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1순위' 3위는 산·계곡, 2위는 지역축제, 1위는 뜻밖에도...
2025-07-0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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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바다도 제친 국내 여행자원 1순위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포착하는 건 더 이상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이나 울창한 숲속 계곡이 아니다. 좁은 시장 골목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할머니 손맛이 배어 있는 낡은 간판, 그리고 그 앞에서 환하게 웃는 젊은 여행객들의 모습이 소셜미디어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한국인의 여행 패턴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자연에서 힐링을 찾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도심 속 골목길에서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만들어가는 시대가 됐다.
여행 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여행자와 현지인(연고자 포함) 4만8790명에게 해당 지역에서 기대하거나 추천할 만한 지역 여행자원(58개 항목 제시, 복수선택)을 묻는 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7일 발표했는데, 이런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올해 조사에서 지역 여행자원으로 제시한 58개 항목 중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것은 '재래시장'(39.1%)이다. 이는 단순히 숫자상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인의 여행 철학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결과다.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부산 중구에서 가장 높은 추천율인 75%를 기록했다.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 등 대규모 시장이 밀집해 있는 부산 중구는 먹거리·볼거리·살거리가 풍부한 '종합 관광자원'으로서 현지인은 물론 여행자 다수의 선택을 받았다.
부산 중구의 성공 사례는 재래시장이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국제시장의 좁은 골목길에서는 6·25 전쟁 당시의 역사적 흔적을 찾을 수 있고, 자갈치시장에서는 부산 특유의 해양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경험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구수한 사투리, 삼대째 이어온 가게의 손맛,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생생한 현장감이 재래시장만의 매력이다.
추천율이 높다고 해서 여행자원의 질적 우수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지역 내 여행자원의 희소성이 높거나 특정 분야에 편중됐기 때문일 수 있어 해석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재래시장이 1위에 오른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이는 여행객들이 더 이상 수동적인 관광객이 아니라 적극적인 문화 체험자로 변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2위는 '지역축제'다. 32.4%의 추천율을 기록했다. 전남 함평군이 대표 지역으로 70%의 추천율을 보였다. ‘함평나비축제’ 등 대규모 지역 축제가 코로나19 이후 빠르게 회복되면서 2019년보다 2계단 상승한 결과다. 지역축제의 부상은 단순히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지역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함평나비축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함평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적 효과까지 제공한다.
3위는 2019년 1위였던 '산·계곡'이다. 32.0%의 추천율을 기록했다. 경북 청송이 가장 많은 선택인 83%를 받았다. 주왕산국립공원이 입지한 지리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산·계곡이 여전히 높은 추천율을 보이고 있지만, 1위에서 3위로 밀려난 것은 여행 트렌드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과거 한국인들에게 여행이란 곧 자연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만큼이나 도시 속 문화 공간들이 중요한 여행 목적지로 부상하고 있다.
'유명 음식점'(식사류)이 27.2%로 4위, '전통·특색음식'이 26.3%로 5위를 기록했다. 여전히 '식도락'이 여행의 큰 부분을 차지함을 보여줬다. 이는 한국인의 여행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특히 '맛집 투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여행 계획에 포함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젊은 세대들은 유명 맛집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 과정에서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함께 경험하고 있다.
기초단체(시군구)별로 분류하면 경북 청송이 3개 부문('산·계곡', '농산물', '등산')에서, 안동('전통·특색음식', '마을·주거지')과 부산 중구('재래시장', '길거리음식')가 각각 2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대구 중구('식사류 유명음식점'), 경주('문화유물')를 포함하면 영남이 총 9개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에 비해 호남은 전남 3곳(함평 '지역축제', 완도 '수산물', 담양 '꽃·나무')과 전북 1곳(전주 '민박·게스트하우스·모텔')을 포함해 4개에 그쳤다. 광역단체(시도)별로도 경북이 6개로 제일 많아 전남(3개)의 2배를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광역시의 '중구'가 4곳이나 포함된 것이다. 서울('호텔'), 부산('재래시장', '길거리음식'), 대구('식사류 유명음식점'), 대전('디저트류 유명음식점') 등 모두 대도시의 오래된 구도심 지역이다. 중구라는 지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보통 노포와 재래시장이 모여 있는 곳으로, 최근 MZ세대의 레트로(복고풍) 여행지로 각광받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현상은 MZ세대의 여행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것보다 오래된 것에서 오히려 신선함을 느끼고,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추억이 깃든 공간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래된 간판, 낡은 건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공간들이 이들에게는 최고의 인증샷 배경이 되고 있다.
