던져 먹이를 낚아채는 '비칭(beaching)' 기법을 사용한다. 이때 범고래는 자신의 거대한 몸을 모래사장에 던져가며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고래 사냥이다. 범고래 무리는 자신들보다 훨씬 큰 대왕고래나 혹등고래도 협력해서 사냥한다. 이들은 먼저 새끼 고래를 어미로부터 분리시킨 뒤 여러 마리가 함께 새끼 고래 위에 올라타 물속으로 밀어 넣어 질식시키는 전략을 사용한다. 때로는 성체 고래의 혀만을 노리기도 한다. 먹이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 시간에 걸친 끈질긴 추격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어 사냥에서 범고래의 지능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상어를 거꾸로 뒤집어 토닉 이모빌리티(tonic immobility: 동물이 포식자에게 잡히거나 극도의 공포 상태에 처할 때 움직이지 못하고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 상태로 만들어 무력화한다. 그런 뒤 간만 먹고 나머지는 버리는 선택적 사냥을 한다. 일부 상어 종은 뒤집히면 토닉 이모빌리티 상태에 빠진다. 배를 위로 뒤집히면 일시적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가사 상태에 들어간다. 연구자들이 상어를 안전하게 다루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포의 백상아리조차 범고래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범고래가 나타나면 해당 지역의 모든 상어들이 즉시 도망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고래 / '과학드림' 유튜브
범고래 / '과학드림' 유튜브

범고래의 사냥 성공률은 90%에 이른다. 육상의 어떤 포식자보다도 높다. 이들은 돌고래, 물개, 바다거북, 심지어 다른 고래류까지도 사냥 대상으로 삼는다. 한 번의 사냥에서 성체 범고래는 하루에 200~300kg의 먹이를 섭취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하루에 섭취하는 음식의 100배가 넘는 양이다.

범고래의 사회적 사냥 전략은 마치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한다. 이들은 역할을 분담해 일부는 먹이를 추격하고, 일부는 도망로를 차단하며, 나머지는 최종 공격을 담당한다. 이러한 협력 사냥은 어미에서 새끼로 전수되며, 각 지역의 범고래 무리마다 고유한 사냥 기법을 발전시켜 왔다.

범고래의 턱에는 40~56개의 원뿔형 이빨이 있다. 각 이빨의 길이는 10cm에 달한다. 이들의 물림 압력은 평방 센티미터당 1000kg을 넘어선다. 이는 악어나 상어보다도 강력하다. 한 번 물리면 먹이가 도망갈 수 없다.

해변의 물개를 사냥하는 범고래 / '대충동물원' 유튜브
해변의 물개를 사냥하는 범고래 / '대충동물원' 유튜브

범고래는 또한 매우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평상시에는 시속 6~8km로 여유롭게 헤엄치지만, 사냥이나 도주 시에는 시속 50km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다. 이는 대부분의 해양 생물보다 빠른 속도다. 일단 범고래의 사냥감이 되면 속도로 도망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범고래의 수명은 야생에서 암컷이 80~90년, 수컷이 50~60년 정도다. 이들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사냥 기술을 발전시키며, 나이가 들수록 더욱 교활하고 효율적인 사냥꾼이 된다. 특히 나이든 암컷은 '할머니 효과'로 불리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들의 경험과 지식이 가족 전체의 생존율을 크게 향상한다.

현재 전 세계 범고래 개체수는 약 5만마리로 추정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관심필요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역 개체군은 환경 오염, 먹이 부족, 선박 소음 등으로 인해 위험에 처해 있다. 범고래는 해양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바다의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에 이들의 보호는 해양 생태계 전체의 건강성과 직결된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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