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떤 민폐?”… 임현주, '노키즈존' 관련 소신 발언 후 논란 [전문]
2025-06-0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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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쓰는게 한편으론 조심스러운 이유는…”
MBC 임현주 아나운서가 '노키즈존'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밝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임현주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노키즈존 카페를 방문한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해당 글에서 "예전에 갔던 카페가 좋았던 기억에 다시 찾아갔는데, 주차하고 유아차에 릴리(아이) 태우자 주차 안내해 주시던 분이 난감한 얼굴로 '노키즈존'이라고 '어차피 안에서 안 받아줄 거다'라고 근처 다른 카페로 안내해 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새삼 노키즈존이 왜 이리 많은지. 막상 아이와 어디든 가면 요즘 아이 보기 귀하다며 반짝이는 눈으로 웃는 얼굴을 더 많이 보는데. 소위 힙한 곳에 아이는 왜 갈 수 없을까? 어떤 민폐가 되는 걸까?"라며 속상한 심경을 토로했다.
해당 글이 논란이 되자 임현주는 1일 추가 게시물을 게재했다. 그는 "제가 ‘새삼’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저 역시 노키즈존이 생긴 이유를 이해하고 있고, 어느새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며 "아이와 외출할 땐 카페나 식당의 출입 가능 여부부터 검색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아이가 떠드니까, 우니까, 방해되니까, 노키즈존은 주인의 자유라는 말 역시 이해한다. 안전상의 이유가 있는 곳도 있다"면서도 "다만 한 번쯤은 달리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의 그런 모습들이 ‘민폐’라고 납작하게 규정되고 시선들이 쌓이면 아이가 ‘배제 되어도 괜찮은 존재’처럼 나도 모르게 내면화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공동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최근 식당에서 아이 둘과 함께 외식을 하던 중, 옆 테이블의 어머님이 아이를 돌봐주며 도움을 준 경험을 떠올리며, 이러한 작은 배려가 사회 전체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음을 드러냈다. 임 아나운서는 "아이와 부모,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가 이런 경험을 쌓으면 아이를 바라보고 대하는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노키즈존이 생긴 이유가 있다", "자기 아이 케어 못하는 부모 때문에 생긴 것", "요즘은 그냥 무턱대고 노키즈라고 외치는 가게들도 많다", "임현주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생각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생각이 많이 갈리긴 하겠네요"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편 임현주는 2013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2023년 2월 영국 출신 작가 다니엘 튜더와 결혼,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다음은 임현주 인스타그램 글 전문
스토리에 어제 하루를 마무리 하며 들었던 생각을 적었는데 공감도, 다른 의견도 주셔서 조금 더 풀어 써봅니다. 제가 ‘새삼’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저 역시 노키즈존이 생긴 이유를 이해하고 있고, 어느새 익숙해졌기 때문이에요. 아이와 외출할 땐 카페나 식당의 출입 가능 여부부터 검색하는 게 자연스러워졌고요. 가끔 깜빡할 때도 있는데, 어제는 유독 그 현실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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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떠드니까, 우니까, 방해되니까. 노키즈존은 주인의 자유라는 말 역시 이해합니다. 안전상의 이유가 있는 곳도 있고요. 다만 한 번쯤은 달리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이의 그런 모습들이 ‘민폐’라고 납작하게 규정되고 시선들이 쌓이면 아이가 ‘배제 되어도 괜찮은 존재’처럼 나도 모르게 내면화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온라인엔 일부 부모의 무책임한 행동이 논란이 되는 영상들도 있고, 그런 장면들을 보면 ‘그래서 노키즈존이 필요하지’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대를 불문하고 어른들도 그런 사례는 다양하게 있는데, 개인의 행동이 아닌 유독 ‘노키즈’로 분류하는 건 전체를 묶어서 배제하는 것 아닐까 하고요. 만약 ‘30대 남성 출입 금지’ ‘20대 여성 출입 금지‘ ‘어르신 금지’ 이런 문구를 보면 황당하지 않을까 상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아이에게만 그 문장이 너무 익숙한 사회가 된 건 아닌지요.
이런 글을 쓰는게 한편으론 조심스러운 이유는 부모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비칠 수 있을 수 있단 걸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랑 갈 수 있는 곳이 많은데 거길 가면 되지 굳이 왜?’ 저 역시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런 조심성이 내제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를 보고 말을 걸어오거나 웃어주는 얼굴들을 훨씬 더 많이 마주하게 됩니다. 이 간극의 정체는 뭘까 신기했고 아이와의 외출이 더이상 긴장의 순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아이 둘을 데리고 한 식당에 들어갔었는데요. 밥이 나왔는데 아이들이 동시에 칭얼대는 시동을 걸기 시작하니 밥을 먹을 틈이 생기질 않고 진땀이 나서 아이 둘과 외식은 사치였나 후회가 슬쩍 밀려왔습니다. 그때 옆 테이블에 있던 어머님이 둘째를 안아 주셨어요. 저희가 밥을 먹을 수 있게 아이를 돌봐 주겠다면서요. 무척 감사했고 이후로도 내내 생각이 났습니다. 옛말처럼 공동체가 아이를 키우는 것, 아이와 부모와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런 경험이 쌓이면, 아이를 바라보고 대하는 많은 것들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