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소비 1등급 에어컨’ 갑자기 보기 힘들어진 이유가 뭔가 했더니...
2025-06-2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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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급 에어컨은 왜 자취를 감췄을까

에어컨은 에너지소비효율등급에 따른 가격 차이가 심한 가전이다. 똑 같은 성능을 발휘하더라도 등급에 따라 가격 차이가 수십만원에 이른다. 실제로 같은 제조사 기준 1등급 제품과 2등급 스탠드 에어컨의 판매가는 많게는 70만원까지 벌어진다.
몇 해 전만 해도 가전제품 매장에 나서면 ‘에너지소비효율등급 1등급’ 스티커가 붙은 에어컨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1등급 에어컨은 소비자에게 ‘보기 드문 제품’이 돼버렸다. 그 이유가 뭘까. 에어컨 제조 기술이 후퇴해서도, 제조사가 고효율 에어컨을 만들지 않아서도 아니다. 정부가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에너지소비효율등급 제도를 전면 개편했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는 ‘효율관리기자재 운용규정’ 개정안을 통해 2021년 10월부터 냉장고·에어컨·TV의 소비효율등급 기준을 대폭 상향한다고 고시했다. 당시 개정안의 핵심은 중장기 목표소비효율기준 도입이다. 즉 단기 기준만 제시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향후 3년, 6년에 걸친 최고·최저등급 기준을 미리 공표해 제조사들이 고효율 제품 개발을 장기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개정안에 따라 2021년 10월부터 에어컨의 에너지소비효율등급 1등급 기준은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 특히 가정용 스탠드형 에어컨의 경우, 기존 대비 최저등급인 5등급 기준이 약 40% 상향됐고, 등급별 효율 기준 자체도 현실화했다. 이로 인해 이전 기준에서 1등급을 받았던 제품이 개편 이후에는 2등급 혹은 그 이하로 재분류되는 사례가 늘었다.
냉장고나 TV 역시 마찬가지다. 냉장고는 기존 ‘최대 예상 소비전력 대비 실제 소비전력’이라는 복잡한 효율지표 대신 ‘부피당 소비전력’으로 측정 방식이 바뀌었고, 에어컨과 함께 소비전력 측정 방식도 실사용 환경에 더 가깝도록 조정됐다. TV는 실험실 수치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실제 소비에 근접한 수치를 반영하도록 1.3배를 곱해 측정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결국 이들 조치는 모두 기존보다 훨씬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의미였다.
정부는 이 같은 등급 재조정이 변별력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지나치게 많은 제품들이 1등급을 받아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 기준이 흐려졌다는 것이다. 예컨대 냉장고는 2020년 기준으로 신고모델 중 약 29%가 1등급이었지만 개정 기준이 적용되면 이 비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TV의 경우도 1등급 모델 비율이 21%에서 15% 미만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에어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되진 않았지만, 전체적인 추세를 감안하면 1등급 제품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동시에 최저효율 등급인 5등급 기준도 상향 조정해 에너지 효율이 낮은 제품은 시장에서 퇴출되도록 유도했다. 냉장고의 경우 5등급 기준이 약 30%, 에어컨은 약 20% 강화됐고, TV는 기술 성숙도를 감안해 약 3% 상향 조정됐다. 낮은 성능의 제품을 아예 만들지 못하게 막고, 높은 성능의 제품은 더욱 까다로운 평가를 통과해야만 1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된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단발적인 조치가 아니다. 산업부는 3년마다 에너지소비효율 기준을 정기적으로 갱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50년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전환 확산을 위한 장기 전략의 일환이다.
결과적으로 1등급 에어컨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제조사나 소비자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기준 자체가 엄격해진 데 따른 구조적 변화다. 1등급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문턱이 훨씬 높아진 셈이다. 과거 기준에서 1등급이던 제품이 새 기준 아래에서 2등급이나 3등급으로 내려앉은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에어컨 판매점은 에너지소비효율등급 개편으로 인해 인터넷몰 등에서 제품에 대한 설명을 수정하고 있다. 에너지소비효율등급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1등급인 줄 알고 구매한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를 취소하는 사례도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