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마리 출몰...꼭두새벽 도심 터널에 나타난 ‘멸종위기 동물’

2025-05-2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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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4시 5분께 세종시 도담동 한 차도 터널 안 출몰
국제적으로 멸종위기등급 ‘취약’에 속하는 야생 동물

새벽녘 도심 한복판, 터널 안에 멸종위기 동물이 출몰해 소방 당국이 긴급 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고라니의 잇따른 출몰은 도시와 야생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며, 동시에 생태계 변화에 대한 경고 신호로도 해석된다.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재구성한 자료사진.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재구성한 자료사진.

27일 세종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5분께 세종시 도담동의 한 터널 안에서 고라니 4마리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어 오전 5시 46분에는 소담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울타리에 끼어 있다는 추가 신고가 들어왔고, 출동한 소방당국이 이를 포획했다.

세종 남부소방서 관계자는 “첫 출동에서는 고라니들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두 번째 출동에서는 울타리에 끼어 있던 고라니를 구조했다”며 “그러나 이동 중 폐사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도심에 야생동물이 연이어 출몰하는 배경에는 봄철 고라니의 활동량 증가가 있다. 고라니는 겨울에 짝짓기를 하고, 이듬해 봄에 새끼를 낳고 기르기 때문에 5~6월은 먹이를 찾아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기다. 야산 인근 도심은 이들에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공간이자, 동시에 위험 지역이기도 하다.

2017년 1월 5일 지리산 가는 길목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한 도로변에 고라니가 갑자기 뛰어들어 지나가던 운전자들을 당황케 하고 있다 / 뉴스1(함양군 제공)
2017년 1월 5일 지리산 가는 길목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한 도로변에 고라니가 갑자기 뛰어들어 지나가던 운전자들을 당황케 하고 있다 / 뉴스1(함양군 제공)

실제로 고라니는 고속도로에서 가장 많은 ‘로드킬(roadkill)’ 피해를 입는 야생동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2024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야생동물 사고는 5,300건이며, 이 중 83.5%인 4,426건이 고라니 관련 사고였다.

사고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시기는 5~6월, 시간대로는 자정부터 오전 8시 사이로, 이번 세종시 출몰 시점과도 일치한다. 이처럼 야생동물의 행동 특성과 인간 활동이 교차하는 시간대에 사고가 집중된다는 점은 도심 내 생태 흐름이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시사한다.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지만, 국제적으로는 멸종위기등급 ‘취약(Vulnerable)’에 속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따르면, 생존 환경이 악화될 경우 가까운 미래에 절멸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 세계 고라니 개체의 90% 이상이 한국에 서식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생태계 내에서의 고라니 보존이 곧 전 세계 고라니 보전과 직결된다는 의미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도 고라니가 서식하지만, 포식자가 여전히 존재하는 그 지역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호랑이, 늑대 등 주요 포식자가 사라져 개체 수가 상대적으로 증가했다.

2014년 5월 6일 오전 10시 30분쯤 경북 포항시 북구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 단지에 나타난 고라니 한마리가 놀란 표정으로 주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 뉴스1
2014년 5월 6일 오전 10시 30분쯤 경북 포항시 북구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 단지에 나타난 고라니 한마리가 놀란 표정으로 주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 뉴스1

하지만 이러한 개체 수 증가는 단순한 번성의 신호가 아니라, 인간과의 충돌 가능성을 높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고라니는 농작물을 훼손하는 사례가 많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돼 해마다 많은 수가 포획되고 있다. 동시에 매년 약 1만 마리의 고라니가 로드킬로 목숨을 잃는다는 통계도 있다.

생물다양성 보전 측면에서 볼 때, 특정 종의 급격한 감소는 다른 생물 종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라니와 같은 중간 소비자(중간 먹이사슬 단계의 종)의 개체 변화는 상위 포식자나 하위 생산자 집단에도 생태적 파장을 남긴다.

유튜브, JTBC Entertainment

결국 고라니의 문제는 단지 한 종의 보존을 넘어, 우리 생태계 전체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상징하는 바로미터다. 출몰이 반복되고 피해가 발생한다고 해서 단순히 ‘퇴치’나 ‘포획’만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서식지 파괴와 도시 확장으로 인한 이동 경로 변화, 먹이 부족 등의 근본 원인에 대한 이해와 대책 마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세종시 도심 터널에 고라니가 나타난 이번 사례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밤과 낮, 도시와 자연, 사람과 동물이 뒤섞인 현대 생태계의 복잡한 균형 속에서 우리가 마주한 하나의 단서다. 멸종위기 등급에 속한 고라니가 도심을 헤매게 된 이유에 대해,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때다.

고라니 / 연합뉴스
고라니 / 연합뉴스
home 김희은 기자 1127khe@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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