2019년 대비 순위가 상승한 관광자원의 공통점은 주로 '도시'에서의 '체험'과 '소비' 활동과 관계된 점이다. 대표적으로 '유명음식점'(디저트류)이 7계단 뛰어올라 9위가 됐고, '거리·대학문화'가 6계단 상승해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박물관·미술관'(14.2%), '마을·주거지'(13.2%)는 4계단씩 상승해 각각 14위, 16위가 됐다. 이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하기 좋은 '인증샷 성지'를 선호하는 트렌드의 영향이다.
디저트류 음식점의 급상승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과거에는 식사를 위한 음식점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디저트 카페나 베이커리가 여행의 중요한 목적지가 됐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 올릴 만한 예쁜 디저트, 감각적인 인테리어,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공간에서의 경험이 젊은 여행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됐다.
'거리·대학문화'의 상승도 주목할 만하다. 홍대, 신촌, 강남 등 대학가 주변의 문화가 이제는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거리, 독특한 문화 공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새로운 여행 경험으로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미술관의 상승도 흥미롭다. 과거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다소 딱딱하고 교육적인 공간으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감각적이고 체험적인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현대적으로 리모델링된 박물관들이나 독특한 컨셉의 미술관들이 젊은 여행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전시물을 관람하는 것을 넘어, 그 공간에서의 경험 자체를 즐기고 있다.
'자연'에서의 '휴식'과 '힐링' 개념에 가까운 '산·계곡'(32.0%), '바다·해변'(21.4%)은 여전히 다수의 선택을 받고 있지만 2019년과 비교하면 각각 2계단, 1계단 내려앉았다. 이는 한국인의 여행 패턴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과거 여행의 목적이 주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찾는 것으로 변했다.
특히 주목되는 항목은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길거리 음식'(12.5%)이다. 디저트류 음식점의 상승과 달리 12계단이나 떨어져 22위가 됐다. 이는 여행자의 취향이 온라인에서 유명해진 디저트 카페나 전문 음식점으로 옮겨간 데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위생·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결과로 분석된다. 과거 여행의 재미 중 하나였던 길거리 음식이 더 이상 매력적인 옵션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여행 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길거리 음식의 하락은 한국인의 여행 소비 패턴 변화도 반영한다. 과거에는 저렴하고 간편한 길거리 음식이 여행 중 주요 식사 옵션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더 비싸더라도 안전하고 품질이 보장된 음식점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특히 MZ세대들은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위생, 분위기, 인스타그램 감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식당을 선택한다.
컨슈머인사이트 관계자는 "국내여행 트렌드 변화의 핵심은 '자연 휴양' 중심에서 '도시 체험'으로의 확장"이라며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를 통해 여행 경험과 정보가 손쉽게 공유되면서 여행지 선택 기준과 범위도 일상 영역까지 넓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히 여행 트렌드의 변화를 넘어 한국 사회의 문화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이어 "지역별 평균 추천 여행자원의 수가 올해 7.35개로 2019년(6.13개)보다 1.22개 증가한 것도 그런 트렌드의 영향"이라며 "그만큼 가볼 만한 지역 여행자원이 많아지고 매력도 높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거에는 몇 개의 유명 관광지에만 관심이 집중됐다면, 이제는 전국 각지의 숨은 명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여행 선택의 폭이 크게 넓어졌다. 작은 동네의 카페, 골목길의 벽화, 오래된 건물의 독특한 인테리어 등이 모두 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런 변화는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몇 개의 대형 관광지에만 관광객이 몰렸다면, 이제는 전국 각지의 작은 상권들도 관광객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재래시장의 부상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쇠퇴하던 재래시장들이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각광받으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한국 관광 산업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자연 관광지의 경우 과도한 관광객 유입으로 환경 파괴가 우려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도시 관광자원의 경우 이런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다. 오히려 관광객 유입으로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고, 낡은 건물들이 새롭게 단장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변화가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여행이 점점 더 ‘보여주기 위한 활동’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인 새로운 경험과 성찰보다는 인증샷을 찍기 위한 활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명해진 관광지의 경우 과도한 관광객 유입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원래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내쫓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관광 산업의 발전과 지역 주민의 삶의 질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하는 과제를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