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한복판서 득실득실…사라졌던 ‘한때 멸종위기 동물’ 무더기 발견

2025-06-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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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감물면 오성리 일대 벼농사 논에서 집단 서식 확인

물결치는 벼 사이로 작은 생명들이 일제히 꿈틀거린다. 투구를 닮은 딱딱한 껍질을 머리에 이고, 기다란 꼬리를 끌며 논바닥을 기어 다니는 정체불명의 무리. 충북 괴산군 감물면 오성리 일대 친환경 벼농사 논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포착됐다. 이미 한 차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긴꼬리투구새우가 논 한복판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이 생명체가 다시금 논에서 ‘득실득실’ 살아 숨 쉬는 이유는 무엇일까.

벼농사 논. 기사와 무관 / 뉴스1
벼농사 논. 기사와 무관 / 뉴스1

괴산군이 12일 밝힌 바에 따르면 감물면을 비롯한 칠성면, 청천면 등지의 벼농사 지역에서 긴꼬리투구새우가 집단 서식 중인 사실이 연이어 확인됐다. 긴꼬리투구새우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릴 만큼 오래된 계보를 가진 생물로, 무려 3억 년 전 고생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둥글고 투박한 투구 모양의 갑각, 세 갈래로 갈라진 기다란 꼬리, 30여 개의 작은 다리로 논바닥을 파헤치며 유기물과 조류를 먹는 독특한 생태적 특징을 지녔다.

특히 긴꼬리투구새우는 일반적인 논에서는 좀처럼 발견되기 어렵다. 합성농약과 화학비료에 극도로 민감해 오염된 환경에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생물의 출현은 해당 논이 ‘얼마나 깨끗한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환경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번에 무더기로 발견된 논 역시 전면적인 친환경 농법이 도입된 지역으로, 군은 벼 재배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우렁이·오리 등을 활용해 잡초와 해충을 방제하고 있다.

긴꼬리투구새우는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의 논이나 습지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되던 생물이지만, 이후 산업농업 확산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 위기감 속에 2005년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되었고, 이후 개체 수 회복세가 뚜렷해지자 2012년 멸종위기종 지정이 해제됐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논에서 ‘바글바글’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된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친환경 벼를 재배하는 경남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 논에서 청정지역에만 사는 긴꼬리 투구새우를 이명기씨가 손으로 들어 보이고 있다. 기사와 무관 / 뉴스1(함안군청 제공)
친환경 벼를 재배하는 경남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 논에서 청정지역에만 사는 긴꼬리 투구새우를 이명기씨가 손으로 들어 보이고 있다. 기사와 무관 / 뉴스1(함안군청 제공)

괴산군에 따르면 긴꼬리투구새우는 친환경 벼농사 도입 2년차이던 2013년 처음 발견된 이후, 해마다 개체 수가 늘고 있다. 매년 모내기를 마친 5월부터 벼가 한창 자라는 7월까지는 논바닥을 기어 다니는 새우 무리가 육안으로도 쉽게 관찰될 만큼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 군 관계자는 “긴꼬리투구새우는 일종의 친환경 농업 성적표와도 같다”며 “감물·칠성·청천면 일대에서의 발견은 괴산군이 유기농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괴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충북 제천시 의림지 뜰에서도 긴꼬리투구새우가 포착됐다. 제천시는 2019년 해당 지역에 친환경 농업단지를 조성한 이후, 벼 재배면적을 30ha에서 140여ha로 늘려가고 있다. 이곳 역시 우렁이, 오리, 미꾸라지, 메기 등을 방제수단으로 활용하며 농약과 비료 없이 쌀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 결과, 긴꼬리투구새우를 비롯한 풍년새우 등 다양한 생물 종이 되살아나고 있다.

긴꼬리투구새우는 포식성이 매우 강하고 다리를 이용해 흙을 휘젓고 다니면서 먹이를 찾는 습성 때문에 잡초제거(흙탕물로 햇빛을 차단하여 잡초의 성장 억제)와 해충발생억제(해충의 유충을 주먹이로 함) 등 친환경 농법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뉴스1(산청군 제공)
긴꼬리투구새우는 포식성이 매우 강하고 다리를 이용해 흙을 휘젓고 다니면서 먹이를 찾는 습성 때문에 잡초제거(흙탕물로 햇빛을 차단하여 잡초의 성장 억제)와 해충발생억제(해충의 유충을 주먹이로 함) 등 친환경 농법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뉴스1(산청군 제공)

긴꼬리투구새우가 단지 생물학적 희귀성을 넘어서, 실제 농업 현장에서의 가치도 주목된다. 이들은 논바닥을 끊임없이 뒤지며 유기물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잡초 씨앗의 발아를 억제하고, 해충 유충도 포식해 벼 생육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한 마리당 하루 수십 차례 바닥을 파는 습성이 있어 논 자체를 숨 쉬게 만드는 자정작용 효과도 크다.

괴산과 제천에서 다시 등장한 이 작은 갑각류는 단지 멸종위기 동물이 복원되었다는 생태학적 의미를 넘어, 우리 농업이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춘다.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긴꼬리투구새우가 다시 논에서 무리를 이루는 이 풍경이야말로 친환경 농업의 가장 강력한 증거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미래의 실마리일지 모른다.

유튜브, TV생물도감
home 김희은 기자 1127khe@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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