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완파에도 쏟아진 야유…참았던 이강인, 마이크 잡고 '작심 발언'
2025-06-11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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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호,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최종 10차전 4-0 완파
경기 직후 대한축구협회와 홍명보 대표팀 감독 두둔한 이강인
한국 축구대표팀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조 1위로 마무리하며 11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완성했다. 그러나 화끈한 골 잔치가 펼쳐진 서울월드컵경기장엔 이례적으로 야유가 터졌고, 경기 후 이강인은 팬들을 향해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메시지를 남겼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최종 10차전에서 쿠웨이트를 4-0으로 완파했다. 전반 상대 자책골로 리드를 잡은 뒤, 후반에는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오현규(헹크), 이재성(마인츠)의 연속 골이 터지며 승리를 자축했다.
이날 경기는 조기 본선행이 확정된 이후 펼쳐진 마지막 예선 경기로, 의미 있는 실험이 병행됐다. 벤치를 지키거나 교체로 기용되던 젊은 선수들을 대거 선발로 투입한 가운데 거둔 완승이었다.
한국은 앞서 6일 이라크 원정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최소 조 2위를 확보, 본선행을 조기에 확정 지었다. 이후 홈 최종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예선을 조 1위로 마무리했고, 16년 만의 ‘예선 무패’라는 기록도 동시에 달성했다. 이는 5~6개국이 풀리그 방식으로 치르는 현재 구조에서 한국이 예선을 무패로 마친 세 번째 사례로, 앞선 1990년 이탈리아 대회, 2010년 남아공 대회에 이어 이번이 역사에 새겨졌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인 한국은 이날 승리로 쿠웨이트와의 역대 상대 전적에서도 14승 4무 8패로 우위를 더욱 벌렸다. 수치로만 보면 완벽한 하루였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기도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기 시작 전, 전광판에 홍명보 감독의 이름이 소개되자 일부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졌다. 홍 감독의 대표팀 선임 과정과 대한축구협회 운영에 대한 팬들의 불신은 경기 당일에도 여전했다. 축구협회 회장직에 4연임에 성공한 정몽규 회장을 포함해 협회 전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단지 성적만으로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대표팀 미드필더 이강인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팬들에게 직접 목소리를 냈다. 최우수 선수로 선정돼 마이크를 잡은 그는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있었다. 어린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지만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며 팀 분위기를 먼저 언급한 뒤,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강인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감독님과 축구협회에 대해 공격적으로 비판하시는 분들이 있다. 우리는 축구협회 소속이고, 감독님은 저희 보스다. 너무 비판만 하시면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긍정적인 부분도 함께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월드컵 본선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최대한 도와달라”고 덧붙였다. 단순한 두둔이 아닌, 대표팀 일원으로서 팬들과 팀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메시지였다.
이강인의 발언은 기자회견에 이어 믹스트존에서도 이어졌다. “기자분들뿐 아니라, 요즘은 유튜브에서도 축구협회에 대한 비판이 많다”며 “비판은 당연하지만, 과하면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가 국가대표가 된 이후 오늘처럼 경기장에 빈자리가 많았던 건 처음이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강인은 월드컵 데뷔 무대였던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두 번째 월드컵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는 최종예선 경기를 거의 못 뛰고 막판에 합류했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1년 남은 본선까지 팀 전체가 한 방향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올 시즌 파리 생제르맹 소속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을 경험했다. 후반기엔 주전 경쟁에서 밀리기도 했지만, 대회 우승 멤버로 이름을 올리며 꿈의 무대 정상에 섰다. 이에 대해 그는 “한 팀으로 최선을 다하면 이룰 수 있다는 걸 배웠다”며 “남은 목표인 월드컵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에서의 완승, 새로운 기록들, 젊은 선수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은 여전히 신뢰 회복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강인의 발언은 단순한 변명도, 방어도 아니었다. 대표팀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팬들의 응원과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담담하게 설명한 것이다.
11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세운 한국 축구는 이제 새로운 1년을 준비한다. 승리를 넘어선 신뢰 회복, 그것이 이강인이 꺼낸 ‘작심 발언’의 진짜 목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