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도 일반인도 전세계 영화 중 최고작으로 꼽은 '한국영화'

2025-07-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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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 위상 다시 입증한 한국영화 정체

세계적 유력지인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영화 '기생충'이 21세기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지난달 영화계 전문가들이 뽑은 순위에 이어 일반 대중들까지 똑같은 선택을 하면서 '기생충'의 독보적인 위상을 다시 입증했다.

영화 '기생충' 스틸
영화 '기생충' 스틸

NYT는 2일(현지시각) 20만명이 넘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21세기 최고의 영화가 무엇인지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봉준호 감독의 2019년작 영화 '기생충'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번 독자 투표는 전 세계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이 참여한 대규모 설문조사로 일반 대중들의 영화 선호도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 결과다.

'기생충'은 2019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며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영화 '기생충' 스틸
영화 '기생충' 스틸

영화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가난한 기택 가족이 부유한 박사장 가족의 집에 하나씩 취업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겉으로는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한국 사회의 계급 갈등과 빈부 격차 문제를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에서 '냄새'라는 소재를 통해 계급 간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반지하에서 생활하는 기택 가족은 특유의 냄새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부유한 박사장 가족과 구별되는 계급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또한 영화 속 계단과 지하의 공간적 메타포를 통해 사회 계층 구조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폭우 장면에서 기택 가족이 물에 잠긴 반지하로 내려가는 모습은 사회적 약자들의 절망적인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기생충' 스틸
영화 '기생충' 스틸

영화는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 등 한국의 대표 배우들이 출연해 완성도 높은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송강호는 생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택 역할을 통해 서민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선균은 상류층의 위선을 드러내는 박 사장 역할로 계급 사회의 민낯을 보여줬다.

다른 한국 영화 중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 봉 감독의 다른 영화인 '살인의 추억'(2003)이 각각 40위와 49위에 올랐다. 박 감독의 '아가씨'(2016)는 67위였다. '올드보이'는 복수를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살인의 추억'은 실제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봉준호 감독의 초기 대표작이다.

2위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3위는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코엔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였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할리우드의 어두운 면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독특한 서사 구조로 유명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서부 스릴러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인터스텔라'(2014), '다크나이트'(2008), '매드맥스:분노의 도로'(2015),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이터널 선샤인'(2004), '소셜네트워크'(2010)가 4∼10위에 이름을 올렸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수상작이다. 페이스북 창립 과정을 다룬 전기 영화인 '소셜네트워크'는 현대 사회의 SNS 문화를 예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기생충'은 지난달 27일 NYT가 저명한 감독과 배우, 제작자 등 영화산업 종사자와 주변 인물 500명의 평가를 바탕으로 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 100선'에서도 1위에 오른 바 있다. 전문가 투표에서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데니스 빌뇌브, 클로이 자오, 바리 젠킨스, 린 램지 등 현대 영화계를 이끌고 있는 감독들이 참여했다.

영화 '기생충' 스틸
영화 '기생충' 스틸

영화계 내부 인사들과 NYT 기사를 읽는 일반 대중들 양쪽 모두가 '기생충'을 1위로 평가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기생충'이 비평가들의 호평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공감까지 동시에 얻어낸 보기 드문 작품임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경우 비평가들이 선호하는 예술 영화와 대중들이 선호하는 상업 영화가 다른 경우가 많지만 '기생충'은 이 두 영역을 모두 만족시킨 것이다.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은 지난달 NYT가 발표한 21세기 최고의 영화 100선에선 43위와 99위였는데, 독자들이 뽑은 100대 영화에서는 순위가 더 높게 나왔다고 NYT는 전했다. 이는 한국 영화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관심과 인식이 전문가들보다 더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결과다.

'기생충'의 성공은 단순히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한국 영화 전체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 한국 영화는 아시아 영화의 범주에서 주목받는 수준이었지만, '기생충' 이후로는 세계 영화계에서 독립적인 존재감을 인정받게 됐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과 한국적 소재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로 풀어낸 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개봉 당시 전 세계적으로 2억 580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를 기록했으며, 특히 북미 지역에서는 53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 이는 자막 영화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좋은 콘텐츠라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됐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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