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존립 기반마저 흔들... 국민의힘, 사상 최악의 위기
2025-06-0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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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정권 잃고 전례 없는 위기 봉착

국민의힘이 3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3년 만에 정권을 잃고 전례 없는 위기에 봉착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으로 촉발된 선거에서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김문수 후보를 내세워 승리를 노렸지만 내부 혼란과 전략적 실책으로 참패를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이재명’ 기치를 내세우며 막판 역전을 노렸으나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주며 제1야당으로 전락했다.
대선 준비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끊임없는 내홍으로 자멸의 길을 걸었다. 당 지도부는 선거 한 달을 앞두고 김 후보를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교체하려 했지만 당원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이로 인해 당 내부의 신뢰가 무너지고 지지층 이탈이 가속화했다. 이후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단일화를 통해 지지율 반등을 기대했으나 협상 과정에서 당권 거래설이 불거지며 오히려 당내 갈등만 부각했다.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도 패배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을 제명하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유지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4일 파면된 뒤 공식 선거운동 엿새째인 지난달 17일 자진 탈당했지만 이후 ‘부정선거’를 다룬 영화를 관람하고 김 후보를 공개 지지함으로써 당을 곤란하게 했다.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질문에 “이미 탈당했다”며 즉답을 피했지만 민주당의 ‘내란 청산’ 메시지에 대응하지 못하며 중도층 표심을 잃는 결과를 낳았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당헌·당규 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당무 개입을 차단하고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사과했지만 부동층을 끌어들이기엔 역부족이었다.
당내 분열은 심각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경선 과정에 반발해 탈당 후 미국으로 떠났고 당의 간곡한 설득에도 김 후보 지지를 거부했다.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선거 초반 독자 유세를 벌이며 당의 단결력 부족을 드러냈다. 지난달 26일 서울 도봉구에서 김 후보와 한 전 대표가 함께 유세에 나섰지만 분열상을 무마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보로 비쳤다.
국민의힘은 대선 패배로 소수 야당으로 전락하며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 한 전 대표 사퇴 이후 두 번째 비대위 체제를 맞았지만 패배 책임론으로 리더십 공백이 불가피해 보인다. 친윤계와 친한계의 계파 갈등은 이미 ‘심리적 분당’ 수준에 이른 상황이다. 당권 경쟁이 본격화하면 갈등이 더욱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영남권을 기반으로 한 친윤계와 패배 책임론을 무기로 당권을 노리는 친한계가 거세게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원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107석에 불과한 의석으로 거대 여당을 견제해야 하는 국민의힘은 입법 투쟁에서 뚜렷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임기 초반 법안을 강행 처리할 경우 필리버스터나 장외 투쟁 외에 마땅한 대응 수단이 부족하다. 당 안팎에서는 두 차례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로 당세가 ‘영남 자민련’ 수준으로 축소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수 가치와 정체성을 잃었다는 비판 속에서 당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 국민의힘이 당면한 근원적인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외부 요인도 위기를 부추긴다. 탈당한 홍준표 전 시장과 이준석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협력 가능성을 시사하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 진영 재편을 노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들이 세를 얻으면 국민의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