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도 없는데... 바람 안 부는 날에 수백km 날아서 대륙까지 건너는 동물

2025-05-2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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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이 최대 4km 높이까지 올라가 수백킬로미터 이동 가능

벌루닝 중인 거미 / '내셔널 지오그래픽' 유튜브
벌루닝 중인 거미 / '내셔널 지오그래픽' 유튜브

작은 몸집으로 땅 위를 기어다니는 것으로만 알려진 거미가 실제로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들은 자신의 몸보다 수만 배 긴 거리를 공중에서 이동한다. 때로는 바다를 건너 새로운 대륙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렇게 놀라운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아봤다.

거미의 비행 능력은 '벌루닝(ballooning)' 또는 '에어로너틱 디스퍼셜(aeronautic dispersal)'로 불리는 현상으로 설명된다. 이 과정에서 거미는 자신의 방적돌기(거미줄을 만드는 기관)에서 실크 섬유를 분비해 낙하산이나 연처럼 사용한다. 거미는 높은 곳에 올라가 복부 끝의 방적돌기를 공중으로 향하게 한 뒤 여러 가닥의 실크를 분비한다. 이 실크 가닥들이 공기의 흐름을 타고 늘어나면서 거미의 몸을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부력을 만들어낸다.

거미 벌루닝 모습 / '내셔널 지오그래픽' 유튜브

벌루닝을 하는 거미들은 주로 어린 개체들이다. 갓 부화한 새끼 거미들이나 1령, 2령 애거미들이 이 방법을 사용해 모체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성체 거미 중에도 몸집이 작은 종들은 벌루닝을 통해 이동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좀거미과(Linyphiidae), 늑대거미과(Lycosidae)의 일부 종, 그리고 깡충거미과(Salticidae)의 어린 개체들이 이런 비행 능력을 보인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거미는 최대 4km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수평 거리로는 수백 km를 이동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 출발한 거미가 북해를 건너 노르웨이나 덴마크에서 발견된 사례가 여러 차례 보고됐다. 또한 남극 대륙에서도 벌루닝을 통해 도달한 것으로 추정되는 거미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거미들이 이처럼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는 것은 대기 중의 전기장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2018년 브리스틀 대학교의 연구팀은 거미가 정전기를 감지해 벌루닝 시기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구 표면과 대기 상층부 사이에는 항상 전기장이 존재하는데, 거미는 다리에 있는 감각기관을 통해 이 전기장의 변화를 감지한다. 전기장의 세기가 적절할 때 거미는 실크를 분비해 벌루닝을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거미는 바람이 없는 상황에서도 비행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거미의 벌루닝이 전적으로 바람에 의존한다고 여겨졌지만, 최근 연구들은 대기 중의 전기장만으로도 거미가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거미의 실크는 음전하를 띠게 되는데, 이것이 지구의 전기장과 상호작용해 부양력을 만들어낸다.

벌루닝 현상은 거미의 생태학적 분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로운 서식지로의 이동, 근친교배 방지, 자원 경쟁 회피 등이 모두 이 비행 능력을 통해 이뤄진다. 특히 농업 생태계에서 거미는 해충 방제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벌루닝을 통한 빠른 이동으로 해충이 발생한 지역에 신속하게 도달할 수 있다.

계절적으로는 주로 봄과 가을에 벌루닝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 시기에는 대기가 안정되고 전기장의 조건이 벌루닝에 적합해진다. 또한 어린 거미들이 부화하는 시기와도 맞아떨어진다. 기상 조건 중에서는 고기압이 접근하거나 안정된 날씨가 계속될 때 벌루닝이 가장 활발하게 관찰된다.

거미 / 픽사베이
거미 / 픽사베이

거미의 벌루닝 능력은 기후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패턴의 변화가 거미의 분산 패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연구자는 태풍이나 강한 기류를 타고 평소보다 훨씬 먼 거리를 이동하는 거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전 세계 거미 종의 약 40% 정도가 생활사의 어느 시점에서 벌루닝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일부는 성체가 돼서도 계속 이 능력을 유지하지만,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만 벌루닝을 한다. 몸집이 클수록 벌루닝에 필요한 실크의 양이 많아지고 성공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거미의 벌루닝 메커니즘을 연구해 초소형 드론이나 센서의 개발에 응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거미처럼 전기장을 이용해 동력 없이 비행하는 초소형 장치가 개발된다면 환경 모니터링이나 재해 감시 분야에서 혁신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거미 벌루닝 모습. / 'Sharjah24 News' 유튜브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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