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에서 갑자기 사람들 공격하는 '야생동물'... 지자체도 비상
2025-06-0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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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철 맞아 인간을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공격

한국에서 사람을 공격하는 까마귀는 주로 큰부리까마귀다. 몸길이 약 50~55cm, 날개 길이 30~35cm인 이 새는 까마귀류 중에서도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검은 깃털과 강한 부리,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큰부리까마귀는 전국적으로 도심과 공원, 주택가에 서식한다. 잡식성으로 음식물 쓰레기나 작은 동물, 곤충 등을 먹는다. 특히 도심 환경에 적응력이 뛰어나 인근 숲뿐 아니라 아파트 단지, 공원, 심지어 전봇대 같은 도시 구조물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최근 부산 연제구 연산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까마귀 공격 사건이 발생했다. 1일 오후 5시 50분쯤 한 주민이 “까마귀에게 공격당해 눈에 멍이 들었다”며 신고했다. 연제구는 즉시 안전문자를 통해 “까마귀 공격 신고가 접수됐으니 안전에 유의해 달라”고 안내했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연이어 보고됐다.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까마귀 두 마리가 어린이의 머리를 발톱으로 공격해 아이가 넘어지며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같은 달 23일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파트 단지에서 어린이가 까마귀에게 공격당했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송파구 잠실동 주민들도 아파탑 단지 내 까마귀 공격을 호소했다.
울산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벌어졌다. 울산시 동구의 한 공원에 까마귀 공격이 빈번해 ‘까마귀 공격 주의’ 현수막이 걸렸다. 현수막은 모자나 우산을 착용하라는 안내와 함께 주민들의 주의를 촉구했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는 지난달 25일 휴대전화를 보며 골목을 걷던 남성이 까마귀에게 뒤통수를 공격당했고, 전봇대 위에서 갑작스럽게 날아든 까마귀 때문에 놀란 노인이 넘어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왜 큰부리까마귀는 사람을 공격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주로 번식기와 관련 있다고 본다. 큰부리까마귀는 3월에서 6월 사이 번식기를 맞는다. 이 시기에는 둥지와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강해진다. 특히 도심에서 서식하는 큰부리까마귀는 사람과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인간을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공격성을 띠기 쉽다. 원래 큰부리까마귀는 우거진 숲에서 번식하지만 도시가 확장하면서 사람 영역이 숲으로 침범하면서 까마귀가 도심에 적응했다. 까마귀들이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의 나무, 전봇대, 건물 옥상 등에 둥지를 틀며 사람과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큰부리까마귀는 영리한 새로 알려져 있다. 특정 행동이나 물체를 위협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행동은 까마귀가 사람의 시선이 자신이나 둥지를 향한다고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반짝이는 물체, 빠른 움직임, 큰 소리 등이 까마귀를 자극해 공격을 유발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울산에선 까마귀가 휴대전화를 보며 걷던 남성을 반복적으로 공격했고, 나뭇가지를 휘두른 사람에게도 계속 맴돌며 위협을 가했다. 이는 까마귀가 자신의 영역을 방어하려는 본능적 반응으로 해석된다.
도심에서의 서식지 증가도 문제의 원인 중 하나다. 큰부리까마귀는 도시의 음식물 쓰레기와 같은 풍부한 먹이 자원을 활용해 개체 수가 증가했다. 도시 환경은 천적이 적은 데다 먹이가 풍부해 까마귀가 번식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사람과 까마귀의 접촉 빈도가 높아지며 갈등이 늘었다. 특히 번식기에는 둥지 근처를 지나는 행인을 무조건 위협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와 주민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큰부리까마귀는 야생동물이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허가 없이 포획하거나 해칠 수 없다. 게다가 까마귀는 한곳에 정착해 서식지를 잘 옮기지 않는 특성이 있기에 둥지를 제거하거나 이동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까마귀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서 모자나 우산, 양산을 착용해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처법으로 권장된다.
큰부리까마귀 공격은 도심에서의 생태적 변화와 인간의 영역 확장이 맞물린 결과다. 번식기의 공격성을 줄이고 사람과 까마귀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선 더 많은 연구와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은 까마귀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지날 때 우산이나 모자를 준비하고,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피하는 등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