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면 잠만 자다가 결국 사망...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파리
2025-06-0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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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안 하면 거의 100% 사망하는 질병 유발하는 곤충

1900년부터 1920년까지 아프리카 우간다에선 25만 명이 사망했다. 부소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부 우간다 전체가 이 곤충이 옮기는 질병으로 초토화됐다. 문제는 지금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곤충은 치료하지 않으면 거의 100% 사망하는 수면병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한다. 한 세기가 넘도록 아프리카 대륙을 공포로 지배하는 체체파리에 대해 알아봤다.
체체파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파리다. 주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 분포한다. 약 1000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인 파리와 달리 체체파리는 독특한 생김새를 갖고 있다. 몸길이는 8~17mm 정도로 보통 파리보다 크며, 날개를 접었을 때 가위처럼 겹쳐지는 특징이 있다. 또한 머리에 달린 긴 주둥이로 피를 빨아먹는 흡혈 곤충이다.
이 파리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피를 빨아먹기 때문이 아니다. 체체파리는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라는 기생충을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는 인간에게 아프리카 수면병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기생충이다.
감염 과정은 간단하지만 치명적이다. 체체파리가 이미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트리파노소마를 체내로 흡수한다. 이후 파리의 소화기관과 침샘에서 기생충이 증식하고 발달한다. 약 15~35일 후 감염된 체체파리가 건강한 사람을 물면 침과 함께 기생충이 인간의 혈류로 들어간다. 한 번의 물림만으로도 치명적인 감염이 시작된다.
수면병의 증상은 단계적으로 나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각해진다. 1단계에서는 물린 부위에 붉은 궤양이 생기고, 발열, 두통, 관절통, 가려움증 등이 나타난다. 많은 환자들이 이 시기에 단순한 감기나 말라리아로 오인하기 쉽다. 2~3주 후에는 림프절이 부어오른다. 특히 목 뒤쪽 림프절 부종이 두드러진다. 이를 빈터보텀 징후(Winterbottom's sign)라고 부른다. 수면병의 특징적인 증상 중 하나다.
더욱 무서운 것은 2단계부터다. 기생충이 중추신경계를 침범하면서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난다. 환자는 낮에 극심한 졸음을 느끼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수면병이라는 이름의 유래다. 점차 의식 장애, 성격 변화, 언어 장애, 운동 실조, 경련 등이 나타난다. 환자는 서서히 혼수상태에 빠진다. 치료하지 않으면 100% 사망한다.
이 기생충에는 두 가지 아종이 있다.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 감비엔세와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 로데시엔세다.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 감비엔세에 의한 서아프리카형 수면병은 비교적 천천히 진행돼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발병한다. 반면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 로데시엔세에 의한 동아프리카형 수면병은 급성으로 진행돼 수주에서 수개월 내에 사망에 이른다. 동아프리카형이 더욱 치명적이고 빠르게 진행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아프리카 36개국에서 수면병 위험지역이 존재한다. 매년 약 7000~10000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위험에 노출된 인구는 약 6500만 명에 달한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 남수단 등에서 발병률이 높다. 과거에는 연간 30만 명 이상이 감염되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에이즈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냈다.
수면병의 진단은 복잡하고 어렵다. 혈액, 림프절 천자액, 뇌척수액 검사를 통해 기생충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검사 시설이 부족한 아프리카 농촌 지역에서는 정확한 진단이 쉽지 않다. 많은 환자가 제때 진단받지 못해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다.
치료법도 제한적이고 부작용이 심각하다. 1단계에서는 펜타미딘(서아프리카형)이나 수라민(동아프리카형)을 사용하지만, 2단계로 진행되면 치료가 훨씬 어려워진다. 과거에는 비소 화합물인 멜라르소프롤을 사용했는데, 이 약물은 5~10%의 환자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NECT(Nifurtimox-eflornithine combination therapy)나 펙시니다졸 같은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됐지만 여전히 접근성과 비용 문제를 안고 있다.
체체파리는 인간뿐만 아니라 가축에게도 치명적이다. 나가나병(Nagana)으로 불리는 동물 트리파노소마증을 일으켜 소, 염소, 양, 돼지 등을 죽음으로 이끈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의 축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으며, 경제적 손실은 연간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특히 체체파리가 서식하는 지역에서는 축산업이 거의 불가능해 농업 발전이 크게 제약받고 있다.
체체파리 방제를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살충제 살포, 덫 설치, 불임 수컷 방사법(SIT)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체체파리의 강한 생명력과 넓은 서식지, 그리고 아프리카의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완전한 박멸은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WHO는 2030년까지 수면병을 공중보건 문제에서 제거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환자 수가 95% 이상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여전히 아프리카 오지에서는 이 작은 살인곤충이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