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해도 많이 이상한 한반도 날씨... '이것'의 개념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2025-07-0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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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무너진 장마... 마른장마 후 가뭄 '기상이변'
한반도 날씨가 요상하다. ‘마른장마’ 후 극심한 가뭄이라는 이례적인 날씨가 펼쳐지고 있다.
예년보다 장마가 유독 짧아 전국적으로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강원 영동과 제주도를 중심으로 가뭄 피해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른 무더위와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저수지와 논밭은 말라붙고 있고 농민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제주 서귀포 하논분화구는 논으로 쓰이던 바닥이 이미 쩍쩍 갈라졌다. 하루 수천 리터의 용천수가 솟던 지역임에도 물을 대지 못하는 상황이다.
강원도도 상황은 심각하다. 강릉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32%까지 떨어졌다. 평년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저수지가 흙바닥처럼 드러나 있다. 농민은 겨우 물을 대며 농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물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속초 원암저수지 저수율은 23.8%. 평년 대비 31.6% 수준이다. 마른장마가 이어진 강원 동해안 일대는 물 사용이 급증하는 피서철까지 겹쳐 생활용수 공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번 ‘마른장마’는 단순히 비가 적게 온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장마전선이 강하게 형성되지 못하고 국지적으로 짧고 강한 스콜성 소나기만 내리면서 수자원 확보에 실패한 지역이 속출했다.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선 장마철에도 평년 강수량에 못 미치는 비만 내렸다. 이마저도 짧고 강하게 내린 탓에 저수지에 저장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야 했다.
전통적인 장마는 북쪽 오호츠크해 기단과 남쪽 북태평양 고기압 사이에 형성된 정체전선에서 며칠간 지속적으로 비가 내리는 형태였으나, 최근 기후 변화로 이 구조 자체가 무너졌다. 온난화로 고기압 세력이 변화하고, 장마전선 형성에 실패하면서 국지적인 폭우와 긴 무더위만 남는 새로운 양상이 자리 잡고 있다.
기상청은 이번 장마가 제주에서 지난달 26일, 남부지방에선 지난 1일 종료됐다고 발표했지만, 중부지방은 장마 종료 시점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장마전선은 북한 인근에서 머물고 있고, 이후에도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한두 차례 소나기만 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제주 장마는 단 15일로 역대 두 번째로 짧았다. 그나마 강수량의 지역별 편차가 커 일부 지역은 비다운 비를 거의 맞지 못했다.
현재 제주를 비롯한 일부 지역은 평년 강수량의 7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누적 강수량이 관측 이래 13번째로 적다. 제주는 2013년과 2017년에 59일간 이어진 가뭄을 기준으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제주도는 상수도·농업용수 분야의 선제적 대책과 함께 용천수 재이용, 광역 농업용수 공급망 확충, 지하수 모니터링 등을 병행해 중장기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강릉시는 이미 가뭄 대책 상황실을 가동해 농업용 관정 37공, 스프링클러, 양수기 등을 추가로 신청받고 있으며, 가뭄에 취약한 밭작물에 대한 용수 공급을 강화하고 있다. 속초, 정선, 양양 등 인근 시군도 긴급회의를 열고 현장 점검에 나섰다.
이처럼 전국 곳곳에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자연이 바뀐 흐름 앞에서 사람의 대응은 한계가 있다. 특히 스콜성 강수는 수자원 확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일주일에 걸쳐 50mm의 비가 내리면 저장해 사용할 수 있지만, 한 시간에 100mm가 쏟아지면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갑작스러운 호우는 침수 등 재해 위험도 키운다. 2022년 서울의 기록적 폭우, 충북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 등은 모두 이 같은 스콜성 호우의 결과였다.
현재 전남과 충남, 충북 등 일부 지역은 아직 저수율이 평년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당장 심각한 가뭄 단계에 이르진 않았다. 그러나 이들 지역조차도 여름철 가뭄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충남의 경우 최근 2개월간 강수량이 평년보다 많지만, 마른장마로 인해 저수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보령댐은 3월에 33.5%까지 떨어졌던 저수율이 7월 현재 45.6%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장기적 비전이 없는 상황이다.
기후변화로 장마의 개념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전통적인 30~40일 장마가 사라지고, 짧고 강한 비, 길고 뜨거운 폭염, 예측 불가능한 국지성 기상이 일상이 됐다. ‘마른장마’는 단지 비가 적은 장마가 아니라 수자원 확보에 실패하고, 농업과 일상에 위협을 주는 새로운 기상재해로 인식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더이상 ‘장마철’이라는 개념에만 의존해 수자원 확보나 기상 대비를 해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여름철 언제든지 폭우가, 또 언제든지 극심한 가뭄이 닥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시적인 수자원 관리 체계와 기후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