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멸종위기종 보호의 새 장 여는 데 성공한 동물의 정체

2025-06-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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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복원의 새로운 전환점 마련

하늘을 가르며 우아하게 날아가는 큰고니의 모습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최근 국내에서 태어나 인공적으로 보호받던 큰고니 한 마리가 야생으로 돌아가 본래 서식지인 러시아까지 성공적으로 이동하며 생태 복원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인간과 자연이 협력해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었다.

큰고니 / 에버랜드 제공
큰고니 / 에버랜드 제공

에버랜드와 낙동강하구에코센터는 26일 큰고니의 생태 복원이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에버랜드에서 자연 부화된 큰고니 '여름'이 야생 무리와 함께 비행해 러시아 프리모르스키(연해주)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동물원에서 자연 부화한 큰고니가 여름 서식지이자 번식지인 러시아로 이동한 첫 번째 사례다.

'여름'의 성공적인 야생 복귀 뒤에는 감동적인 가족사가 숨어있다. 1996년 경기 남양주시 팔당리 부근에서 총에 맞아 심한 상처를 입은 채로 구조된 큰고니 부부 '날개'와 '낙동'이 바로 '여름'의 부모다. 1995년생으로 추정되는 고니 부부는 특히 '날개'가 우측 날개에 총상을 심하게 입어 날개 일부를 절단해 더 이상 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들은 에버랜드에서 27년간 보호받으며 생활했다. 이들 부부 사이에서 2023년 6월 '여름'이 태어났다.

큰고니 / 에버랜드 제공
큰고니 / 에버랜드 제공

'여름'은 그해 10월 부산 을숙도 물새류 대체 서식지로 이송돼 본격적인 야생 적응훈련을 시작했다. 에버랜드는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조류생태환경연구소와 함께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인 큰고니 야생 방사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여름'은 을숙도철새공원에서 야생 큰고니 개체와 생활하며 먹이 활동과 비행 능력, 사회적 행동 등을 자연스럽게 학습해왔다.

연구팀은 '여름'의 등에 부착한 GPS 위치 정보시스템을 통해 활동량과 활동 반경 등을 체크하며 생태 연구를 진행했다. '여름'은 올봄까지 을숙도 대체서식지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 킬로미터 거리를 이동해 보는 시도를 계속해온 것으로 관찰됐다.

'여름'의 등에 GPS를 부착하는 모습. / 에버랜드 제공
'여름'의 등에 GPS를 부착하는 모습. / 에버랜드 제공

마침내 지난 4월 30일 을숙도철새공원을 출발한 '여름'은 부산에서 출발해 울산 회야댐을 경유, 함경남도 신포시로 이동했다. 이후 함경북도 김책시까지 하루 만에 이동한 후 한 달간 휴식기를 가졌고, 5월 28일 이른 새벽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역에 도착했다. 총 2300km에 달하는 긴 여정을 완주한 것이다.

큰고니 / 에버랜드 제공
큰고니 / 에버랜드 제공

큰고니는 기러기목 오리과에 속하는 겨울철새다. 현재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몸길이는 약 150cm에서 152cm 정도로 암수의 형태가 유사하다. 어른 새는 모두 순백색이고 어린 새는 회갈색을 띤다. 부리 끝은 검은색, 부리 기부는 노란색인데, 고니와 비슷하나 부리의 노란색 부분이 넓고 부리 앞쪽으로 길게 돌출돼 끝이 삼각형 모양인 것이 특징이다. 다리는 검은색이다.

큰고니는 저수지, 물이 고인 논, 호수, 하구, 해안 등 수심이 얕은 수면에서 생활한다. 목을 곧게 세우고 헤엄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며, 5월 하순에서 6월 상순에 걸쳐 한 배에 3~7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하루 걸러서 낳으며 다 낳은 지 사흘 정도 지나면 암컷이 혼자서 품는다.

한국에서는 동해안 석호, 낙동강 하구, 천수만, 금강하구, 주남저수지, 한강, 전라남도 진도·해남 등지에서 월동한다. 전국의 철새 도래지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4000~5000마리의 개체가 월동한다. 11월에 한국을 찾아오는 큰고니는 2월 말이면 3000km 거리의 번식지로 돌아간다. 세계적으로는 아이슬란드에서 시베리아에 걸친 툰드라 지대, 지중해, 인도 북부, 일본에 분포한다.

큰고니는 혼자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기러기처럼 한 번 짝을 맺으면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며, 항상 암수 한 쌍과 그 해 태어난 새끼들로 이뤄진 가족 단위로 생활한다. 크게는 그 전년도에 태어난 새끼들까지 함께하는 경우도 있다. 긴 목을 물속에 넣어 호수와 하천 밑바닥의 수초 뿌리, 줄기 등을 먹거나 갯벌에서 조개, 해초, 작은 어류 등을 먹는다. 번식기에는 동물성 먹이를 주로 섭취한다.

큰고니의 생존에는 여러 위협 요소가 존재한다. 큰고니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부분의 사고는 먹이 활동 과정에서 발생한다. 긴 목과 오리과 특유의 부리로 호수나 하천 밑바닥을 휘저으며 먹이를 찾는 과정에서 바닥에 가라앉은 납탄, 납추 등을 삼켜 납 중독에 걸린다. 납 중독에 걸린 큰고니는 녹색 설사를 하며 폐사율이 굉장히 높다.

또 다른 위험 요소는 낚시꾼들이 주변에 버리고 간 낚싯줄과 낚싯바늘이다. 버려진 낚싯줄과 낚싯바늘은 새들이 발견하기도 피하기도 쉽지 않은 장애물이다. 낚싯바늘을 삼켜 내장에 낚싯바늘이 박혀 있는 경우도 있고, 낚싯줄을 삼켜 혀와 식도 등이 줄에 얽혀 먹이 활동이 불가능해 서서히 굶어 죽는 경우도 있다. 이 외에도 흰색 대형 조류라는 이유로 밀렵에 의한 피해도 적지 않다.

날씨가 흐린 날에는 호수나 하천 주변 전깃줄이나 다리 등에 충돌하기도 하며, 농부들이 뿌린 농약 등에 중독되기도 한다. 다른 오리과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돼 폐사하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큰고니는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면 워낙 빠르게 폐사해 바이러스가 주변 다른 새들에게 전염될 틈이 없다고 한다.

이 같은 다양한 위험 요소들로 인해 한국을 찾아오는 큰고니의 개체 수가 매년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1968년 5월 31일에 천연기념물 제201-2호로 지정됐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돼 천연기념물로 재지정됐다. 1998년에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 및 보호 야생 동식물로 지정됐고, 2005년에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 2급으로, 2012년에 멸종 위기 야생 생물 2급으로 지정됐다. IUCN 레드 리스트에는 관심 대상종으로 지정돼 있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관계자는 "을숙도 물새류 대체 서식지에서 자란 개체가 본래 번식지인 러시아까지 이동한 것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정동희 에버랜드 동물원장은 "여름이가 좋은 짝과 함께 올겨울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온다면 큰고니 생태 연구와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자연 생태계 회복에 대한 가능성 측면에서 더욱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의 성공적인 야생 복귀는 멸종위기종 보호와 생태계 복원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모은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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