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개체수 폭증해 한국인들 위협하는 동물... 전문가까지 우려
2025-06-3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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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감염병 유발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고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생태계 전반에 걸친 변화가 나타나는 가운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설치류의 급격한 증가가 보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겨울철 기온 상승과 여름철 연장으로 설치류의 생존 환경이 나아지면서 이들이 매개하는 각종 감염병의 확산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쥐들의 먹잇감이 풍부해짐에 따라 향후 설치류가 매개하는 질병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최경성 경북대 생태환경대학 교수는 30일 충북 오송 국립인체자원은행에서 열린 '기후 위기 인수공통감염병 대응' 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밝혔다.
심포지엄은 정부와 학계가 인수공통감염병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과 농림축산검역본부,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대한인수공통감염병학회 등이 참여했다.
최 교수는 "겨울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면 설치류의 주요 먹이인 곤충의 서식지가 확장됨에 따라 더 많은 먹이가 확보돼 설치류의 개체 수가 늘어난다"며 "기후변화 때문에 설치류의 서식지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지역에 설치류 매개 질병이 확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설치류의 증가는 생태학적 변화를 넘어 새로운 감염병 유발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가 빨라지면서 사람과 설치류의 접촉 빈도가 늘고, 인수공통감염병 확산의 위험이 커졌다"고 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쥐 개체수 급증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25년 2월 발표된 국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16개 도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9%에 해당하는 11개 도시에서 쥐 개체수가 상당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뉴욕, 암스테르담이 가장 증가폭이 컸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쥐 문제가 더욱 심화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 조치로 음식점과 상업시설들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으면서 쥐들이 주거 지역으로 먹이를 찾아 이동하게 됐다. 해충 방제 업체 오킨(Orkin)이 발표한 지난해 미국 쥐 창궐 도시 순위에서는 시카고,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워싱턴이 4위를 차지했다.
설치류 매개 질병의 종류와 위험성은 다양하다. 설치류 매개 질병엔 페스트, 신증후군출혈열, 렙토스피라증, 톡소플라즈마 등이 있다. 주로 설치류의 배설물, 소변, 타액 혹은 진드기 등 설치류에 기생하는 외부 기생충을 통해 사람이나 동물에게 바이러스나 세균이 전파된다.
이 중 한타바이러스로 인한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HPS)은 특히 치명적인 질병이다. 한타바이러스는 감염된 설치류의 소변, 배설물, 타액을 통해 전파되며, 공기 중으로 퍼진 바이러스 입자를 흡입할 때 감염된다. 감염 후 보통 2, 3주의 잠복기를 거쳐 발병한다. 초기에는 발열, 근육통, 피로감 등 독감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다가 급속히 호흡곤란과 폐부종으로 진행된다. 치사율이 매우 높아 즉각적인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하지만 특별한 치료법은 없어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렙토스피라증은 렙토스피라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으로, 감염된 설치류의 소변으로 오염된 물이나 토양을 통해 전파된다. 경미한 경우 발열과 두통 등의 증상을 보이지만, 심한 경우 간과 신장 손상, 뇌막염까지 초래할 수 있다. 특히 홍수나 침수 지역에서 발생 위험이 높다.
톡소플라즈마증은 톡소플라즈마 기생충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이다. 임신 중 감염될 경우 태아에게 심각한 선천성 기형을 일으킬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설치류뿐만 아니라 고양이도 중간숙주 역할을 하므로 반려동물 관리도 중요하다.
신증후군출혈열(HFRS)은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설치류 매개 질병 중 하나로, 들쥐가 주요 매개체다. 급성 발열과 함께 신장 기능 장애를 일으킨다. 심한 경우 쇼크와 출혈로 인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설치류 매개 질병을 예방하려면 설치류와의 접촉을 차단해야 한다. 주거지와 작업장에서 설치류가 침입할 수 있는 구멍이나 틈새를 철저히 봉쇄해야 한다. 특히 직경 6mm 이상의 구멍은 모두 막아야 한다. 철 수세미나 시멘트 등을 이용해 단단히 차단해야 한다.
청소할 땐 반드시 안전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설치류의 배설물이나 소변을 발견했을 땐 절대 직접 빗자루로 쓸거나 진공청소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가 공기 중으로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10% 염소계 표백제 용액이나 70% 알코올로 충분히 적신 뒤 30분간 기다렸다가 종이타월로 닦아야 한다. 청소 후에는 반드시 손을 비누로 20초 이상 깨끗이 씻어야 한다.
설치류를 잡을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끈끈이 덫이나 산 채로 잡는 덫보다는 즉시 죽이는 스냅 트랩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설치류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많은 바이러스를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덫은 우유갑 같은 용기 안에 설치하거나 신문지 위에 놓아 청소를 용이하게 해야 한다.
음식물 관리도 중요한 예방 요소다. 모든 음식물은 단단한 용기에 보관해야 한다. 반려동물 사료도 예외가 아니다. 설치류가 접근할 수 있는 수원을 차단하고, 쓰레기통은 뚜껑이 있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 정원이나 야외 공간에서는 떨어진 과일이나 야채를 즉시 치우고, 퇴비더미는 집에서 떨어진 곳에 설치해야 한다.
야외 활동 시에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캠핑이나 등산 시에는 텐트나 오두막에서 음식물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고, 설치류 서식지로 의심되는 곳은 피해야 한다. 특히 오래된 건물이나 창고, 헛간 등을 청소하거나 출입할 때는 반드시 N95 마스크를 착용하고 충분한 환기해야 한다.
수질 관리도 렙토스피라증 예방을 위해 중요하다. 홍수나 침수 지역에서는 오염된 물에 직접 접촉하지 않도록 하고, 상처가 있는 피부는 특히 보호해야 한다. 야외 활동 후에는 즉시 샤워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최 교수는 "전국적인 설치류 분포와 설치류 매개 질병 발생률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국내에서 수행되는 설치류 매개 질병 연구는 대부분 한타바이러스 발생 조사에 치중돼 이 외 병원체에 대한 연구는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설치류가 매개하는 미지의 병원체에 대한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설치류 매개 인수공통감염병 연구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기후변화와 도시화가 진행하면서 설치류와 인간의 접촉 기회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도시 열섬 현상으로 인한 기온 상승은 설치류의 번식 주기를 단축하고, 극한 기후 현상은 설치류들을 인간 거주지로 밀어내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국제 교역과 인구 이동의 증가로 새로운 종의 설치류나 병원체가 유입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인 차원의 예방 노력과 함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기적인 설치류 개체수 모니터링, 질병 감시 체계 구축, 시민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최근 기후 변화와 국제 교류의 증가로 인수공통감염병의 발생빈도와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며 "인수공통감염병 예측 및 신속 대응 기반을 마련하는 등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