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초 만에 불바다...'아비규환' 5호선 방화 사건 CCTV 영상 공개
2025-06-26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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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범, 한강 하저터널 지날 때 휘발유 붓고 불붙여
살인미수와 현존전차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 구속 기소
지난달 31일 발생한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됐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25일, 방화범 원모(67)씨가 저지른 사건의 전말이 담긴 영상을 언론에 공개하며 당시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평온하던 열차 내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 속 원 씨는 흰색 모자를 눌러쓴 채 오전 8시 42분쯤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 방면으로 향하던 열차 4번째 칸에서 페트병에 담긴 휘발유를 바닥에 두 차례 뿌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승객들은 서로 밀치며 옆 칸으로 황급히 대피하기 시작했다. 한 임신부는 휘발유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아찔한 상황을 겪었고, 신발이 벗겨진 채 기어가며 간신히 몸을 피했다. 불은 방화범이 라이터를 켜기 불과 2~3초 전의 일이었다.
이 모든 상황은 단 20초 만에 벌어졌다. 라이터 불꽃이 휘발유에 닿자 불길은 삽시간에 열차 안을 집어삼켰고, 짙은 연기가 순식간에 차내를 가득 메웠다. 옆 칸으로 대피한 승객들은 곧바로 기관사에게 위급 상황을 알렸다.
일부 승객은 비상 핸들을 작동시켜 열차를 긴급 정차시키고, 출입문을 열어 연기를 외부로 배출시켰다. 기관사도 침착하게 승객들에게 대피 경로를 안내했다. 승객들은 결국 지하 터널을 걸어 밖으로 빠져나오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차량 내장재가 불연성 소재로 교체된 점, 그리고 승객들의 신속한 대응이 큰 피해를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검찰 관계자는 "휘발유의 특성상 화염이 급격하게 확산돼 대피가 지체됐다면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며, 현장의 시민 의식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당시 상황 속에서도 몸이 불편한 노약자를 부축하거나 업어서 대피시키는 승객들, 위험을 무릅쓰고 불이 난 칸에 뛰어들어 소화기로 초기 진화에 나선 시민들의 활약이 있었다.
또한 출퇴근 중이던 경찰관 4명도 사건 수습에 큰 역할을 했다. 서울경찰청 소속 제8기동단 전성환·신동석 순경, 과학수사과 이주용 경위, 종로경찰서 정재도 경감은 현장에서 방화범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들은 사건 직후 옆 칸에 쓰러져 있던 원 씨를 일반 부상 승객으로 인식해 들것에 태워 여의나루역까지 이송했다. 그러나 그의 손에 묻은 그을음을 수상히 여긴 경찰의 추궁 끝에 원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검찰은 원 씨를 살인미수와 현존 전차 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으며, 그의 방화 행위에 명확한 살인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