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이 없다…최상위 포식자인데 한국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중인 멸종위기종
2025-05-28 11:28
add remove print link
전 세계적으로 약 1만 4000쌍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 조류
사과를 반으로 자른 모양의 얼굴을 가진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갈수록 악화하는 기후 변화로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에서 못 볼 위기에 처했다. 사과 재배지가 한국에서 없어질 때쯤이면 이 동물 역시 국내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심지어 온실가스 저감 정책이 시행돼도 여전히 온도 변화에 취약할 것으로 예상되는 동물로 꼽혀 사실상 한국에서 이 동물을 지키기 위한 대책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긴점박이 올빼미는 사과를 반쪽 자른 모양의 얼굴을 가진 대형 올빼미로, 몸길이는 약 50~61cm, 양 날개 끝을 잇는 길이는 110~134cm에 이른다. 이 새는 이마와 머리, 목덜미에 엷은 황갈색 바탕에 검은 갈색의 넓은 세로 얼룩무늬가 퍼져 있으며 깃털 끝에는 흰색 얼룩무늬가 드문드문 섞여 있다. 가슴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얼룩무늬가 있고 눈은 검고 부리는 노랗다. 꼬리는 회백색 바탕에 가로줄 무늬가 있으며 비교적 긴 편이다. 귀깃은 없고 전체적으로 둥근 머리 형태를 가지고 있다.
긴점박이 올빼미는 국제적으로도 희귀한 조류로, 전 세계적으로 약 1만 1000~1만 4000쌍이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강원도의 고산지대에서 매우 드물게 관찰되며 과거에는 백두산과 강원도 고성, 홍천, 충남 공주 등에서 발견된 기록이 있다. 현재는 오대산국립공원 등 일부 지역에서 텃새로 관찰되고 있으며 국내 개체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매우 낮은 밀도로 분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새는 주로 해발 1200m 내외의 아고산 및 고산지대, 침엽수림, 혼합림, 낙엽활엽수림 등에서 서식하며 서식지는 농가 창고나 나무 구멍, 낡은 둥지, 벼랑의 틈 등 다양한 곳에 마련한다. 2021년에는 오대산국립공원에서 설치된 인공둥지에서도 번식하는 것이 확인됐다. 국립공원공단은 2011년부터 오대산국립공원 내에 긴점박이 올빼미의 종 보전을 위해 11개의 인공둥지를 설치한 바 있다.
당시 원격 카메라를 통해 인공둥지 주변을 관찰한 결과, 3월 10일 첫 산란이 포착됐고 약 4주 후인 4월 7일께 3개의 알 중 2개가 부화했다. 이 새끼들은 5월 3일께 둥지를 떠났고 이후 약 2주간 나무 위에서 비행과 사냥을 배우며 성장했다.

긴점박이 올빼미는 야행성 맹금류로, 주로 밤에 조용히 사냥하며 숲속 공터에서 설치류, 식충류, 작은 조류, 곤충류 등을 포획해 먹는다. 매우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을 지녔으며 숲속 나뭇가지에 오랜 시간 앉아 주변을 관찰하는 습성이 있다. 번식기에는 낮에도 새끼의 생존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이 관찰된다.
낮에는 나뭇가지, 특히 줄기 가까이나 나뭇잎이 울창한 곳에서 휴식하며 주변을 관찰하는 조용하고 은밀한 성격을 가진다. 생태계 내에서는 먹이사슬의 상위 포식자로서 생태계 건강의 지표종 역할도 수행한다. 이는 긴점박이 올빼미의 존재 여부가 해당 지역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긴점박이 올빼미는 3~4월 산란기를 맞이하며 한 번에 2~4개의 알을 낳는다. 포란(알을 품는다) 기간은 27~29일, 육추(알에서 깐 새끼를 키우는 것) 기간은 30~34일이다. 부화 직후 새끼는 흰 솜털로 덮여 있으며 약 한 달 뒤 둥지를 떠나 나무 위에서 어미에게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배운다. 수컷은 주로 먹이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며 실제 2021년 오대산 생육 과정 관찰에서도 수컷이 두 차례 먹이를 수급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긴점박이 올빼미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분류돼 있으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자료집에는 관심대상종으로 등재돼 있다. 한국 내에서는 국가적색목록에도 위기(EN) 종으로 분류돼 보호받고 있다. 법적으로는 포획, 채집, 서식지 파괴가 금지돼 있고 서식지로 알려진 고산지대 산림이나 국립공원 내에서는 개발이 제한된다. 그중에서도 산림 벌채나 임도 개설 등은 긴점박이 올빼미의 서식지를 단편화하고 감소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긴점박이 올빼미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기후변화다. 이 새가 주로 서식하는 아고산 및 고산지대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점점 축소되고 있다. 한국에서 사과 재배지가 사라질 정도의 온난화가 진행된다면 긴점박이 올빼미가 한반도에서 완전히 서식지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정도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9200여 종의 화석과 29만 개의 데이터를 분석해 서식지가 좁고 몸집이 작은 생물종일수록 기후변화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7도 이상의 기온 변화를 경험한 종은 멸종에 훨씬 더 가까워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구진은 극지방이나 열대지방처럼 기온 변화의 폭이 크지 않은 환경에 적응한 종일수록 위험이 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서식지 온도 특성, 서식 반경, 몸집 등 여러 변수 겹칠수록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멸종이라는 결말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국립생태원 연구진이 ‘지구 온난화에 따른 국내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민감도 및 취약성 분석’(2022) 연구와 관련해 한국의 포유류, 조류, 양서·파충류, 곤충류 등 멸종위기종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민감도를 평가한 결과, 총 13종이 온도 변화에 매우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하늘다람쥐, 긴점박이올빼미, 까막딱다구리 등 7종은 온실가스 저감 정책이 시행돼도 여전히 취약할 것으로 예측됐다.
긴점박이 올빼미의 보호를 위한 노력은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인공둥지 설치 외에도 정기적인 모니터링, 서식지 복원, 연구 조사를 통한 생태 정보 수집 등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긴점박이 올빼미뿐 아니라 고산지대 생태계 전체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생태계 내에서 상위 포식자의 기능도 함께 보호하고자 하는 목표를 담고 있다.
긴점박이 올빼미는 단순한 희귀종이 아닌 기후 위기와 생태계 변화 속에서 인간이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변화한 환경 속에서 이처럼 고요하고 은밀하게 살아가는 생명들을 지켜나가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